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와이미

본문

주께서 쓰시겠다고 한다.지난 1998년 미국 샌디에이고시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제2차 자마대회(JAMA·미주대각성운동)가 열렸다. 이 때 “당신과 나의 나라 미국이 타락해 있습니다.젊은이들이여, 미국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시다.우리 한인들의 사랑의 힘으로 이들을 치유합시다.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세계를 가슴에 품고 나갑시다” 한 노 신사가 수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사자후를 토했다.이 사자후는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아멘’을 외치게 하며 뜨거운 도전을 주었다. 이 노신사가 자마의 대표인 김춘근박사(63)이다.그는 한인 최초의 미국 정치학 박사이며 현재 몬트레이 캘리포니아 주립대 국제경영학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경희대 정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67년 세계적 정치학자의 꿈을 안고 미국에 건너갔다.서부의 사립명문 USC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김박사는 페퍼다인 대학에서 최우수 교수상을 받는 등 성공대로를 달렸다.그런 그가 하나님 손에 붙들리게 되었다. 76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와 간염으로 죽음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 와이 미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제가 왜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라고 울부짖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는 하나님께 철저하게 회개했고 치유를 받았다. 그는 다메섹의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으로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을 작정한다.80년부터 알래스카주립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16년간 알래스카에서 그리스도인 교수로서 충실하게 사역했다.이러한 그의 삶 가운데 제2차 하나님의 부르심이 85년에 일어났다.그 해 정초에 기도하던 중 하나님으로부터 “미국을 신앙으로 위대하게 만들라”는 비전을 받으면서 그는 미국을 변화시키는 전도사로 일어났다.그는 미국 전역을 돌면서 회개와 사랑운동을 벌였다.특별히 소수민족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한인 젊은이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고 미국을 위해 기도하라”고 외쳤다.그는 미주내 1.5세와 2세들을 영적으로 훈련시켜 미국을 깨운다는 자마대회를 비전과 열정을 담아 태동시켰다. 93년 자마가 창립되었고 96년 미국 덴버에서 2천5백여명의 한인 젊은이들이 모인 1차 자마 전국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당시의 2차 대회는 자마가 결코 한사람의 비전만이 아니라 모든 한인들의 비전이 되게 하였다. 소수민족이 미국의 주류사회속에 “회개하고 부흥하라”고 던지는 메시지는 미국사회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한인들 스스로도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 갈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일생을 담은 글이 ‘와이 미(Why Me)’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62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