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작품 넘치는 기쁨
본문
얼마 전 아주 커다란 대작 그림 하나를 완성했다.몇 달 전 어떤 기관의 요청으로 그리기 시작한 이 작품은 크기가 너무 커 사진을 찍기도 표구를 하기도 여간 어렵지 않았다.간신히 바닥에 펼쳐놓고 그렸지만 그림이 들어갈 화판과 액자는 화실의 출입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결국 베란다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그림을 베란다의 화판에 붙이려 하는 날 폭풍을 동반한 비 소식이 있었다.하루 이틀 후 그림을 화판에 붙이자고 제안했는데 조수는 괜찮을 거라며 한사코 그날 화판에 붙이고 액자를 끼우자고 우겼다.20여 년 동안이나 나를 도와온 조수인 데다가 표구사 또한 베테랑이어서 결국 그렇게 하라고 하고 귀가했다.밤이 되면서 폭풍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 불안해진 나는 조수에게 전화를 했다.그때가 밤 11시.조수는 너무 염려 말라고 했으나 책임을 느끼고 화실로 향했다.자정이 다 돼 도착해보니 정전이 됐었고 그림을 붙여 놓는 화판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그가 막 더듬더듬 화판 쪽으로 다가가는데 급기야 그것이 넘어지면서 아뿔싸,공들여 그린 그림이 찢어져버린 것이다.다음날 아침,그는 내게 침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그림이 파손되었노라고,그것도 선생님이 가장 핵심을 두고 제작했던 화면의 중앙 부분이 파손되었노라고.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하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조수와 표구사를 책망하는 일이었고,다른 하나는 그들을 위로하고 이 일에 하나님의 무슨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며 감사하는 일이었다.첫 번째는 지극히 쉬운 일이었다.하지만 두번째를 선택하기는 어려웠다.화실에 도착한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조수와 표구사에게 말했다.“차라리 잘됐어요.사실 그림의 중앙 부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할 수만 있으면 다시 하고 싶었는데 다시 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게다가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화판이 넘어져서 그림이 모두 파손되지 않고 액자도 말끔하니 얼마나 다행이에요.오늘 내일 벗어붙이고 일하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거에요”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나는 무슨 큰 좋은 일이라도 생긴 듯이 기쁨에 들뜬 것처럼 말했다.며칠 후 그림의 일부를 다시 그리고 일부를 수정,보완해 화판에 붙였을 때 확실히 처음 그림보다 월등히 좋아 보였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쁨’이 몇 날 며칠 내 가슴에 파도치는 것이었다.찢어진 그림 앞에서 악마의 부추김을 뿌리치고 성령의 음성을 듣기로 한 내 선택의 대가였다.이런 선택,할 수만 있으면 평생토록 하고 싶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