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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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섬김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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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호 {낮.해.밤.달} 발송작업을 하다 말고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작업 속도에만 신경쓰느라 이전에 비하면 훨씬 더 대충대충 포장 작업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른 회개기도를 했습니다.{낮.해.밤.달} 발송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개인발송과 단체발송입니다. 발송량(부수)으로 보면 개인발송이 3분의 1, 단체(30부 이상) 발송이 3분의 2 정도이지만 발송에 필요한 작업량으로 따지면 개인발송이 훨씬방대한 작업입니다. 그 많은 걸 일일이 반으로 접어야 하고, 그걸 다시 컴퓨터로 주소를 인쇄한 편지봉투에다 구독 부수(1부∼20부)에 따라, 그리고 우편번호에 따라 일일이 집어넣으면, 다시 봉투입구를 봉하고 그것을 지역별로 구분하여 묶어야 합니다. 따라서 매월마다 이 개인발송에만 십 수명이달라붙어야 합니다.그에 반해 30부 이상씩의 구독자들에게 보내는 우편물은 튼튼한 포장지로한 겹 혹은 두 겹으로 포장을 해서 끈으로 묶게 됩니다. 이 단체발송은 대부분 저(최간사) 개인의 몫입니다. 전체 우편물 개수로 보면 약 390개쯤 되는 소포 뭉치를 일일이 포장하는 셈인데 얼마 전까진 혼자서 포장하고 끈으로 묶고 하는 것을 다 했는데 구독기관이나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요즘은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어 이 일에도 여러 명의 봉사자들이 달라붙고있습니다.물론 개인 구독자든 단체구독자든 모든 우편물에 대해서 저희는 최대한으로 하나 하나를 정성껏 포장하고, 깔끔하게 그리고 수송과정에서 내용물이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습니다. 봉사자님들께도 늘그 점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보내는 우리에겐 무수히 많은 우편물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받아보는 독자들에겐 그 의미가 또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아온 우편물이 찢어져 있거나 아무렇게 포장되어 있으면 기분이 좋을리 있나요 그래서 발송작업 때문 그 우편물을 받아보게 되는 분 한 사람한 사람을 생각하며, 할 수만 있다면 정성껏 똑바로 깔끔하게 포장하려고애를 씁니다.그러나, 사실상 매월 모든 우편물에 대해서 100% 그런 마음으로 하나하나를 정성껏 다루기란… 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행여나 자원봉사자수가 적어 작업량이 과도하게 남아 있거나 발송 마감 시일이 촉박할 때, 혹은 봉사자들이 아직 서툴거나 저희 몸이 강건치 못하기라고 하면... 그만 우리는 자칫 (위의 사실과는 달리) 당면해 있는 '일' 그 자체를 처리하는 데에만 정신을 빼앗겨 허겁지겁 대충대충(오직 빨리 일을 끝내는 데만 목표를두고) 감당하기가 십상인 것입니다. 지난 9월말 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단체 발송작업은 계속 서서 약간 허리를 굽힌 채, 그리고 단단히 포장하기 위해 힘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하루만 하면 온 몸이 몸살날 정도입니다.게다가 요즘은 {갈릴리 마을} 때문에 허구헌날 매일 막노동을 해야하다 보니 그날 따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서 끝내고 쉬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래서 손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고, 당연히 소포 꾸러미의 상태는 점점 이상야릇해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래도 도중에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인 셈입니다.늘 반복되는 일상사(日常事)를 변함없는 사랑과 정성과 헌신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대단히 귀하고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합니다. 하루이틀, 아니, 한 두해면 또 모르겠거니와 그 일상사가 4년, 5년, 나아가 10년20년이상 계속 반복되기라도 할 경우라면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겠습니까제아무리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이라도 자칫하면 지겹고 따분하여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들 가능성이 ㅊㅇ분히 있는 것입니다.저희의 경우만 하여도, 강연희 행정간사의 경우 만 4년 3개월을, 저(최간사)의 경우는 10년째 이 쪽지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하긴 이 쪽지의발행부수가 1만부가 될때까진 발송작업은 물론이고 그 전단계인 제본작업까지도 다 직접 했으니까요. 한 달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갑니까 일주일이나열흘이 걸려 다음 호 쪽지 원고, 원본을 만들어 인쇄소에 넘기고선 한 숨돌리려면 금새 발송작업이 다가섭니다. 