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축복된 길을 가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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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캐나다 대사관에서 있었던 일이다.입구의 민원인 대기석은 여러명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그 중에 선량한 눈빛의 백인이 보였다.청바지에 낡은 티셔츠였다.오랜 여행끝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피로의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웠다.잠시후한 여자가 쩔뚝거리며 그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어린 시절부터 소아마비로 장애가 된 것 같았다.삼십대쯤으로 보이는 그녀는 고생에 찌든 얼굴이었다.특히 싸구려로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초라한 모습이었다.그녀는 청바지를 입은 백인과 다정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전혀 다른 모습의 두사람 사이에 오가는 눈빛에 정이 담뿍 담겼다.은근히 호기심이 일었다.“남편이에요” 옆에 앉았던 내가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맞아요.우리 애기 아빠에요”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들 부부는 대조적이었다.남자는 미남이었고 여자는 예쁘지 못한 얼굴이었다.또 장애인이었다.동양인과 서양인이었다.그럼에도 둘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영혼의 결합같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나는 종종 이혼사건을 맡아 변호한다.수없이 계산하고 재고 생각들을 해서 결혼들을 했다.겉으로 보면 무엇하나 흠잡을 수 없었다.남자의 지위 여자의 집안.두 사람의 건강,명예 그런 것들이 대칭을 이루었다.식장에서 그리고 평소에 사랑도 충만해 보였다.그러나 많은 부부들의 가정이 어느날 바닥에 내동댕이 처진 유리인형처럼 파괴되고 있었다.황금새장만 있고 새는 없었다.사랑이 없는 가정들이었다.그곳에서는 여자의 모든 것이 흠이었다.권위의식과 소유욕에서 비롯된 극한 투쟁이 난무했다.“어떻게 만나셨어요”내가 물었다.얼핏보면 외형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 그 서양인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저 사람 88년에 마닐라에서 만났어요.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그곳으로 일때문에 가게 됐어요.당시 마닐라의 길거리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너무 많더라구요.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자라는거예요.너무 비참했어요.그런데 저 사람이 그런 아이들을 열명 정도 모아놓고 돌보는 거에요.거기서 인연이 되서 함께 일하게 됐죠” 그녀의 옆에서 남편이 겸연쩍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그녀가 자랑스럽게 남편을 보더니 다시 내게 말을 계속했다.“저이가 캐나다에 있을 때 페인트공을 했었대요.돈을 모아 세계여행을 하는게 저사람 꿈이었어요.캐나다는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너무 심심했대요.그래서 여행을 하다가 정착하게된 게 마닐라였어요.거기서 버려진 아이들을 보니까 도저히 그냥 갈 수 없더라는 거에요.주저앉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거죠.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십년동안 아이들을 돌봤는데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티도 나지 않고요”그랬다.직업이 무엇이냐는 의미가 없다.무엇을 하고 살고,얼마나 깊게 사느냐가 본질이었다.나는 그 캐나다인 남편에게 세계 최고의 페인트공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아내인 여자역시 달랐다.장애인인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수줍은 듯 가슴속에 숨어 있었다.옷로비 사건으로 고관 부인들의 거짓말 경연대회가 연일 신문 지상에 나왔다.기어이 장관 남편이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이 1면 톱을 차지했다.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사모님들의 얼굴이 핼쓱하다.권력과 재물의 옷을 벗기고 나면 그녀들 역시 더욱 허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옷로비 사건의 고관 부인들은 색깔과 모양이 현란한 조화라면 장애인인 그녀는 풀꽃향기였다.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이름모를 풀꽃들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녀는 나를 감동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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