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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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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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약 사달라고 하면서 죽지도 않아. 만날 죽을 것 같다고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하지만 밥만 잘 먹어."속초에서 여관을 경영하고 있는 서정순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걸쭉한 말이다."어떤 노인은 돌을 매달아서 바다에 던져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지. 아마 지금은 편히 사실 거야."몇 해 전 숨을 거두었던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서 할머니의 눈에는 금세 이슬이 맺힌다. 그녀가 거리의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아온 지도 이제 어느새 10여 년을 훌쩍 넘어버렸다.서 할머니는 투철한 신앙심을 가진 종교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배운 것이 많아 남다른 인생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정 많은 할머니였다.서 할머니와 함께 기거하고 있는 무의탁 노인들은 스무 명 남짓. 이곳까지 온 연유야 모두가 각양각색이지만, 여든이 넘은 이들 노인들의 하루는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무의탁 노인들을 돌본다는 일이 처음엔 서 할머니에게도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두 명의 노인도 아닌 대가족을 보살펴주기에 그녀의 옹색한 형편은 더욱 초라하기만 했다.그럴수록 할머니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맸다. 아무리 어려운 형편이어도 거리에 버려진 노인들을 매정하게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대소변 치우다 보면 내 손과 옷에 다 묻어. 하지만 뭐 더러울 게 있나. 그냥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그거지, 뭐."가을이 되면 서 할머니는 찬바람에 새벽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하지만 잠결에라도 발걸음은 2층으로 향한다. 노인들이 기거하고 있는 방에 창문은 잘 닫혀 있는지, 별일은 없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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