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생각하는 교육
본문
아들 형제를 둔 어머니가 있었다.어머니는 늘 큰아들을 못 마땅했다.공부도못하면서 남에게 이것저것 나눠주기 때문이다.반면 작은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에쏙드는 아들이었다.공부도 잘하고 사교성도 있어 학급 회장도 하고,약아서 제 것을잘 챙겼다.그 어머니는 작은아들을 키우는 기쁨에 산다고 말했다.그런데 어느 날그녀를 어처구니 없게 한 일이 생겼다.두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보석점 앞에서 보석을구경하게 됐다.어머니는 무심코 “얘들아,저 반지 참 예쁘지.너희들이 커서 저반지 엄마 사줄 수 있지”하고 물었다.그러자 큰아들은 얼른 “그럼 엄마,백 두개나사줄게”라고 말했다.큰아들의 대답에 ‘저런 푼수’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않았다.그런데 작은아들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난 좀 생각해봐야 해.내가크면 나도 색시가 생기잖아.색시 사줘야지”라고말하더란다.어머니는 상처받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겨우 자리를 잡아 앉힌큰아들은노인이 차를 타자 벌떡 일어서고 작은아들은 모른 척하고 앉아 있었다.그어머니는 처음으로 ‘바보짓’을 하고 흔들리는 차에 서서 휘청거리고 있는 큰아들이예뻐보이고 ‘영리한 짓’을 한 작은아들이 얄미웠다.그러나 이제 제대로 눈이 떠져 푼수짓을 하는 큰아들이 예뻐보인 이 어머니에게만약 큰아들이 “엄마,이 반지 백개 사서 철이 엄마에게도 주고,석이 엄마에게도주고,슈퍼마켓 아줌마에게도 …”라고 했다면 어떠했을까.반드시 머리를 쥐어박혔을것이다.예전의 우리 생활 속에서는 주고 받는 연습이 적당히 이뤄졌다.떡 한 조각이라도혼자서차지할 수 없었다.침을 흘리고 선 대 여섯 명의 형제가 평화롭기 위해서는골고루 나눠 먹어야 했고 모처럼 건더기 있는 찌개라도 상에 오르면 서로 숟가락질횟수를 눈치껏하지 않으면 눈총을 받아야 했다.모처럼 시루떡이라도 찌는 날이면 시루 주위에 비잉 둘러앉은 자식들에게 어머니는먼저 이웃과 나누는 기쁨부터 주는 지혜가 있었다.김이 설설 오르는 떡을 굵은 실로썩썩 잘라 앞집 뒷집 옆집 건넛집의 몫을 먼저 떼어놓았다.첫째는 앞집으로,둘째는뒷집으로 떡을 돌리고나야만 제 몫을 받을 수 있었다.이웃과 나눌 때의 기쁨은 떡맛 못지 않았다.겨울이면 어느 집 사랑채에 모여 이 집 저 집에서 싸온 고구마를 굽고 알밤을 구워너 하나먹고 나 하나 먹는 나눔의 끈끈한 정이 있었다.헐렁했던 사립문이 완벽한 철대문으로 바뀌면서 우리 아이들은 함께 나누는 학습의 장을 많이 잃었다.나누고주는 사랑은 체험을 필요로 한다.어려서부터 주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면 풍성한 삶을살 수가 없다.사랑은 감정적이라기보다 의지적이다.“사랑은 행하는 만큼 사랑하는것”임을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웠다.우리 자녀들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것을 알게 하려면 어려서부터 줄 수있는기회와 장소를 접하게 해야 한다.사랑은 체험하는 만큼 자라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