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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대세 거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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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는 한 집안도 마찬가지겠지만,특히 한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면 대개는 분란이 잦아지게 마련이다.우선 살기가 힘들면 너나 할 것 없이 짜증부터 나는 법이고,다음은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놓고 구성원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정쟁(政爭)과 그에 따른 국론분열이 이의 대표적 형태일 것이다.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이 그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경제는 경제대로 제2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악화돼가고 있는 가운데 사회 각 분야에서는 집단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실정이다.또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힘을 합쳐 국가 경영 방책을 마련해도 부칠 마당에 힘 겨루기로 국력을 소모해 왔다.나라가 이처럼 어려운 지경에 빠질 때면 생각나는 역사 인물이 한 사람 있다.조선 인조 때의 최명길(崔鳴吉)이다.그는 익히 아는 대로 병자호란을 당하여 조정의 대세였던 옥쇄론(玉碎論)에 홀로 맞서 청나라에 대한 항복 문서를 직접 작성하고 적진에 들어가 협상을 벌였던 주화론자(主和論者)였다.그가 자신의 항복 문서를 빼앗아 찢어버린 김상헌(金尙憲)을 향해 “대감이 항복 문서를 찢는 것도 애국심의 발로일 것이며,저처럼 항복 문서를 쓰고 또 찢어진 항복 문서를 다시 수습하는 것도 애국심의 발로 아니겠느냐”며 조용히 웃었다는 일화는 소개하기조차 새삼스러울 만큼 유명하다.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물론 후대의 평가도 상당기간 부정적이었다.그의 주화론이 채택돼 국왕은 삼전도(三田渡·서울 송파)에서 적장에게 큰 절을 하며 용서를 비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고 왕세자와 대신들이 적지에 인질로 잡혀가는 참상을 겪어야만 했다.명분만이 정치와 개인 삶의 모든 것이었던 당시로서는 최명길이 이단아이자 만고 역적일 수밖에 없었다.당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최명길이 명분을 저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으리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분만 좇아 아무 힘이 없으면서도 신흥 강대국인 청나라에 맞서 다간 종묘사직은커녕 나라와 백성 전체가 온전치 못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그러한 판단이 그로 하여금 만고 역적이라는 조야(朝野)의 돌팔매를 달게 받도록 만들었을 것이다.최명길의 소신에 따른 ‘시류에의 반란’은 그 휠씬 이전부터 있어 왔다.인조반정 후 진행된 개혁 과정에서 그는 청의(淸議),즉 유학자 집단의 여론만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고 요즘말로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유림들이 입만 벌리면 외쳐대는 대의명분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유학이 국가 경영 철학이자 수단이었고,유림이 여론 주도층이자 국가경영 집단이었던 당시로선 이같은 주장이 어쩌면 천동설에 맞서 터져나온 지동설만큼이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나라가 어려울수록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또는 최명길식 시류에의 반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비록 명분에서 밀리고 대세를 거스르는 것이라 해도 그 길만이 소속된 집단과 나라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소신이 선다면 돌팔매를 맞을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무조건 등원 결정도 이러한 범주에 포함시키고 싶다.검찰총장과 대검 차장 탄핵안 처리 무산과 관련하여 여론의 대세는 분명 한나라당 편이었고,그래서 현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정부·여당에 대해 좀더 강공을 취해줬으면 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러기에는 나라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는 게 이총재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실제로 이총재가 이러한 대세와 명분만 좇아 여당과의 대치 상황을 좀더 지속시켰더라면 나라는 나라대로 더 어려워지고,한나라당도 여당과의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민심을 얻기 위한 전쟁에서는 여당과 함께 패자가 됐을 것이다.난국에 처한 우리 사회는 지금 명분과 대세에 역행할 수 있는 내부 반란자들의 용기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여권 내에서도 지도부의 결정에 아니오 하고 소리칠 사람이 있어야 하고,노조에서도 그렇게 가다간 우리 모두 함께 죽는다고 반기를 들다 몰매를 맞을 사람이 나와야 한다.호남에서도,영남에서도 저쪽만 잘못한 게 아니라고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언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은 필수적이지만 상황이 워낙 어려우니 서로 보듬고 가자는 소리도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최명길이 찢긴 항복 문서를 수습하면서 “당신의 행동도,내 행동도 모두 애국심의 발로이고,그래서 당신도 나도 모두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했듯이 상대방의 충정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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