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만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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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만남 외
▶가장 아름다운 만남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요.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요.
나는 비린내나는 생선처럼 나의 욕심을 채워 달라고 조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꽃송이처럼 내 기분에 따라 호들갑 떨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지우개처럼 당신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손수건처럼 당신이 힘이 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좋은 글에서-
▶어느 나라 임금님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너무나 좋아서 모든 병사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한참 음식을 먹고 술도 한잔 두 잔 마시는 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불이 다 꺼져버렸습니다. 깜깜해 진 것입니다.
그때 한 부하장수의 장난기가 발동되어 임금님의 후궁인 여인을 만졌습니다. 그 여인은 임금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만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그 장수의 모자에 붙은 끈을 잡아당겨 끊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 누가 나를 만졌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 사람을 잡으려고 그 모자의 끈을 끊어서 가지고 있다.'
그 얘기를 들은 임금님이 말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의 끈이 끊어진 것처럼 우리도 모두 모자의 끈을 끊자' 이에 모두 모자의 끈을 끊었습니다.
임금이 불을 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임금님은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죄가 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위해 싸워 주었기 때문에 법으로는 죽어 마땅하지만 그를 용서한 것입니다.
그 나라의 또 전쟁이 났습니다. 임금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처해 있었는데 어떤 부하가 뛰어와서 대신 죽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너무나 감사해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자네는 자네 목숨을 버리고 날 살릴 생각을 할 수 있었는가?'
그 때 이 신하는 임금님께 말했습니다. '임금님 저는 과거에 그런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 임금님께서 나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믿어 주시고 용서해 주신 것에 감사하기 때문에 임금님을 대신해 죽는 것도 저는 영광입니다. 제 인생의 목적은 임금님을 위해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처럼 죽으니 도리어 감사하고 기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 부하 장수처럼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제사장으로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끝까지 믿어 주신다는 것이고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의 일화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공장에 방문했는데 특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다음에 갔을 때에도, 몰래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 공장의 공장장이 없어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공장장의 일을 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저는 공장장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 하는 것은 딱 한가지, 쇠를 다루는 일은 대통령처럼, 왕처럼 합니다.'
그 쇠를 다루는 것만큼은 나라의 대통령과 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치리 하는 왕 같은 마음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 열과 성을 다하는 마음이 카네기의 마음속에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공장장을 하지 않겠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대통령의 월급을 주겠소" 이 사람은 그 회사에서 최고의 봉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누나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그는 누나와 함께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며칠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아침에 일터로 나가면서 자기 조카가 심심할까봐 그에게 새총을 하나 만들어주었습니다.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끼워서 돌멩이를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이 났습니다. 아침부터 들을 쏘다니며 새를 잡으려고 계속해서 새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새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그가 새총을 쏘기도 전에 미리 알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이는 한 마리의 새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깨가 축 늘어져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마침 집 마당에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면서 기르는 오리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심결에 오리를 새총으로 쏘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던 돌멩이를 꺼내서 오리를 겨냥했습니다.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돌멩이는 쏜살같이 날아가더니 오리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오리는 비틀비틀하더니 곧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무심결에 저지른 일이기는 했지만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오리를 죽였으니까 겁이 났습니다.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죽은 오리를 쥐어들고는 나무 밑을 파서 묻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르는 척 하면서 시치미를 뚝 떼었습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입맛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은 숟가락을 놓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서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얘야, 너 어디 아프니? 안색이 좋지 않구나! 이리 와라. 어디 한 번 이마를 짚어보자.'
그럴수록 그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려던 누나가 그를 불렀습니다. 설거지는 누나 책임입니다. 그 대신 그는 집안청소를 책임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나가 그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설거지 같이 좀 하자.' 설거지는 누나의 담당이었기 때문에 그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이렇게 소곤거렸습니다. '나는 다 봤지!'
그는 그 말 한 마디에 완전히 코가 끼었습니다. 그래서 누나가 뒷짐지고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꼼짝 못하고 설거지를 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생각 저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죽여서 파묻은 오리가 꽥꽥거리면서 되살아 날 것만 같습니다.
'이 놈! 네가 죽였구나.' 할머니가 이렇게 호통을 치시면서 화를 내시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또 누나의 행동으로 보아서 내일도 설거지를 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누나의 노예가 되어서 살 것을 생각하니까 한심합니다. 이 고민 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아침 일찍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2층에 있는 할머니의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흐느끼면서 할머니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할머니의 사랑하시는 오리를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뒤뜰 나무에 묻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런 짓 않겠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뜻밖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걱정하지 말아라. 사실은 내가 어저께 2층에서 창문청소를 하다가 창 밖으로 네가 새총으로 오리를 쏘아 죽이는 것을 다 보고 있었단다. 그리고 죽은 오리를 나무 밑에 묻은 것도 보았다. 네가 저녁을 먹으면서 입맛이 없어 하는 이유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또 네가 누나 앞에서 쩔쩔 매면서 누나 대신 설거지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네가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지금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단다. 네가 먼저 와서 너의 잘못을 내게 고하면서 용서를 구한 것 정말 고맙구나! 잘했다. 내가 물론 다 용서해 주고 말고.'
