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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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한알로 나를 다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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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기억해야 할 분들이 너무 많지만 언뜻 생각나는 이가 돌아가신 '장일순 선생'이다.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당신께서 하실 일을 밀고 나가셨던 분인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이 인생살이에서 나이 들수록 이 분 생각이 나는 건 아마도 그이 삶이 갈수록 더 희귀한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다.장일순 선생은 호가 여럿이셨지만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조 한알'이다. 어째 그런 '가벼운'호를 삼으셨습니까, 여쭸더니 '무거운'말씀이 돌아왔다."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 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내 마음 지긋이 눌러 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 것 없는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하면서 내 마음 추스리는 거지 뭐."살벌했던 70년대 박정희 정권에 맞서 가톨릭 원주 교구에서 일궜던 반독재 투쟁 얘기는 다 잊어버렸는데 지금도 이 한마디 '조한알' 얘기는 잊을 수 없다."내가 세상에 만고 무능 군자지"하며 허허 웃으시던 그 선한 얼굴이 당신이 치던 사군자에 겹친다. 민초들 얼굴을 난초 그림에 담아 세상에 남기셨던 그 분은 그 난 그림들에 "나 세상에서 깨진 놈들 속에 있노라" 같은 화제를 써넣으셨다. 모두들 잘났다고 떠드는 저잣거리에서 장일순 선생은 깨져 나 앉은 못난이들을 고루 품어 주셨던 큰 어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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