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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찬송가 만들기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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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찬송가 만들기 외길…오소운 목사1944년 2차대전 말,경기도 용인 아실리교회 예배당에는 유치부 어린이들의 성탄절무용극 ‘토끼의 성탄절’이 진행되고 있었다.토끼분장을 한 어린이들이 절구공이를 들고 떡을 찧는 시늉을 하자 천사복장을 한 합창단이 입장해 찬송을 불렀다.“쿵쿵쿵쿵 달나라 토끼님 예수님이 탄생하신 기쁜 이밤에 떡을 찧어요 떡을 찧어요…”무대 뒤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를 듣는 14세의 한 소년은 그 순간 찬송가 작가로 살 것을 하나님께 서원한다.그 서원대로 일평생 동안 어린이찬송가를 만들어 온 오소운 목사(70).당시 교회학교 교사였던 그가 4개의 현 중 2개의 현만 남은 바이올린으로 작곡한 ‘토끼의 성탄절’을 처음으로 무대위에 올린 것이었다.오목사는 그동안 어린이찬송가만 3백여곡,성인찬송가 2백여곡을 비롯해 6백여곡의 찬송가를 만들었다.어린시절 교회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그가 작사·작곡한 한두곡의 찬송은 불러봤다.‘보고 싶어 보고 싶어 예수님 얼굴’‘산골에 사는 주의 어린이’ 등은 지금도 애창되고 있다.특히 오목사가아끼는 곡은 ‘예수를 믿고’이다.“예수를 믿고 예수를 배워/바른 길 가니 서로가 돕고/서로가 아껴 언제나 즐거워/우리 우리 즐거운 가정/우리 우리가정 복받은 가정…”등의 가사말이 믿음의 가정의 모형을 나타낸다.그는 목사,작가,음악가 등의 많은 직함을 갖고 있다.친구들은 한 가지만하라고 충고하지만 그의 일생은 어린이를 위한 것,한 가지로 일관돼 있다.어린이를 위한 설교,동화,노래극,노래집 등 어린이를 위한 것은 무엇이든 했다.그는 57년 아동문학가 강소천 씨의 추천으로 월간 ‘새벗’에 동화 ‘네 거리의 플라타나스’로 등단한 후 대한기독교계명협회 편집인으로 지내다 63년부터 나운영선생에게 작곡사사를 4년간 받았다.65년에 첫 작곡집 ‘할렐루야’를 발간한 후 어린이 찬송가와 교회학교 노래를 작사·작곡했다.한국찬송가위원회 신작찬송가 작곡현상공모(78∼86년)에 7년 연속 당선됐으며 83년에 ‘모리아산 제단 위에’(55장) ‘진리요 생명이신’(177장)등의 두곡이 미국감리교찬송가 57장과 73장에 채택됐고 ‘주안에 기쁨있네’(154장)‘빛나는 아침에’(68장)등의 두곡이 일본기독교교단의 ‘찬미가21’의 196장과 398장에 채택됐다.그는 그동안 아마츄어인생을살았다고 겸손해한다.“목회도,작곡작사도,문학도,음악도 저는 아마츄어로 살았어요”그는 초등학교 졸업장과 대학원졸업장이 전부이다.나머지는 검정고시로 공부했다.음악을 정식으로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75년,어린이 성가 100곡집을 출간했을 때 몇몇 음악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그러나 그는 “어린아이가 호산나를 안부르면 돌멩이가 호산나를 부르듯 당신들이 3백곡집을 내지 않으니 길가의 돌멩이 같은 제가 1백곡집을 냈습니다”라고 말했다.이후 그는 월간 기독교사상 초대 편집장,월간 새가정 편집장,기독교교육 편집인,관악여자상업고등학교 교목실장 등을 역임했다.오목사의 일관된 생은 신앙에서 비롯됐다.그의 부친은 경기도 용인 아실리교회 장로였다.아실리교회는 스크랜톤 선교사 부인과 그의 아들이 세운 교회였다.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으로 신학교 시절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조선신학교 1학년 때였다.그는 순교적 각오로 공산군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가슴에 품었다.공산군이 점령한 서울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그는 인민군 장교로부터 공산당에 입당할 것을 권고 받았다.“어서결단하시오.예수믿고 죽겠소,예수를 배반하고 살겠소” 장교는 그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었다.“난 예수를 믿고 살겠소.동무가 권총으로 안죽여도 이 육체는 언젠가 죽을 것이요.동무가 죽이는 것은 육체일 뿐이요.내 영혼은 총이나 대포로 못죽이오.난 예수를 믿고 영원히 살겠소” 잠시 후 총성 한발이 정적을 깼다.인민군은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를 풀어 주었다.그때 일을 통해 죽기를 각오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현재 그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지금도 가사가 떠오르면 곡을 붙이고 곡이 떠오르면 가사를 붙여 컴퓨터로 직접 사보(寫譜)까지 한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리며 아직도 청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하늘나라 가서 성가대 지위하는게 소망'오목사의 얼굴엔 동심이 가득하다.고희를 맞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그는 이땅에서 숨이 멈출 때까지 찬송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꿈에도 소원은 천국 갈때 주님 앞에 가서 찬양하는 것입니다.영원히 주님을 섬기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이제 하늘나라 성가대를 지휘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는 오목사는 최근고희를 맞아 ‘신작찬송가’를 펴냈다.신작찬송가에는 ‘가시밭 돌작밭’등을 비롯한 3백73곡의 어린이 찬송가가 수록돼 있다.오목사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적은 것을 퍽 안타깝게 생각한다”며“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붉은 정성,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오목사는 3월4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하나로 빌딩 11층에서 ‘신작찬송가 봉헌예배’를 드린다.그의 자손 15명이 마련한 자리다.이날 중앙감리교회 정영관목사가 예배를 집례하고 차남 오성환교수(경희대),3남 오진환교수(경성대),셋째자부 임정원 교수(서울대),4남 오정환씨(세종증권전산실장),장손녀 오세정양(배재대 성악과 3학년),강민선 교수(세종대음대)등이 오목사의신작찬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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