발송작업 마치기 무섭게 이틀도 못되어 곧바로 그 다음달치 쪽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세월이 '쏜 살'이요 '유수(流水)'인 것입니다.꼭 같은 일 5년, 10년이면 지겨울 때도 되었습니다. 집어치우고() 색다른일에 도전해 볼 마음이 생길때도 되었습니다. 그런 유혹들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그러나 이번 단체발송작업을 마저 하면서 저는 마음의 허리띠를 다시 바짝 조여 맸습니다. 새로운 변화도 좋고, 전환도 좋고, 새로운 도전도 다 좋습니다. 사람들에겐 그것이 때로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꼭 그것만이 가치있는 일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그 일에서 새로운 기적과 성취를 일구어 내는 것도 위대하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10년, 20년, 나아가 평생토록 말없이, 묵묵히, 충성스럽게, 변함없는 정성으로 감당해 내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위대하고 귀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니, 이것은 앞의 경우보다더 큰 기적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문득 저희 가족과 함께 살고 계시는 장모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아내도 자주 식사준비를 하지만 사실 장모님께서 더 많이 부엌에서 사십니다. 사위라는 사람이 다른 사위들과 달리 거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집에서 먹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간이 큰 남자'가 또 있습니까) 한 끼 식탁ㅇㄹ 차리고 또 식후 설거지까지 한다는 것이여간 번거로운 일입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수 년 동안 장모님께선 '단 한끼도' 사위 밥상을 대충 차리신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간청을 하고 부탁을드려도 장모님께서 차리시는 식탁은 '간단히'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식은 밥을 사위에게 먹이는 건 죄받을 일인 줄 아십니다. 최선으로 식탁을 차리시곤 식사후 도 그걸 죄다 말끔히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손수 하십니다.(아내가 없으면 말입니다).그런 것이 어디 사위네와 함께 산 요 몇 년 동안 뿐이었겠습니까 장모님께선 당신의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최선으로 살아오신 것입니다. 수 십년간 하루에 세 끼를 꼬박꼬박 말입니다. 이것이 다만 저희 장모님의 경우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어미니들의 삶이기도 한 것입니다.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이 눈물겨운 희생과 수고에 의해 양육되어진 열매들입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사랑... 그것이 어찌 위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그것은 남편들에게 있어 아내들의 희생과 수고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아내들의 일상사라는 것은 늘 그게 그겁니다. 밥짓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빨래하고... 그래서 철딱서니 없는 남편들은 아내를 향해 "남편은 뼈빠지게밖에서 일하는데 당신은 집에서 하는게 뭐가 있어 그런데도 왜 몸이 피곤해 왜 아퍼" 라고 소리칩니다. '그 따위' 일들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어라고 일해도 어느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아무리열심히 해 놓아도 일한 표시도 안 나는 이런 일들을 묵묵히 변함없는 정성과 사랑의 마음으로 하루 하루, 일년 이년 오년 십년을 감당한다는 것은 그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라리 바깥에 나가 돈 버는게 낫지요. 그렇다고 남편이 손톱만큼이라도 고맙게 여기나요 소고하고 고생한다는 격려 한 마디라도 진심으로 건네 주나요 오히려 노예처럼 더 못부려먹어서 안달이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내들은 그 일상사(日常事)를 한결같은 정성과사랑으로 묵묵히(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지속해 나갈 수 있나요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어머니역이고 아내역이고 다 집어치우고 담대히 탈출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말입니다.어느 가까운 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만 없어도 목사노릇 할 만 하지요"라며 농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차가운 비판이 취미인 자들이시여, 부디 부탁컨대, 단지 이 말씀만으로 그 목사님을 비난하지 말아 주시오.) 일년 365일,매일 새벽, 하루도 빠짐없이 꼭두새벽에 일어나 인도해야 하는 새벽기도회.그게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하시는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매일같이 영낙없이 반복되는 '일상사'라는 바로 그 점이라고 하셨습니다. 