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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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게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 딱 한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생산성에 관한 질문을 할 것이다. 한국은 정보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인플레 압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견실한 경제 성장을 이룩해왔다.미국의 경우 경제의 10%에도 못 미치는 정보기술 부문이 지난 5년간 이룩한 경제 성장의 3분의1 이상을 기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상당부분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 비롯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현존하는 기술을 응용함으로써 생산성은 크게 향상된다. 길을 닦는 데 사용되는 대형 트랙터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트랙터가 고장났을 때 문제를 파악하고 엔진을 수리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그동안 도로포장을 위해 동원된 인력은 일손을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요즘에는 엔진에 랩톱 컴퓨터를 연결시키기만 하면 화면에 엔진의 내부구조 도면과 함께 고장난 부분이 바로 표시돼 나온다. 며칠씩 걸리던 수리는 몇 시간이면 끝날 테고 도로 작업은 시간 손실이 거의 없이 계속될 수 있다.신경제(New Economy)에서는 공급이 급속도로 확대될 수 있다. 그로 인해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공급증대와 비례해 수익이 늘어난다는 것이 신경제의 논리이다. 팩스효과를 한번 생각해보자. 팩스기기가 단 한대 밖에 없다면 이 기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하지만 이웃이 팩스기기를 갖고 있다면 이 기계의 가치는 올라간다. 다른 사람이 팩스기기를 장만할 때마다 이득을 보게 되므로 총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오르게 된다.공업제품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웃이 자동차나 세탁기를 구입한다고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총 수익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구경제(Old Economy)에서는 정부의 부양책이 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게 된다. 그 결과 인플레가 문제시되고 수급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신경제에서는 공급이 늘어나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된다. 경제성장의 제한 속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한 경기침체를 겪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신경제의 팩스효과 덕분에 인플레 우려 없이도 성장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신경제에서는 기업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신경제 하에서 기업의 핵심 자산은 건물이나 장비와 같은 고정자산이 아니라 기술과 재능, 그리고 정보다. 회계기준에 따른 장부가치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인재를 잃으면 기업의 가치는 큰 타격을 입는다.기업구조도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전통적인 기업의 피라미드 구조는 이제 적합하지 않다. 새로운 조직은 한명 한명 중요한 선수들로 이뤄진 운동 팀처럼 종업원이라기보다는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구축하는 형태를 갖추게 된다. 기업의 구조는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고 의사결정은 파트너들간의 협의를 거쳐 이뤄지게 된다.환경이 급변하면서 아웃소싱도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중요 수단으로 부상한다. 시스코사의 경우 대부분의 작업은 회사 외부에서 이뤄진다. 시스코는 38개의 제조공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중에 시스코 소유 설비는 단 두개에 불과하다.시가총액상 세계 2대 업체인 시스코는 다른 업체들이 작업하는 것을 감독하기만 하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자사가 경쟁 우위를 갖고 있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맡기는 전략이다. 매출과 수익을 올리면서도 극히 제한된 자산만을 보유하고 직원 수도 상대적으로 적게 둔다는 것이다.신경제에서는 매출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지리적인 요인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온 세상이 시장이고 경쟁지가 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다 다양화된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다.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이 아니라 고도의 다각화(Mass Customization)야말로 고객 만족을 불러오는 길이다.의류업체를 예로 들어보자. 고객들은 회사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다양한 색상과 소재의 셔츠와 바지를 맞춰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청바지 업체인 리바이스의 경우 고객들이 맞춰볼 수 있는 의상조합이 170만가지에 달한다고 주장한다.이것이야말로 기업체와 고객에게 모두 이익을 주는 윈-윈(win-win) 방식이다. 기업은 정확히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가격경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고객들은 자신이 선택한 조합을 갖기 위해서는 다소 높은 가격이라도 지불하려 하기 때문이다.고객 만족도는 높아지고 이에 따라 그 회사 제품에 대해 더욱 충실하게 된다. 만족해하는 고객은 기업 입장에서 무엇보다 좋은 선전이 되므로 자연 마케팅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한국이 국제 경쟁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지는 한국 기업 경영자들이 새로운 경영 기술을 얼마나 도입하느냐에 달려 있다.지금도 많은 한국 기업들은 수직적이고 관료적이고 독재적인 기업구조 때문에 조직의 유연성과 민첩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인들은 가장 재주가 많고 근면한 사람들로 꼽힌다. 한국 경제는 분명 신경제의 패러다임 아래 승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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