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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의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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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자 요즘 서울역앞 지하도에는 아침마다 신문지들이 어지럽다.오래 전부터 노숙자들의 잠자리로 유명해진 이 곳.이들이 밤새 체온을 감싸던 이불로 쓴 신문지들이다.지난 여름동안 이 곳에 터줏대감들을 빼고는 낯선 노숙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더운 날씨 탓에 아무데서나 자도 별 탈이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추석이 지나고 나뭇잎들이 초록색 일색에서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터줏대감들보다 낯선 노숙자들이 더 많아졌다.깨끗한 공기,높은 하늘,서늘한 날씨의 가을은 이들에게 ‘곧 잠자리 전쟁을 치러야 하는 지옥의 전주곡’이나 다름없다.겨울은 노숙자들에게 그 어느 것보다 무서운 적이다.이 무서운 적을 상대로 싸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고민만으로도 이들의 머리는 가득차버린다.살아남는 구체적인 방법은 ‘안락한’ 잠자리를 마련해두는 것.그래서 온도계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요즘이 이들의 잠자리 찾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셈이다.서울역 지하도는 밤마다 고성이 오간다.“내 자리란 말이야,비켜” “네가 이 자리 샀냐” 서로 실랑이질하는 노숙자들의 취한 목소리 때문이다.말다툼만 있지 않고 주먹질,멱살잡이도 끊이지 않는다.허름한 옷의 씻지 못한 얼굴들의 싸움 속에는 아무 희망없이 하루만을 살아가는 이들의 잠자리가 걸려 있고 잠자리 안에는 찬 바람에 지쳐 쓰러지지 않겠다는 이들의 생존욕망이 들어 있다.아침이면 노숙자들이 놓고간 신문지가 흩날리는 이 지하도에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잠자리를 찾아 혈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전쟁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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