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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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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자랑하는 파리 대하수도가 건설되기전 까지만 해도 파리는 주택가에서의 오물투기 풍속으로 불결하기 짝이없는 도시였다. 날이 저물면 각 가정의 2층 창문에서 '가르디로(물조심)'라고 소리치며 변기에 담긴 오물을길가에 쏟아붓는 바람에 길가던 행인들이 뒤집어 쓰기 일쑤였다.보다 못한 파리 시당국이 오물투척 행위자를 잡아다 태형(笞刑)까지 가하며 못된 풍속을 근절시키려고 했지만 마땅한 하수처리 시설이 없던 때라서 별효과가 없었다.이때문에 수세식 화장실과 하수처리 시설이 갖추어진 일부 귀족들의 거주지역을 제외하고는 평민계급이 사는 주택가에는 1년내내 악취때문에 코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당연히 왕실이나 귀족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은 낙후된 하수문화(下水文化)에 기인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까지 있을 정도다.빅토르 유고의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양녀 코제트의 약혼자마리우스를 등에 업고 도망쳐 목숨을 구한 파리 대하수도가 완성된 것은 나폴레옹 3세때였다.그는 허약한 정치기반을 공고히 하기위해 시민의 생활환경 개선이란 시정목표를 세우고 하수도 전문가인 오스만을 발탁, 파리의 명물이 된 대 하수도를 건설한 것이다.2원화된 상수관을 통해 식수와 허드렛물을 따로 공급하고 가정에서 나오는생활하수와 빗물등 자연수를 분리시켜 세느강에 흘려보내는 하수분류 시스템이 구축된 것도 이때였다.언필칭 선진국 문턱에 접어들었다면서도 우리의 하수문화(下水文化)는 여전히 낯뜨거운 수준의 후진성에 머물러있다. 엊그제는 수도 서울의 한 구청에서분뇨까지 섞인 오수를 몰래 한강으로 흘려 보내온 사실이 들통나 빈축을 사고있다. 깨끗한 한강 지키기에 앞장서야 할 관청까지 이 모양이니 곤장을 칠수도 없고 그저 불쌍한건 시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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