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노장관의 `쇠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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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여 이상 워싱턴 정가에 회자돼 온 유행어 중 하나가 [귀머거리(Tin Ear)]다. 주석으로 만들어진 귀를 가졌을 만큼,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는 별명의 주인공은 재닛 리노 법무장관이다. 도무지 정치권의 흐름이나 의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소신만을 고집하는 것을 빗댄말이다.리노는 7일(현지시각) 96년 대선 과정에서 불법 헌금 의혹을 받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에 대해 특별검사를 임명, 조사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독신녀 리노는 2주일 전에는 고어 부통령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구도 거부했다.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에서 [의회 모독죄] 등을 들어가며 협박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리노는 그렇다고 임명권자인 클린턴이나 백악관으로부터 환영받는 인물도 아니다. 장관 취임 후 무려 7명의 특별검사를 [남발]한 장본인이 바로 리노이다. 현재 의회 탄핵 대상에 오른 클린턴 성추문을 비롯,크고 작은 클린턴 행정부의 스캔들 조사 결정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갔다. 이런 탓인지 클린턴과 리노의 관계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의 표현을 빌면, {가끔 공식 행사장에서 대통령을 만나는} 사이다. 96년 재선성공 직후, 클린턴은 리노를 경질하려 했지만 공화당이 {그럴 경우 2기 내각 전체가 인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유임시켰다.이처럼 기대가 컸던 리노가 작년에 이어 올해 계속해서 불법 헌금문제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구를 거부하자 공화당은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리노는 {오직 법에 따라 판단할 뿐}이라며 정치적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에 대한 국민적 신망이 워낙 높은 탓에 공화당은 선뜻 정치공세를 펴지 못하고 다만 법 해석상의 오류만 지적할 뿐이다.74년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촉발시킨 사건도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조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는 닉슨의 압력에 항의,엘리어트 리처드슨 법무장관이 사임한 이른바 [토요일의 학살]이었다. 법치주의가 단지제도적 장치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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