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값 비싼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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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시대 한양에 올라온 선비들이면 남산 아래를 헤매게 마련이었다. 99칸만 해도 웅장한데 999칸 짜리 거대한 집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 소문난 거대한 집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칸수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 공간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당시 판서를 역임한 선비 홍귀달이 남산 아래 단칸 헛간(가옥)을 짓고 사는데 당호를 허백당이라 했다. 좁아서 어떻게 운신하느냐고 물으면 ‘들어가 누워 눈을 감으면 999칸의 생각을 해도 못다 채우는데 무슨 더 큰 욕심을 내리까’ 했다 해서 999칸집으로 소문난 것이다. 빈 술통 속을 집을 삼아 굴러다녔다던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발상 같은 말을 한 것이다.우리나라 선비 정신의 성지랄 수 있는 이 허백당이 자리잡았다는 남산 아래, 이번에는 한국 사상 가장 비싼 집이라는 건평 253평에 55억6000만원 짜리 빌라가 들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옛날에는선비들의 정신 관광거리였던 것이 오늘은 물질 관광거리로 탈바꿈한 것이다.우리 조상들이 공간을 측정하는 척도는 신척이라 하여 인체의 길이를 단위로 했다. 한칸하면 혼자 눕고도 뒹굴뒹굴할 수 있는 넓이요, 둘이서 짝지어 누으면 알맞는 공간이다. 그래서 조손 3대가사는 것을 단위로 하여 이상적인 집의 넓이는 삼칸이었다. 수백 수천칸 짓고도 남을 달 속에 겨우 초가삼간 지어놓고 부모를 모신다지 않던가. 한국 귀신 가운데 불행을 초래하는 모진 귀신이 쓰지않는 빈방에 안주한다는 공방귀신이다. 그래서 여염에서는 공방귀신 무서워 큰 집 짓기를 기피했다. 심지어 큰 집을 뜻하는 옥은 죽음에 이른다하고 작은 집을 뜻하는 사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을 길하게 한다고 했다. 55억원 짜리 집의 출현은 사치 차원이 아닌 어딘가 잘못 흐르고 있는 경제사회 심리의 돌출 현상으로분석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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