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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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뜻을 세워 초지일관하기란 쉽지가 않다. 별세한 고황경 박사는 90 평생을 뜻있는 일에 매진해온 뜻있는 삶의 실천자였다. 일찍이 개화된 가정에서 자란 소녀의 눈에 비친 20세기 초엽의 이 나라 현실은 암흑이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10세 때 사회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을 결심하고 이를 위해 독신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박사는 너무 많은 일을 해 그 업적을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광복 전까지는 경성자매원을 개설하여 불우한 소녀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민족사상을 고취시켰다. 정부수립 후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생활운동을 전개했다. 시·도에 부녀계를 설치하는 데 앞장섰고, 58년에는 대한어머니회를 만들었다.6·25전쟁이 터지자 영국에 건너가 유엔군의 한국파견을 강력히 요청했다. 가족계획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이를 사업으로 확대시킨 것도 고 박사의 공적이다. 생의 후반부는 여성교육에 전념했다. 공릉동에 세운 서울여자대학은 인간교육을 실현하려는 그의 신념이 영근 실천장이었다. 생활관과 주택실습을 통해 올바른 인격과 교양을 갖춘 여성인재를 배양하려 한 그의 참뜻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84년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조용히 은둔한 뒤끝도 깨끗하다.일생을 여성운동과 교육에 헌신한 고 박사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초석을 놓은 선각자였다. 나라를 끌어온 남성지도자들이 갖가지 굴절을 보인 것과는 달리 고 박사는 소리없이 여성의 의식을 일깨우면서 지위향상과 능력계발에 앞장서온 여성지도자였다.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좋은 어머니와 아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라던 그의 소신은 오늘에 되새겨볼 만하다.서울여대에는 바롬의 체취와 잔상이 곳곳에 서려있다. 집필하고 강연하느라 늘 바쁜 중에도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던 고 박사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꼿꼿한 삶의 표본을 남겼다. 은퇴 후에도 이곳저곳 자리를 넘보고 할 말 안 할 말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그의 절제된 생활과 봉사의 생애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바롬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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