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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역할 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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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은 토로한다.“가족을 위해 `돈버는 기계'처럼 직장에 청춘을바쳤다.아이의 친한 친구가 누군지,사춘기를 겪는지 돌아볼 틈도 없었다.현실적으로 가장인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건재해야 가족들도 제대로 건사할 것이 아닌가.가장이 사회적으로 실패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변변치 않다면 누가 내가족을 먹여 릴 것인가.그러다 보니 가정에 충분히 시간을 배려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냐”사실 고속 경제성장 과정에서 그동안 아버지는 집안에서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였다.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가난한 환경속에서 성장했다.자식에 대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 권위적인 가부장적인 교육환경아래 자랐다.그것이 싫은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그런 환경을 물려주지 않고 싶어한다.그러나 여건은 열악하다.먹고 살고 내집마련하고 자식들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뛰어야 했다.생각은 고루한 가부장적 전통에서 벗어 나려고해도 행동은 따라주지 않는다.그러나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한다.그런 아버지의 입장을 한편으로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불만이다.서울대 한경혜 교수는 “전에는 일에 지쳐 가족의 일상에 관여하지 못해도 아버지의 권위는 도전받지 않았다”며 “그런데 감량경영,조기퇴직,명예퇴직,인사파괴 등 폭풍이 일터에 몰아치면서 여태까지 아버지가 딛고 서있던 생계책임자라는 받침대가 흔들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돈을 벌어오는 일 말고는 `아버지'라는 기능적 부재에 익숙해진 가족들 사이에서 뒤늦게 자신의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96년 출간돼 주목을 받은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열풍은 이같은 아버지들의 불안이 배경에 놓여 있다.이제는 뼈빠지게 일만 해서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게 문제.변화하는 사회에서 생계유지자로서의 아버지 역할과 함께 이제는 정서적 유대감을 만족시켜야 하는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같은 현상을 `부권의 저하'라고 생각하고 가부장적 권위에 연연해 하는 아버지들은 자식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지적이다.수원대 이주향 교수는 행복해지려면 아버지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가정은 더이상 남자의 경제력에만 의존하는 경제공동체가 아닙니다.아버지 혼자 돈을 벌어올 때는 수직적 명령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내들도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사회는 더이상 가부장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아버지가 수평적인 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아버지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사실 젊은 세대에서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전형적 아버지 상은 깨진지 오래다.쇼핑센터나 지하철 등지에서 엄마 대신 아이를 업은 젊은 아빠를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무역업체 K사 대리 임모씨(36)는 “ 어릴 때 숙제하는 것을 아버지가 옆에서 지켜보면 갑자기 글씨가 삐뚤삐뚤 해질 정도로 아버지는 무섭고 거리감있는 존재였다.정답게 얘기를 나누거나 장래문제를 얘기해 본 기억이 없다”면서 자신은 아이들이 고민거리를 들고 찾아올 수 있는 친구같은 아버지가 돼 주고 싶다고 말한다.좋은 아버지들의 모임,동화구연아버지모임이 생겨나고 96년 월간 `아버지와 가정' 창간 등은 변화하는 아버지상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을 보여준다.하지만 이같은 부성문화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데 아버지들의 고민이 있다.중앙부처 공무원인 정규상씨(36).“직장일이 워낙 많아요.제대로 일을 하려면 밤 10시 귀가는 고사하고 일주일에 서너번은 자정이 넘어요.아이가 아빠를 좋아하는데도 맘껏 놀아주지 못해서 괴롭습니다”월간 `아버지와 가정'의 설문조사결과 30,40대 아버지의 가장 큰 고민은 가족과 함께 지낼 여유가 없다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래서 아버지들은 항변한다.“나도 회사에서 퇴근만 일찍 시켜주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어”하지만 가족을 위해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 아버지들의 항변이 언제까지 통할까.맞벌이주부인 주모씨(33·성산동)는 “진정한 사랑이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일때문이라지만 기분에 휩쓸려,자기만 즐기기 위해 가는 회식자리는 없었을까요.결혼한 여자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관계 거의 끊고 살아요.직장에서도 회식자리에 빠진다고 핀잔을 듣지요.하지만 맞벌이 남편들이 애 보러 간다고 술자리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라고 말한다.일과 직장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들에게 `선택론'을 제기하는 연세대 조혜정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마냥 사회가 일찍 귀가시켜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요.각자 알아서 용기있게 가정이냐 직장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하지만 21세기에는 가족관계의 친밀성이 높은 사람이 성공할 겁니다.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 상황대처에도 빨라 새로운 일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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