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밥은 세 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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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청률 1위의 자리를 한참 동안 지켰던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 빌 코스비 쇼에서였는데, 여학생들에게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사춘기의 아들 말콤 자말 워너가 95달러 짜리 비단 셔츠를 샀다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아버지가 아들에게"난 직업(의사)이 있어도 95달러 짜리 셔츠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 옷을 돌려 보내라고 했기 때문이다.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은 국민 소득이 아직 우리 나라보다 높고, 더구나 직업이 의사인데도, 아들은 물론이요 주인공도 매달 95달러 짜리 셔츠는 입지 않는다는 얘기다.95달러라면, 우리 나라 돈으로 8만 원도 못되는 액수인데,서울의 백화점이나 압구정동에서 한 벌에 몇 십만 원짜리 셔츠를 사 입는 한국의 돈 많은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가소로울 것이다. 외제 승용차를 타고 한 달에 300만 원(물가가 올랐으니, 요즈음에는 더 많아졌겠지만)밖에 용돈을 안 쓴다던오렌지족 아이들이 그 장면을 보았다면, 미국인들보다 호화롭게 잘 사는 우리 나라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난 가진 거라고는 더러운 돈밖에 없다"고 큰소리를 치는서울 사람들, 그들에게 인간의 모든 가치와 인격을 상징하는것은, 컬러 복사기로 위조하지 않은 진짜 돈과 수표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정당하게 그 돈을 벌었으며, 그 부를 누릴 권리가 얼마나 있는 것일까1992년에 내가 쓴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덴마크어로 번역 출판되는 바람에, 그곳 펜클럽의 초청을 받아 난생처음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소설을 같이 쓰기로 약속한 대학 시절의 은사, 조지 시드니 박사를 만나러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 갔다가 롯덴브르크를 들렀는데, 어느 덴마크인 노부부가 잠깐 실례한다며 나를불러 세우더니,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고 했다."여기 보니까, 관광객들 가운데 일본 젊은이들이 무척 많은데, 저렇게 젊은 나이에 도대체 어디에서 돈이 나서 놀러다니느냐 나는 직장을 은퇴한 다음, 집을 팔고 세간을 정리하여 남은 돈으로, 난생 처음 아내와 독일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동양인들이 저렇게 돈을 펑펑 쓰는 것을 보면 이상하다."그 노부부가 압구정동에 와서, 새파란 아이들이 놀아나는광경을 한 바퀴 돌아봤다면, 아마도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수 있느냐고 분개해서, 자살이라도 했을지 모르겠다.내가 벌지 않은 돈으로는 놀러 다니지 않겠다는, 그 덴마크인 노부부, 그들은 스스로 번 돈이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못했을 것이다.독일인은 검소하기로 유명하고, 일본인도 검소하기로 유명하고, 미국인도 그렇고,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대부분 근면하고 검소하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돈을 너무 잘 쓴다.아니다. 돈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전혀 쓸 줄을 모른다.술집에 가서 여자들에게 수표를 버스표처럼 나눠주고, 안 써도 좋을 데서 펑펑 쓰는, 이른바 촌놈식 낭비를 하는 것은돈을 잘 쓰는 것이 아니다.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디를 가나 촌놈 식으로 돈을 펑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아마도 스스로땀 흘려 정당하게 벌지 않은 돈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탈법과 투기로 돈을 번 것은, 도둑질을 해서 번 것이나 마찬가지다.그리고 우리들은, 도둑과 유흥비의 함수 관계를 잘 알고있다. 세금을 포탈하고 특혜를 받아, 정당하지 못하게 재산의 분배를 받은 사람들과, 범죄적 수법으로 부자가 된 졸부들, 그들이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은, 다분히 거지 근성에서 연유한다. 그것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만족하지 못해서, 한번 더 먹어 보려고 덤벼들었다 결국 패가 망신하는 노름꾼의 습성과 비슷하다.미국 NBC-TV의 유명한 뉴스 앵커 톰 브로코우는 언젠가이런 말을 했다."솔직히 얘기하면, 나처럼 이름이 좀 난 앵커는 돈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 사실 그렇게 많이 받아 봤자, 쓸데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이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밥은하루에 세 끼 이상 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거지 근성에 물든 사람은 적절한 선에서 만족할 줄을 몰라, 계속 욕심을 부린다. 그래서 혼숫감을 놓고 장인장모를 패고 평생의 반려자를 구박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놀랍게도 혼수 욕심이라는 거지 근성에 빠진 사람들중에는, 의사니 변호사니 교수니 하는 이른바 고상한 분들까지도 나타나기 시작했다.인간이란, 스스로 인격과 가치를 지니지 못할 때, 겉치장을 시작한다. 성형 수술을 해서 얼굴과 몸을 치장하고, 그래서 남의 얼굴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워낙 인간적인 바탕이 모자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요즈음은 대학생들도 돈 병에 든 사람들이 점점 더 자주 눈에 띈다.독일의 키일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인데, 한국 아이들은 유학을 오면 차부터 산다고 했다. 독일 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도 씩씩하게 학교를 잘 다니는데, 왜 한국 학생들은 꼭 차를 사야 하고, 그것도 '촌놈 졸부'의 상징물로서 남들의 눈에 잘 띄는, 비싼 차를 사서 타고 다녀야만하는지, 먼발치서 보기만 해도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가없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가짜 외국 상표가 붙은 국적 불명의 옷을 입고 외국 이름이 붙은 과자를 먹으면서 성장했기때문일까돈이 많으면 건강하지 못하다. 많이 먹으면 건강하지 못한것과 같은 이치다. 많이 먹는 사람은 똥만 많이 생산할 따름이다. 소식(小食)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 그것은단순히 음식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돈도 먹고 살 만큼만 가지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일본에서 지진이 나서 몇 천 명이나 죽었을 때, 우리 나라 방송들은 너도나도 일본인들의 의연한 모습을 입에 침이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 재난을 만났는데도 사람들이 서로돕고, 남이 당한 재난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이다.가뭄이 들거나 재난이 닥치면 떼돈을 벌기 위해 사재기를하고,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는 항상 바가지를 씌워 가며 돈벌이에만 익숙했던 대한민국 사람들의 눈에는, 서로 돕고 나눠 먹는 고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참으로 슬픈 자화상이다.안정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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