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들의 논쟁
본문
이 시대의 작가로 알려지고 있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노상의 한 나무 그늘 아래서 한 떼의 무리가 매우 진지한 얼굴들을 하고서 무언가에 대해 시끄럽게 다투고 있었다.그 발단은 여태 도시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앉은뱅이 소년 하나가 해는 도시의 지붕에서 뜬다고 잘라 말한 데 있었다.그러자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산골 출신의 대장장이가 해는 산이나 골짜기에서 떠오른다고 말하였고,한때 해적선 노예였던 염(殮)장이는 해가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다고 우겨 말다툼은 차츰 커지게 되었다.나중에는 해가 뜨는 곳뿐만 아니라 그 크기며 빛깔,모양에 이르기까지 각양 각색의 주장으로 그 나무 그늘은 자못 시장판을 방불케 했다.그러던 중 그때것 말없이 듣고만 있던 장님 하나가 불쑥 끼어들며 외쳤다."해는 없소.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해는 모두가 거짓이오."사람들은 그 엉뚱한 말에 모두 어리벙벙하여 잠시 다툼을 멈추고 그를 주시하였다.무식해 보이는 무리들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만만찮은 배움의 기풍이 어려 있었다.그런 무리들을 무시하듯 장님은 단정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나는 한평생 해를 연구해 온 사람이오.해에 관해서라면 당신들보다는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소.하지만 더욱 많이,확실히 알려고 너무 자주 그리고 오래 해를 쳐다보다가 뜨거운 햇살에 두 눈만 잃고 말았소.그런데 두 눈을 잃자,난 사물의 겉모습은 우리들의 온전치 못한 감각이 그때 그때 받아들인 일시적이고 자의적인 느낌뿐이라는 걸 깨달았소.정녕 해가 있다면 그것은 그 이름이 가진 어떤 추상일 뿐이오.""그럼,사물의 겉모습이란 결국 뭐란 말이오"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그 장님의 말을 알아들은 사내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이름에 걸쳐 둔 넝마같은 것이오."장님은 예까지 들어가며 더욱 단정적인 어투로 자신의 주장을 펴나갔다."만약 위대한 이성이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운 오관(五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모든 존재는 이름만이 확실할 뿐 추상 이상의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될 것이오."그러나 그 순간도 해는 분명한 실체로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여전히 밝게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거기에 있던 무리들은 대개 무식하여 그 장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적어도 그 모순만은 느낄 수 있었다."그럼 저건 도대체 무엇이오 선생은 눈만 먼게 아니구랴!" 누군가가 손을 들어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빈정대자,이어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봇물 터지듯 웃음 소리가 한꺼번에 솟구쳐 올랐다.분명히 '예수'라는 해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해의 실체를 부정하려는 바리새인이야말로 영적 소경이 아닌가!(울산 평강교회 이동휘 목사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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