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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인생 엘리아 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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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진실을 배반한 대가의 고통을 한 평생 걸머지고 사는 카잔,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후회의 삶을 살았을까 또한 우리는 이러한 멍에에 멀리 서있는 사람들인가(브니엘 편집부)지난주에 있었던 할리우드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엘리아 카잔이 공로상을 받을 때의 광경이었다.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테네시 윌리암스 원작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아카데미 주연여배우상, 조연남자배우상, 조연여배우상을 탔으며, 역시 그 자신이 각색, 감독한 존 스타인백 원작의 [혁명가 자파타]는 칸느영화제 주연남우상, 아카데미 조연남우상을 탔다. 또한 스타인백 원작의 [에덴의 동쪽]에서는 제임스 딘을 일약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이처럼 세계적인 명작들을 여러 편이나 만들어낸 그였지만 지금까지 아카데미상을 심사하는 아카데미의 이사회에서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이 거론된 적이 없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1952년 미국에 매카시 선풍이 휘몰아치던 때 카잔은 하원의 비미국활동위원회에 출석해서 그가 공산당원 시절에 함께 공산주의운동을 한 혐의가 있는 영화계동료들의 이름을 털어놓았다. 그즈음 3백명이 넘는 시나리오 작가, 배우, 감독들이 헐리웃에서 쫓겨났다. 가장 개성적인 주연배우중의 한 사람이었던 에드워드 G 로빈슨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몇 년 후에나 간신히 단역을 맡을 수 있었다.매카시의 비미국활동위원회에 불려간 영화인은 카잔 이외에도 많았다. 시나리오 작가 버너드 고든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위원회에 협력한다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협력]이란 다름아니라 [빨갱이] 동료들의 이름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배신자가 되라는 이 요청을 거부한 그는 그 후 부엌용품의 판매사원 노릇까지 해가면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갔다. 고든을 비롯해서 대부분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이었다.매카시 의원 자신도 대중과 언론의 이목을 끄는데 헐리웃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카잔에게 찍힌 [밀고자] [배신자]라는 낙인의 무게가 더욱 컸던 것이다. 카잔이 공로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80세의 고든은 이렇게 말했다. {카잔의 배신은 죄없는 사람들을 파탄에 빠지게 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아카데미상에서 추악한 빨갱이사냥의 기억을 미국이 까마득히 잊어버렸다는 인상을 세계에 안겨준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그후 카잔은 말론 브란도 주연의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 작품상 오리지널 각본상 김독상 흑백촬영상 미술상 주연남우상 조연여우상을 휩쓸었고,[군중속의 한 얼굴]이라는 화제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한때 절친한 친구였던 아서 밀러마저도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90세의 카잔이 상을 받으려 무대 위에 나왔을 때 많은 영화인들은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굳은 얼굴로 팔짱을 낀체 자리에 앉아서 무대 위를 응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짤막한 수상인사에서 자기에게 상을 주기로 한 아카데미 이사회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끝을 맺고는 멋쩍게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퇴장하는 그의 뒷모습은 마냥 초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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