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쉼터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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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장애인 언몸 녹이는 `사랑쉼터의 집'경기 하남시 `장애인 사랑쉼터의 집'은 오갈 데 없는 떠돌이 장애인들에게 `천국의 집'으로 통한다.시장바닥을 배회하는 지체장애인과 숟가락질조차 힘든 뇌성마비 장애인 등 사회와 가정에서 버림받고 노숙을 하는 우리 이웃들이 비를 피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장애인 사랑쉼터의 집은 92년초 처음 만들어졌다.장애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하나로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김상희씨(33)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다.김씨는 벌써 7년째 소아마비 1급 장애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부인 김진희씨(30)와 함께 정신지체,근무력증,다운증후군 장애인 25명을 한가족처럼 돌보고 있다.고등학교 시절 역도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김씨의 인생은 89년 길거리에서 우연히 한 장애인을 만나면서 뒤바뀌었다.교통사고로 하반신이 절단된후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는 `가정이 그립다.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따뜻한 방에서 자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그의 절규가 며칠동안 김씨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김씨는 이를 계기로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서울 상일동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 `연못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여기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급식 자원봉사를 하던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된다.김씨는 길에서 방황하는 장애인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이들을 위해 92년1월 아파트 공사장과 고물상을 돌며 틈틈이 모아둔 목재와 철근으로 하남시 그린벨트 지역 내에 지금의 보금자리를 짓기 시작했다.낮에는 노점상을 하고 저녁 때면 부인과 함께 못질을 하면서 장애인이 거주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 가건물을 완성했다.김씨는 “처음 건물을 지을 때는 철거반원과 실랑이도 많이 벌였다”며 “철거반원도 나중에 이 가건물이 오갈 데 없는 장애인 숙소라는 것을 알고 주거시설은 철거하지 않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이런 어려운 과정에서도 틈틈히 신학을 공부해 목사안수도 받았다.이 당시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식구들을 먹일 음식이 부족했던 것.노점상 수입으로는 갑자기 불어난 식구들을 감당하기가 턱없이 부족해 3~4일씩 함께 굶는 것이 예사였다.또 당시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김씨는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장애인들을 제대로 도울 방법을 몰라 좌절하기도 했다.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김씨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체계적인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하반신 장애인들이 앉아서 할 수 있는 실내농구시설을 손수 만들었고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꽹과리 치는 법도 가르쳤다.또 공부에 관심이 많은 장애인들을 위해 검정고시반도 운영했다.이 달 말에는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김영윤씨(33) 등 3명이 `사랑쉼터의 집'(02-428-7422)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할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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