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는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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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차를 빼다가 남의 벤츠 자동차를 긁어 놓고 말았다.벤츠 중에서도 고급 차였는데 범퍼가 긁히면서 그 차의 번호판까지 떨어져 나가버렸다.난감했다.출근하려는 차 주인이 이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라고 불쾌해 할까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번호판만이라도 달아보려고 근처 배터리 가게를 돌아다녔지만 이른 아침이어서 문을 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문을 연 한 곳에서는 원상태로 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그런 고급 승용차를 그 정도 험하게 긁어 놓으면 수리비만도 내 자동차 한대 값이 들어간다는 말까지 들었던 터라 나는 더 기가 죽어 있었다.난감한 상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떨어진 번호판을 손에 들고 서있는데 수위와 함께 차 주인이 걸어왔다.이미 설명을 다 들은 듯 굳은 얼굴이었다.정말 죄송하게 되었다고 사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본의가 아니었노라고,서둘다 이렇게 되었노라고 사과를 하였지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생각했다.그런데 한동안 말이 없던 차 주인 남자가 뜻밖에 혼잣말처럼 말했다.“별 수 없는 일 아닙니까.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오늘 다른 차로 출근할 테니까 번호판만 달아주십시오.딴건 손대지 마시고…”그러더니 차 주인은 ‘가보시라’며 먼저 들어가 버렸다.나는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적어도 수백 만원의 견적이 나올 것이라 각오했는데 결국 그날 나는 단돈 만원을 들여 볼트를 새로 조여 번호판을 달아줌으로써 사고가 무마되어 버린 것이다.그래도 혹시 다음날이라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벤츠 자동차의 주인은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나는 이 일이 눈물나게 고마웠다.한참 고마워 하다가 문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생각이 미쳤다.고급 자동차 긁어 놓은 것 용서받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지덕지하는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흘려 주신 그 분에 대해서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감사의 질이나 양으로 보면 날마다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다.속으로 나는 내게 부르짖었다.‘도적놈!’그간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건을 뼈에 절절하게 감사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나를 위해 그 분이 그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고 구체적인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분을 무수히 못박았던 것이다.더구나 그 사건을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할 때도 많았다.주님에 대한 감사가 무뎌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책망하곤 한다.“기억하라! 벤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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