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뚫은 사랑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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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 하버드 대 케네디스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김성은씨(30)는 할말을 잊었다.손가락 몇 개만 겨우 움직일 뿐인 척수마비 장애인 남편(이일세:35)과의 운명 같은 만남, 부모의 반대를 무릎쓴 [몰래 결혼식], 처음 맛본 가난과 24시간 계속되는 뒷바라지 ...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9살 때 미국에 건너간 金씨는 보스턴 대에 다니던꿈 많은 철학도 였다. 적어도 89년 5월 [모국어를 배우라]는 권유에 따라연세대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아버지와 친구인 李光魯(이광노)황해도지사의 아들 一世씨와 우연히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녀의 운명은 갈렸다.처음 본 李씨는 처참했다. 84년 1월 29일 용평스키장에서 당한 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혼자서는 휠체어도 끌 수 없었다. 다니던 학교(외대 불문과)도포기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밝기만 한 李씨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다.두달 남짓 고국에 머물면서 李씨를 만난게 세차례.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에 둘을 이어준 건 李씨의 편지 였다. 한자 한자 정성껏 새긴 글을 뻐근한가슴으로 읽어 가면서 金씨는 그를 평생 배필로 삼겠다고 마음 먹었다.당연히 부모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金씨는 미국으로 놀러온 李씨를 90년1월 27일 뉴욕의 조그마한 한인교회로 데리고 갔다. 그들의 쓸쓸한 결혼식을 축복해준 유일한 증인은 미국유학중이던 李씨의 동생뿐이었다.결혼식을 마친 후 3년동안의 서울 생활에서 부부는 번번히 큰 좌절을 맛봤다. 하고 싶은 공부는 고사하고 외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움직이면 돈이 들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 남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데 일생을 바치자.}93년 벙커힐 커뮤니티 칼리지에 남편이 입학하면서 金씨는 남편의 충실한손발이 낮다.새벽 5시에 일어나 남편을 씩기고 용변도 도왔다. 밤에는 수업을 녹음한테이프를 틀어주고, 리포트 작성도 도왔다.그녀는 집세를 줄이려고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장애인 아파트를 골랐다. 하루가 지나면 값이 반값이 되는 채소만을 고르자 상점 주인도 혀를 내둘렀다. 월 생활비는 1백달러 남짓. 시부모들이 몇차레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지만, 金씨는 단호 했다. {스스로 일어서면 그때 도와주세요.}내조에 보답하듯 남편 李씨는 1년후 옮긴 매사추세츠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정규 코스 4년 보다 1년 빨리 마쳤다. 4.0 만점에 3.7점. 오는 6월 1일에열리는 졸업식에선 우등생 표창을 받는다.그리고 지난달 9일 최고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에 당당히 합격했다.8일 오후, 국제전화로 심정을 묻자 그녀는 조그많게 말했다. {우리들의 러브스토리는 이제 겨우 첫장을 넘긴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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