그러면서 할머니는 자기의 손자를 가슴에 품고서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할머니의 방을 나서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했겠습니까? 아침식사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저녁을 거의 굶다시피 했으니까 아침은 너무나 맛있었을 것입니다.
아침식사가 끝난 뒤에 또 부엌에서 누나가 불렀습니다. 누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했습니다. '오늘도 설거지를 해야지!'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싫어.' 누나가 쫓아와서 성난 얼굴로 말했습니다. '너 까불면 다 일러 버릴 거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습니다. '이르고 싶으면 일러라!' 그러면서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자신만만하게 걸어나갔습니다.
여러분!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케 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용서받는 사람도 기쁘고 즐겁지만 사실은 용서하는 사람도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가곡歌曲 가운데 '이별의 노래'가 있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유명한 시인입니다. 이 시인이 어느 날 여대생과 눈이 맞아 함께 가출을 했습니다. 부인이 소문을 듣자니까, 제주도에서 그 여대생과 신접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찾아갔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갔을까요?. 눈에서 불이 튀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채를 잡아 몽땅 뽑아버릴 생각으로, 마음에 분을 품고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활이 얼마나 어려우냐며 보태 쓰라고 돈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을 보내려면 추울 텐데 입으라고 남편과 그 여인을 위한 겨울옷이 담긴 보따리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 안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았고...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둘은 헤어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인이 배를 타고 떠나갑니다. 눈앞에서 여인을 실은 여객선이 멀리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인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바로 '이별의 노래' 가사입니다.
1.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2. 한 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광부 촌에 사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로부터 왕 따를 당합니다. 학교 가는 길이면 한 놈이 와서 가슴을 팍 쥐어박습니다. 교실에 앉으면 또 다른 놈이 와서 머리를 쥐어박습니다. 복도를 지나려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립니다.
아이가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하루는 너 죽고 나 죽자. 그래서 온몸에 다이너마이트를 감았습니다...그리고는 옷을 벗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면 이 다이너마이트가 터져서 다 죽는 줄 알아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도 겁이 나서 그 아이 곁에 가질 못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이 아이 주변에는 아무도 오지를 않습니다.
상처를 주는 아이도 오지 않았지만, 친구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생각 해 보세요. 누가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품고 있는 아이 곁에 가까이 가겠어요. 그 후에 아이는 더욱 외로워지고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미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이너마이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가 떨어집니다. 성령께서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길이 막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미움은 너 죽고 나죽자 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 입니다. 용서가 둘 다 사는 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용서할 만큼 성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자.'
영어로 용서라는 말을 'Forgive'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 단어와 비슷한 영어단어 몇 개를 써서 용서하는 방법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Forbear'(참으라)입니다. 속상하다고 해서 화풀이한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을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수 있는 용서의 첫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용서는 참는데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Forget'(잊으라)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웃집에 가서 낫을 좀 빌려오너라.'아들이 가더니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그냥 오느냐?' 아들은 시무룩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빌려주지 않던데요.'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몇 일 뒤에 그 집에서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호미를 가져다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아버지! 그들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그들에게 빌려줍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책망했습니다. '이놈아! 그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도 빌려주지 않으면 그것은 복수하는 것이다. '그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빌려준다.'라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그것은 증오라는 것이다. 그 집에서 빌려주었든지 빌려주지 않았든지 지난 것은 잊어버리고 지금 그 집에서 필요하니까 빌려주는 것이 용서요, 사랑이다. 그러니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라.'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갑니까? 복수의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증오의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용서와 사랑의 정신으로 살아갑시다.
셋째로, 'Forever'(영원히)입니다. 영원토록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내 기억 속에서 말끔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잘못을 범하면 몇 번까지 용서해야 되겠습니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 뿐만 아니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
▶어느 주일 아침, 성경 공부 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보기 위해 목사가 한 남학생 반에 들려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뜨렸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소년들은 '우리가 안 그랬어요. 목사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반의 수준은 이 정도입니까?'라고 목사는 그 반 담당 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이 애들은 정직한 애들이고 전 이 애들을 믿습니다. 이 애들이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교사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실망하고 당황한 목사는 주일 학교 부장을 찾아가,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부장의 대답은 '목사님, 저는 그 애들과 교사를 오랫동안 알아 왔습니다. 그들이 하지 않았다면 저로서는 그로써 만족입니다.'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목사는 이 일을 당회에 올렸습니다. 당회원들은 두 시간 가량이 이 일을 놓고 토의하다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목사님, 이런 사소한 일에 이렇게 동요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이 일 때문에 이번 손해가 생겼다면 일단 메우고, 교회 일반 재정에서 충당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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