으례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로 전락될 가능성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율법직인 의무로 전락되고 나면 그 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중노동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저 대충 떼우고 싶은 유혹도 오는 것입니다.어떤 목회자들께는 '설교'가 바로 그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상황에선 목회자들은(담임교역자라면 더욱) 일주일에 평균 7∼10회 이상의설교를 해야 합니다. 말이 쉬워 '설교'이지 그게 생각만큼 간단한 일인가요그런데도 교인들은 생각하기를, 목회자들은 입만 열면 설교 한 편이 줄줄쏟아지는 줄 압니다. 설교는 때에 따라 진을 빼고 사람 피를 말리는 중노동인 것입니다. 설교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 휴가보내 드린답시며 "목사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어디 가셔서 푹 쉬시고 주일에 오셔서 설교만 하십시오"하는 교인들은 뭔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게 무슨 휴가입니까주일 설교 한 편 준비하는데 일주일의 반틈을, 아니, 일주일 몽땅을 투자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좀 있는 교인들은 반드시 주일까지 끼워서 목사님의 휴가를 드립니다. 더 생각이 깊은 교인들은 목사님으로 하여금 휴가기간 중에 주일이 끼어 있어도 본 교회에 얼씬도 못하시게권합니다. 아예 다른 교회에 가셔서 주일을 보내시라는 것입니다. 여하튼설교 자체가 그만큼 많은 정성과 기도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거기에 유혹도 따른다는 얘기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목회 초기에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밤을 새워서라도 한 편 한 편의 설교를정성을 다해 준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서 그러한 일이 '일상사'가 되고 나면 애초의 그 정성과 수고가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10년쯤지나면, 아니 4∼5년도 채 못되어, 옛날에 했던 설교의 원고를 다시 꺼내게되고, 남의 설교를 베끼게 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성경을 뒤적이며 바로 다음 설교를 준비하는... 그래도 괜찮다는 유혹 앞에서 서성거리게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 목회 초기의 열정과 정성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 바쁘고 유명한' 어떤 목사님들은 설교 원고를 대신 써 주는 전속 비서들의 설교문을 '낭독'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오, 하나님!) 제가 알고 있는 한 귀한 자매가 바로 그 설교원고 작성 비서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너무 바쁘기() 때문에 모든 설교를 다 자신의 시간과 정성과 기도를 투자해서 준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라디오 방송에 내보내는 설교는 어느 비서가 전담하고, 다른 어느 방송설교는또 다른 어느 비서가 설교 원고 작성을 감당한다고 합니다.자칫하면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 비판이나 비난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자신의 일상사(日常事;an everyday experience)를 이와 같이 마지못해 억지로, 소홀히 여기는 마음으로, 애초의 정성과 사랑의 수고 없이 처리해 버리려는 유혹은 우리 자신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직장의 업무일 수도 있고, 주부에겐 가족들의 식탁을 차리는일ㅇ나 가사(家事) 전반일 수도 있고, 심지어 교회 내에서의 직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순간순간 자신을 새롭게 점검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일상사'의 매너리즘에 깊이 빠져들기 십상일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하는, 작고 평범한 모든 일상사들의 참 가치를 잊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요. 주님께선"무슨 일이든 다 주께 하듯 하라(골3:23)"고 하셨는데, 사소한 일들은 물론이고 애초엔 크나큰 각오와 다짐, 그리고 뜨거운 서명감으로 시작했던 일들조차도 '주님께 하듯' 감당하기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은 아무런 열정과생동감 없이 마지못해 꾸역꾸역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문득 깨닫게 되지않습니까봉투 하나 붙이고 소포 꾸러미 하나 포장하는 일이라도 평생토록 변함없는 정성과 이웃사랑의 마음으로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것이이 땅에선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하늘 나라에선 상급 하나하나를 쌓는 일이겠기에.한창 발송작업을 하고 있는데 장 집사님께서 직접 댁에서 손수 구웠다며과자와 피자를 들고 오셨습니다. "기도하며 만들었어요." 과자 맛이 100이라면 그분의 사랑과 정성의 맛은 200, 300이었습니다. 그는 참 복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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