목욕탕의 성자
본문
내가 잘 가는 목욕탕의 때밀이 청년은 나이 서른을 넘겼는데 아직 혼자 산다.그는 목욕탕 지하 창고 방에서 자취하는데 하는 일이 고되어서인지 훌쩍 큰 키에 말라깽이다.그래도 낙천적이고 무엇보다 확고한 인생관을 지니고 있다.자주 목욕탕에 드나들면서 청년과 친하게 됐다.지압기술이 아주 좋아 후줄근 지친 상태로 목욕탕에 갔다가도 그의 지압을 받고 나면 씻은 듯 피로가 풀리곤 한다.그가 지압해줄 때면 그 손끝에 온갖 정성이 다 들어가 있음이 느껴진다.그는 지압을 하면서 한의사처럼 내 몸을 진단해주기도 한다.예컨대 뒷목에서 어깨에 이르는 근육이 긴장으로 뭉쳐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니 가급적 세상을 밝게 보라고 당부한다.미운 사람 있으면 떡 하나 더 주고 매사에 욕심부리지 말라고 한다.그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무슨 목사님의 설교라도 듣는 듯한 기분이 된다.몸을 자주 움직여라,호흡을 깊게 하라,많이 걸으라,끼니를 거르지 말라,잠을 충분히 자라 등 건강상의 지침을 들을 때면 나이 어린 그가 장형(長兄)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는 밤새 만취해 술에 찌들고 탐욕에 찌들어 새벽녘 목욕탕 문을 밀고 들어오는 죄악의 육체들마다를 물로 씻고 비누칠해 깨끗하게 해준다.그래서 그에게 육신을 내맡기고 누우면 육체의 때뿐 아니라 영혼의 때까지도 말끔히 씻겨내려갈 것만 같다.그런데 나는 늘 그의 노력과 수고에 비해 그가 받는 1만원이라는 돈은 너무 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다.요금을 좀 올리라고 해도 그는 씩 웃으며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자신은 때를 밀면서 구두도 닦기 때문에 수입이 쏠쏠하고 따라서 염려 안하셔도 된다는 것이었다.어느 날 맞은 편의 다른 목욕탕에 갔다.그 곳에서도 역시 지압이나 안마를 겸해서 해주는 때밀이 청년이 있었다.그날도 몹시 피곤하던 차여서 나는 지압과 안마를 부탁했다.내가 단골로 지압을 받던 목욕탕 청년과는 하는 방식이 약간 달랐지만 그 역시 성실했다.지압을 마치고 요금을 내려 하니 2만5000원이라고 했다.깜짝 놀라 다시 확인했더니 그것은 협정요금이고 따라서 동네 목욕탕 어디서나 같이 받는 금액이라는 것이었다.얼마 후 다시 말라깽이 청년에게 지압을 받은 후 요금을 내면서 그 사실을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그러자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요금이 2만5000원인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요금 같은 것 받지 않고라도 해주고 싶은 손님이 있어요.선생님도 그런 분 중의 한 분입니다.앞으로도 전 1만원만 받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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