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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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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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날씨가 풀렸다는 기상대 발표였습니다.그래도 코끝이 쨍한 날씨는 여전해서 라디오에서흘러나오는 아침 기온은 영하 6.4도.회사에 출근하려면 저는 주차장에서 나와육교를 하나 건너야 합니다. 겨울 아침 7시께의 거리는비껴드는 가로등불빛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둑합니다.골목에서 나와 육교의 오르막 계단이 보이는 지점에이르러서였습니다. 코트 깃을 올리고 종종걸음치는제 눈에 계단에 엎드린 한 사람의 등이 보였습니다.가까이 가서 보니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겹겹이 걸친겉옷 아래 '몸빼바지'를 입은 한 아주머니가어제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계단에 얼어붙은얼음을 긁어내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귀가 얼얼한 정도로 차가운 바람 속이었습니다.저는 잠시 계단 중간에 멈춰서서 아주머니의구부린 등을 내려보았습니다. 길쭉하고 넙적한 쇠긁개로얼음을 깍아내고 있는, 때묻은 면장갑에 덮힌아주머니의 '손'이 특히 내눈에 와서 꽃혔습니다.해뜨기전 미명인데다가 칼날같은 바람을 이기려고머리를 거의 덥다 시피한 수건 때문에아주머니의 얼굴은 잘 안 보였습니다.그저 수그린 얼굴에서 후후-쏟아져나오는 하얀 입김만이 눈에 띌 뿐.아주머니의 직업이 무엇인지,왜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난간의 얼음을 청소하고계시는지도 저는 잘알 수 없었습니다.공공기물인 육교이므로 근처 빌딩에근무하시는 분은 아닐테고, 그렇다고환경미화원 복장도 아니었으니 말이지요.내려가는 계단 중간께에 멈춰서서 저는건너편의 아주머니 쪽을 한참동안 건너다 보았습니다.그제서야 아하, 아마 환경미화원인남편 일을 도와주러 나오신 분이 아닌가 싶은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일을 도우는 미화원부부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듯 해서 말입니다.계단을 내려와 회사건물에 들어왔습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자리에 앉았습니다.일찌감치 난방이들어와 훈훈해진 사무실.그러나 의자에 앉은 제 머리 속에는 자꾸만아까 육교에서 마주쳤던 칼바람과, 그 속에서작업을 하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특히 면장갑에 싸여 얼음긁개를 잡은그 '손'이 생각났습니다.사람들 통행이 거의 없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아침의 육교.아무도 봐주지 않는 어둑어둑한 계단 한모퉁이에 엎드려혹시 사람들이 계단에서 미끄러질까봐 열심히얼음을 깎아내고 있던 아주머니의 '보이지 않는 손'.문득 제 머리에 이런 생각이 뛰어들었습니다.컴퓨터를 켜고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는나의 따스한 '자리'조차도 바로 저처럼추위에 곱아든 '보이지 않는 勞動의 손'이 있어비로소 가능한 자리는 아닌가관념으로만 따지자면야 세상에 가진 것이라곤하나것밖에 없는 육체와 지식을 팔아 살아가는노동의 하루하루에 있어 저와 아주머니의 그것이본질의 차이야 있겠습니까.새벽에 나와서 밤중에 들어가는 제 곤고한 봉급장이 생활이언필칭 '누리는 자'의 그것일 수는 없겠기 때문입니다.이자리에서, 저 또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월급 노동자로서의 생활을 이른바 선택받은 자의그것으로 참칭하는 낯뜨거운 위선은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제가 누리고 있는이러한 '최소한의 편안함'과 이러한 '최소한의 따스함'은,눈에 일일이 보이지는 않으나 틀림없이 저보다 훨씬가혹하고 가열찬 누군가 노동의 희생 위에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나의 '상대적으로' 따스한 잠자리와 따스한 일자리를종국에 가능케 해주는 그같이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제 머리 속에 아까 본 아주머니의 손에 겹쳐서자꾸만 자꾸만 그러한 수많은 손들이 떠올라왔던것입니다.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다가오는 세밑입니다.당연히 지난 일년동안 개인과 우리 사회가 겪은많은 일들에 대한 반성과 다짐들이 오가는 때입니다.국민을 절망의 나락에 빠트린 이 나라의 이 썩어빠진정치경제구조에 대한 근원적(Radical)인 분노와새로운 변화를 향한 한 市民으로서의소박한 각오가 필요하겠지요.한해동안 나의 삶을 온전하게 지탱해준 가족과 친구와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꼭 필요하겠지요.그러나 저는 이 아침 그러한 분노와 반성과 감사에 더불어또다른 한가지를 마음 속에 반드시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더할것도 뺄것도 없이 똑같은 인간의 입장에서최소한의 삶을 위해 나보다 더 고난하고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나보다 더 땀흘리는우리 이웃들의 힘겨운 생존에 대해서 말입니다.내가 훈훈한 실내에서 送年의 술잔을 들고 있던 순간에도,그러한 훈기를 위해 꽁꽁 언 채 '얼음긁개'질을멈추지 않는, 아니 멈출 수 없는 수많은'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감사를 말입니다.그러므로 우리 사는 세상의 불평등하게 일그러진 모습을조금이라도 정직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이에게"모두에게 따스한 세밑을"이라는 기원은때로 너무나 낯간지러운 수사가 될것입니다.세밑을 맞이하는 저의 마음은조금은 다른 기원을 드리고자 합니다.우리들의 따스한 세밑을 위하여 고생하는또다른 손들이 있음을 우리가 기억하게 하소서.그들의 곤고한 노동과 일상을 마음의 눈으로따스하게 바라보고 명증하게 인식하게 하소서.그리하여 종내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러한'힘든 노동'의 가치를 으뜸으로 인정하고'힘든 노동하는 이'의 존재를 진정 존경하는'사람의 세상'이 되게 하소서...지금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거리에는 사람들이훨씬 늘어나 있고, 멀리 보이는 육교 계단에는물론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부디 제가 마주친 얼굴도 보지 못한그 아주머니 댁의 지붕 밑에도 세밑의따스한 희망과 평화가가득하시기를 빌어봅니다.-김동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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