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사랑의 고치미

본문

"천국이 따로 없어요 여기가 바로 천국이네요"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김상순님(44세)이 활짝 웃으면서 말한 천국이란 바로 그녀의 집이다. 장애인이기에 받는 설움과 가난 속에서 살아온 그녀가 조그만 부엌이 딸린 집을 천국이라고 하는 까닭은 바로 얼마 전 집안에 수도가 놓여졌기 때문이다.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손끝으로 벽을 더듬어 가며 멀리까지 수돗물을 길러 다녀야 했다. 또 행여 누가 보세라 한창 더운 낮에는 간단한 등목도 못하고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서 물소리를 죽이며 겨우 씻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에 수도가 놓이고 배수로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부엌에 싱크대까지 설치되고, 따로 샤워기를 달아서 물 긷는 수고로움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고, 낮에도 시원한 목욕을 할 구 있게 되었다. 김상순 님이 꿈으로만 여겼던 이런 일들이 단 하루 사이에 이뤄진 것은 바로 '사랑의 고치미' 사람들 덕분이다.사랑의 고치미는 대전에 있는 공동주택 관리업체인 '대흥'의 사내 봉사모임으로 주위의 가난한 이웃들의 보금자리인 집을 보수해 주고 불편한 데를 손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전체 직원 2천여명 중 7백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사랑의 고치미가 생기기 전부터 소장단, 과장단, 여직원 등 직급별 모임을 통해 불우 이웃돕기를 해올 만큼 사회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회사 내에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자는 데 뜻이 모아졌고, 자신이 가진 전문기술을 활용하여 집 고쳐주기 운동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지난해 2월, '사랑의 고치미'가 태어났고 4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섯다.전기, 설비, 배관 기술자등으로 이루어진 기술부, 여성 중심으로 빨래, 청소 등 노력 봉사를 하는 봉사부, 봉사활동을 주선하고 조사하여 지원 해주는 업무부로 나뉘어 운영되는데, 보통 30여명이 한 조를 이루어 매달 두 차례씩 무료로 집을 고쳐주고 있다. 이들은 주로 지붕, 도배, 전기, 상하수도, 보일러 등을 점검하고 보수하는 일을 한다. 대상은 미리 업무부에서 선정하는데 도시 빈민, 장애자,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불편해도 참고 사는 어려운 집들을 택한다. 수리하는 데 드는 경비는 회원들이 내는 월회비 3천원 과 한 대기업에서 지원해 주는 몇 가지 자재들로 충당된다.업무시간 외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주말을 이용한다. 보통 하루 안에 마치도록 일정을 잡지만, 보일러 공사까지 하게 되면 족히 2-3일이 걸려 퇴근 후에 밤일을 하기도 한다."처음에는 어려웠죠. 좋은 뜻임에도 불구하고 어수선하게 체계도 잡히지 않고…. 하지만 따뜻한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달 되더군요. 지금은 봉사활동 가는 날만 기다리는 회원들도 부쩍 늘었으니까요."처음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웃음으로 전하는 회장 김경임 님(37세). 맏언니, 누나로서 모임을 이끌어 온 넉넉한 마음씨가 느껴졌다.1,2월에는 날씨가 추워 새로 집을 수리하는 일 대신 그 동안 스리한 집을 보수, 점검하는 기간으로 삼는데, 점검해야 될 사항이 수월찮게 많다."처음엔 참 회의적이었어요. 먹고 설기도 힘든 형편에 무슨 봉사활동인가 하고요. 그런데 막상 한 번 해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온 뒤에도 말할 수 없는 감동이 계속 가슴에 남더군요. 그것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얻는가 봅니다."여름날, 황익식 님(48세)은 뜨거운 햇볕 아래 무리하게 일을 하는 바람에 쓰러져 주위 사람들을 좀 놀래키기도 했다. 그 뒤로도 늘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던 그는 도배를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탑차로 물건을 옮기다가 주차된 다른 차를 건드리는 바람에 하루 봉사에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물어주기도 했다.그 동안 가장 어렵고 힘이 들었던 공사는 홀로 외롭게 사는 강봉준 할아버지(73세)의 집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고치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집에서 기거하셨는지 묻고 싶을 만큼 폐가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손봐야 하는지 난감했다. 하지만 구석구석 무너진 벽부터 해로 쌓고 방바닥을 새로 깔고 하면서 차츰 집꼴을 갖춰 나갔고, 마지막 도배까지 마쳤을 때는 신혼방을 들여도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훌륭한 집 한채가 완성되었다. 게다가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는 물을 퍼올리기 힘든 우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도를 끌어들여 쉽게 물을 쓸 수 있도록 했다. 공사가 다 끝나자 할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훔쳐 내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남들에게 집을 수리해 주지만, 마음을 수리하는 것은 바로 저희들이에요. 저희는 주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마음 뿌듯함을 받는 것이죠."모두의 마음이 그랬다. 그들은 진정 따스한 가슴으로 이웃의 집을 고티면서 자신들 안에도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사랑의 집 한 채를 멋지게 지어가고 있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62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