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남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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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여년,아직 어머니에게는 남자친구가 없다.칠순을 넘긴지 두어 해,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시지만 큰 병환이 없는 어머니는 여전히 단아하고 고운 자태를 지니고 있다.아파트 노인정에서 이웃 노인들과 10원짜리 민화투도 치시고 노인대학에서 며느리와 잘 지내는 법,젊은이를 이해하는 처세술 따위의 강의도 듣는다.철따라 나들이도 가시고 주일엔 성당에 가서 자식들 잘 되라,건강하라 기도도 빠트리지 않는다.약장수에게 홀려 기십만원짜리 건강식품을 덜컥 들여놓은 날에는 아들 며느리의 핀잔만 잔뜩 듣고선 섭섭한 마음에 등 돌려누워 혼자 속을 끓이신다.이런 날은 어머니의 외로움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마음을 달래드릴 양으로 슬며시 다가가 “어머니도 남자친구를 한 사람 사귀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해보면 “이 나이에 송장 칠 일 있느냐”며 손을 훼훼 내저으신다.그러나 나는 안다.어머니는 실없이 던져본 딸의 농에도 벌써 마음이 반쯤은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의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선진화되면서 노인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노인복지에 대한 외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오랜 유교적 관습 때문인지 홀로된 노인들의 성문제에 대한 논의에는 애써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사회는 외면하고 자식들은 자기들의 체면 때문에 입 다물고 있는 사이 홀로된 어르신들은 여생에 대한 외로움이나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행복추구권은 꼭꼭 가슴에 묻어둔 채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다.노인들에 관한 한 조사에서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뜻밖에도 “옷을 사 입고 싶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는 결과를 보았다.새 옷을 사 입고 싶다는 것,그것은 생에 대한 강한 의욕이요 이는 곧 성본능을 의미할 수도 있다.지나친 비약일지 모르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근원적 원인은 리비도(libido) 즉 성적에너지라고 보았다.굳이 거창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도 우리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다만 관심의 문제일 뿐.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다.혹 홀로된 어버이를 모셨다면 서로의 외로움을 어루만져 줄 이성친구를 소개해 드리면 어떨까.햇살 따사로운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호젓한 산모퉁이를 돌 때 슬쩍 손이라도 잡고싶은 친구,옷섶에 붙은 지푸라기를 정성스레 떼어내며 설핏 스치는 바람에도 감기들라 옷깃 여며주는 다감한 친구,그로 인해 외로움에 시들어가는 어버이의 여생이 행복할 수 있다면 자식된 도리에 무얼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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