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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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 (1812~1870) 의 눈에 비친 파리의 색깔은 회색 이었다.'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에서 그가 본 파리는 혁명의 폭력과 광기가 난무하는 암울한 잿빛 도시였다.흠모하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단두대의 시퍼런 칼날에 결연히 목을 던진 영국인 시드니 카톤의 '기개' 는 런던의 색깔이 파리보다 낫다 는 확신의 반영이었다.그러나 그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단색 (單色) 사회' 에서 '다색 (多色) 사회' 로 가는 분기점을 보진 못했다.혁명의 깃발 아래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앙시앵 레짐 (구체제) 과 함께 종말을 고한 것은 한가지 색깔이 지배하는 단색사회였다.대혁명은 획일성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색사회로 가는 길을 프랑스에 열어주었다.유럽에서 프랑스만큼 다양한 색깔을 가진 나라도 없다.대서양에서 지중해, 피레네에서 알프스, 노르망디에서 코트 다쥐르로 이어지는 자연의 현란한 색채만이 아니다.삶의 색깔이 가는 곳마다 다르다.대서양쪽 피레네산맥을 끼고 있는 바스크 지방에 가면 도로표지판이 프랑스어와 바스크어로 나란히 표기돼 있다.유적지 안내원은 프랑스어와 바스크어로 설명을 한다.그들에게 중요한 건 바스크 사람이라는 자부심이지 프랑스인이란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브르타뉴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기들 말인 브르통을 배우고 지중해쪽 피레네 지방에서는 옥시탕을 가르친다.개인도 마찬가지다.프랑스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획일성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체질적이다.그 결과로 '유행의 도시' 라는 파리에는 정작 유행이 없다.서로 다른 개성이 빚어내는 다양한 색깔의 조화는 파리를 아름답게 하는 또다른 이유다.남이 뭐라든 자기류를 고집하는 배짱과 남이 뭘하든 신경쓰지 않는 느긋함은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창의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다양성은 프랑스가 가진 힘의 원천이다.백인과 흑인, 아랍인으로 구성된 '유나이티트 컬러스 오브 프랑스' 팀의 98년 월드컵 우승은 상징적이다.탈 (脫) 냉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그나마 미국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서구사회의 유일한 나라가 프랑스다.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루과이 라운드 (UR) 협상에서 농산물과 시청각 분야에 대한 예외인정을 관철시켰고, 지금도 진행 중인 미국의 대 (對)이라크 공습에 유일하게 힘주어 '노' 소리를 내고 있는 나라가 프랑스다.제복문화가 지배하는 단색사회가 처음에는 힘이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건 역사가 말해주는 진리다.나치독일이 그랬고, 군국주의 일본이 그랬으며 '붉은 제국' 소련이 그랬다.색깔을 지배하는 소수와 이를 추종하는 다수가 있는 사회에서는 발전과진보가 있을 수 없다.소수의 힘과 권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사회도 무너지고 만다.총화와 단결을 주입하는 슬로건이 판치는 사회에는 장래가 없다.'강성대국' 을 외치는 북한에서 미래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역설적인 얘기지만 유럽의 잠재력은 분리독립을 외치는 바스크가 있고,코르시카가 있고 북아일랜드가 존재하는 데 있다.다양성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인 것이다.그런 점에서 마스트리히트조약 (유럽동맹조약)에 '최소자치제 우선주의' 원칙을 명기한 유럽 정치지도자들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유럽이 미국과 같은 합중국이 되는 날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럽에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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