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살림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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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옛 교실 두칸을 개조해 방을 6개 만들고, 방마다 욕실과 주방을 만들어, 사역에 지친 목회자들이나 사역자, 그리스도인들이 들러 묵상하고 기도하실 수 있도록 무료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미 연말.연시에 많은 이들이이곳을 방문하겠다고 약속이 되어 있기에 저희는 12월 30일까지는 각 방에들어갈 비품, 살림살이를 마련해 두어야 했는데, 저희들 수중에는 한 푼의재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목사님과 저희 내외는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이웃들을 섬기기 위한 일이므로 뒷감당은 주님께 맡기고 일단 은행등에서 빌리기로 했는데 마련된 돈이 모두 90만원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집을출발할 때 꼭 사야할 목록을 이미 다 적어서 나왔습니다. 각 방마다 4인 기준으로 해서, 이불, 요 각 두채, 베개 넷, 냄비 둘, 식기, 국그릇, 국자, 주걱, 후라이 팬, 수저, 쓰레기통, 빗자루… 이 모두 곱하기 6되는 분량을 사야하는 데 겨우 90만원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도전하기로 했습니다.먼저 이불 집에 들러 목록대로 이불, 요 열두채와 베개 24개를 좋은 것으로골라 가격을 물었습니다. "에- 모두 57만원입니다." 숨이 콱 막혔지만 일단지불했습니다. 다음, 그릇점. 앞뒤 잴 것 업이 목록을 펴 놓고는 온갖 것을갯수 대로 찾아 쌓아 놓고는 "얼마나 될까요"하고 근심스런 얼굴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한참후, 주인이 계산을 끝내고 대답했습니다. "음- 33만원이네요!"수중에 남은 33만원과 1원도 오차가 없습니다. 하나님 살림솜씨 그런게 당연하지 그게 뭐가 신기햐냐구요 제말이 그말입니다. †"삼도봉 예수마을"이웃 증산면 첩첩산중 [유성교회]에 새로운 교역자가 부임하셨습니다. 대전 큰 교회에서, 초망받는 유능한 교역자로 사역하시던 젊은 전도사님이시랍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그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자네 왜그러나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왜 그런 깊은 산골에 가려고 하는가 한번 가면 못나오니 가지 말게"라며 극구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목자가 없어방황하고 영적으로 굶주리는 이 산골마을 양떼들을 만나보고는 기어이 이삿짐을 챙겨 이 산골짜기로 오신 것입니다. 함께 만나 이사하신 이야기를듣다가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택이란 곳이 워낙 험하고 비좁아 두사람누울 정도만 남겨놓고 짐을 넣다보니 결국 TV는 천장꼭대기에 둘 수 밖에없었다는 것입니다. 짐을 쌓고 또 쌓아야만 가장 기본적인 안방살림이 들어가니 별 수 없어 TV가 꼭대기에 놓일 수 밖에요. 잘 보지도 않는 TV이지만그래도 행여나 뉴스라도 볼려면 전도사님 내외분.... 목 디스크 걸리기에 딱알맞다는 것입니다. 방이나 크면 멀찌감치서라도 볼 수 있지 짐이 차지한공간을 빼면 두분서 칼잠을 자야할 정도의 방이라니....저희가 새로 꾸며 이사온 집을 둘러보고 그 전도사님 사택을 생각하니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엄습합니다. 주님 오실때까지 버티며 살아야 할 집이고,또 곧 모셔야 할 부모님과 다른 가족을 생각해야 했고, 이미 만들어진 교실창문크기에 맞추어 벽을 쌓을 수 밖에 없어 아얘 넓직하게 지을수 밖에 없는 저희 집이긴 했었어도.... 그래도 전도사님 사택에 비하면 저희집은 초호화 아방궁입니다. 애초에 시골에 들어올 땐 당연히 토담집과 자그마한 흙마당, 싸리나무 울타리, 장독대가 있는 집에서 살리라 하였는데... 어쩌다 보니(슬라브 건물 학교교실 안에다 방을 꾸며 놓으니) 이건 영낙없는 아파트입니다. 상상이 안될 정도로 싸게는 지었지만 그래도 너무 잘해놓고 사는게늘 마음에 걸립니다. 유성교회 전도사님을 생각하면 더더욱 죄책감이 커지게 됩니다.얼마든지 도회지 큰 교회에 있으면 사레도 많고 대접도 많고 장래도 보장이 되는 분들이건만 고생길이 불을 보듯이 뻔하고, 노인들이 대부분인 2∼30명 교인이 전부인, 정말 아무런 보장도 비젼도 없는 이런 산골교회에 기꺼이 뜨거운 가슴으로 들어오실 수 있으셨던 인근지역 젊은 교역자분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오늘도 그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저희가 출석하고 있는 파천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전도사님도, 인천 큰 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금릉'이라는 이름을 꿈속에서주님께로부터 지병받고 주위의 그 많은 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첩첩산중 산골교회로 홀연히 부임하신 분이십니다. 이곳에 오실 당시만 하여도정말 이곳은 말그대로 첩첩산중 오지였다고 합니다.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제가 조목사님과 함께 3년전 이곳에 처음 들렀을 때만 하여도 정말 저는 몸서리를 쳐야 했습니다. 지례라는 곳에서부터 비포장도로였는데 길이라는 것이 하도 험하고 비좁고 꼬불꼬불하여 꼬박 한시간 이상을 털털거리며들어오는데... 아우우욱! 차는 밑바닥이 엉망진창이 되고 사람 몸도 튀겨서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지금은 물론(최근에) 길이 정돈이 되고 포장이 되어 당시의 '첩첩산중'이니'오지'니 하는 말이 전혀 상상이 안되지만 2년전만 해도 버스가 허루에 두대, 네대 겨우 들어오는 곳이었다면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런 때에이 케케묵은 산골짜기로 기꺼이 들어오셨던 전도사님 가족들이... 새삼 존경스러워 지는 것입니다.한때 저는 부끄럽게도, 산골이나 농촌교회는 무능하거나 은퇴한, 오갈데없는 목회자들이 지키는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골에 들어와 살아보니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수치스러운 생각이었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근지역의 교역자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한결같이 느끼는 한가지는 이 분들이야말로 뜨거운 사명감과 진정한 용기를 가지신 헌신자들이란 사실입니다. 산골짜기 구석구석에 숨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의일을 감당하고 계시는 목회자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야망이나권위나 대접(대우)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런 곳을 지키시는 목자들... 그래서 이 나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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