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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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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대규모 자연 재해의 첫 희생양은 남아프리카 모잠비크였다. 한달 가까이 계속되는 폭우로 이미 100만명 이상의 수재민을 냈고, 지금도 1만여명이 나무나 지붕 위에서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계속 비가 내려 이웃 나라에서 댐 수문을 열 경우, 저지대인 이 나라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대형 사이클론까지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중이라고 외신은 숨가쁘게 전하고 있다.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왜 하필 아프리카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인 모잠비크란 말인가 16년간 치열한 내전을 치른 후 이제 겨우 길 닦고 다리 내며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곧 물이 빠진다고 해도 집과 토지를 잃은 이들이 고스란히 이재 난민이 될 것이니 큰 걱정이다.나는 지난 95, 96년 세계일주 도중 아프리카 대륙을 지나면서 무수한 난민들을 만났다.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에리트리아 등지에서 경험한 난민촌은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쟁터’였다. 나도 처음에는 죽어 가는 난민들에게 ‘기념사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비정한 구경꾼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찾아보게 되었고, 나중에는 기꺼이 보급품을 나누어 주거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도 했다.소말리아 난민촌에서 5살짜리 사내아이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다. 내전 중에 부모를 잃었다는 애가 어찌나 천진하게 잘 웃던지…. 웃을 때 혀를 내미는 버릇이 있는데, 분홍색 혓바닥이 너무나 귀여워 ‘핑크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예뻐했다. 비자문제로 며칠간 큰 도시에 갔다 돌아와 보니 3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장난친다고 다 숨었거니 했는데 그 사이 설사와 이질이 돌아 ‘핑크보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고 했다. 이 전염병은 링거와 항생제 등 우리 돈 1000 원 미만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것이었다.식량도 마찬가지다. 난민촌에서 나누어 주었던 기본 식량은 1인당 하루 옥수수 400, 그리고 약간의 소금과 식용유였다. 성인 한 사람의 12일치 양식 값이 겨우 1000 원 남짓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것마저 없어서 산 사람이 미라처럼 뼈만 남아 서서히 죽어가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 난민촌이다.놀라운 것은 전염병, 지뢰, 강간, 굶주림 등 갖은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일수록 눈이 샛별처럼 반짝인다는 사실이다. 어느 난민촌이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면 합창으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학교놀이 하자면 까불던 아이들이 갑자기 진지해지고, 숙제로 오늘 배운 영어 단어 10번씩 써오라면 다음날 20번씩 써온다.모잠비크의 피난민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인성 전염병과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농경지 유실로 무서운 굶주림이 닥칠 것이다.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것이다.모잠비크. 이름도 귀에 선 이 나라에 우리가 그 ‘누군가’가 될 수는 없을까우주로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우리는, 그야말로 ‘튀어봐야 지구 안’에서 살아야 하는 지구촌 사람들이다. 이런 좁은 곳에 살면서 어디까지는 내 이웃이고 어디서부터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나 이불 안에서 활개치듯 자기 이웃의 고통만을 헤아리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저편, 천길 벼랑 끝에 겨우 손가락을 걸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 손을 잡아끌어 올려주고 싶지 않은가. 1000원으로 그 목숨과 희망을 구할 수 있다는 데야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오지여행가·‘바람의 딸’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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