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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부인의 인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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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6년 축출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부인 이멜다의 사치는 전설적이다.남편의 권력을 이용,미화 16억 달러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모아 세계 최고의 여성갑부였다는 말이 돌았다.권좌에서 쫓겨난 후 공개된 대통령궁에서는 구두 2200여 켤레와 빈 보석상자,최고급 구치 핸드백이 셀 수 없을 만큼 쌓여 있었다.508벌의 가운과 427벌의 드레스,71개의 선글라스와 함께.청구서를 조사한 결과 이멜다는 같은 날 오전 100만달러어치의 보석을 구입한후 오후에는 200만달러어치의 골동품을 사들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이멜다의 반응은 태연했다.“궁핍한 필리핀 빈민들은 숭배할 수 있는 스타를 원하며 나는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필리핀 국민들이 이 사치를 직접 목격하고 그들이 가난해야만 했던 이유를 깨닫기 바란다”는 말은 강고한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민중봉기의 원인(遠因)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해준다.세인의 조롱과 입방아에 올랐던 이멜다의 행적에 비해 우리 나라를 방문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부인 라오얀(勞安) 여사의 행적은 신선하다. 라오얀 여사는 18일 국내 건설업체의 주택전시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당초 80평형대 이상의 고급아파트를 관람하기로 일정이 짜여 있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30평형대를 둘러봤다는 것이다.“대다수 중국 인민들에게 80평,100평 아파트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서민들에게 필요한 30평형대 아파트를 봐야겠다”는 이유였다.라오얀 여사의 남편인 주룽지 총리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이다.사회주의 경제의 황제라는 뜻인 ‘홍색(紅色)경제의 짜르’라는 말은 주총리의 입지를 대변해준다.그러나 개혁에는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는 법.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정리해고자만 1200만명에 이르는 등 대량실업과 사회보장 축소로 대중의 원성이 엄청나다.‘철면무사(鐵面無私)’로 불릴 만큼 인정에 구애받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는 주총리는 적도 그만큼 많다.아시아 위크는 개혁에 임하는 주총리의 각오를 2500년 중국 역사의 10대 명언으로 꼽은 바 있다.“앞에 지뢰밭이나 만길 낭떠러지가 있다 해도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겠다”는 것이다.가족들이 인민들과 유리된 채 호화사치 생활을 누리려는 생각은 언감생심 꿈에도 하기 어려운 자세가 아닐 수 없다.아니면 인민들과 함께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려는 부인의 내조 덕분에 아무리 험난한 길도 자신있게 갈 수 있는 주총리가 아닐지.그 어느 쪽이든 최고 권력자 부인에 걸맞은 시찰코스는 으레 초호화 아파트여야 한다고 생각한 우리의 ‘상식’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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