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나
본문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누가복음 6:36).
싱가폴에서 사셨던 나의 홀어머니는 일하시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보모를 두었습니다. 나는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그 보모가 나의 생각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보모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남들이 너희에게 잘해 주면 너희는 그들에게 더 잘해 주어야 해. 그러나 만일 너희에게 나쁘게 대하면 너희는 더 나쁘게 대해라!”
나는 오랫동안 이 “맞받아치기” 철학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그 철학 때문에 남의 친절함에는 계산적으로 대하고, 불친절함에는 같은 방법으로 갚아주려는 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성경에서 남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하신 말씀에 순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나는 “너의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눅 6:36)는 명령을 싫어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해주신 일들과 또 계속해서 하고 계신 일을 보지 않고 언제나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였나, 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의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자비하신가를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나의 문제는 내가 남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그들에게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오늘의 양식 / 2002.05.08
싱가폴에서 사셨던 나의 홀어머니는 일하시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보모를 두었습니다. 나는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그 보모가 나의 생각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보모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남들이 너희에게 잘해 주면 너희는 그들에게 더 잘해 주어야 해. 그러나 만일 너희에게 나쁘게 대하면 너희는 더 나쁘게 대해라!”
나는 오랫동안 이 “맞받아치기” 철학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그 철학 때문에 남의 친절함에는 계산적으로 대하고, 불친절함에는 같은 방법으로 갚아주려는 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성경에서 남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하신 말씀에 순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나는 “너의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눅 6:36)는 명령을 싫어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해주신 일들과 또 계속해서 하고 계신 일을 보지 않고 언제나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였나, 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의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자비하신가를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나의 문제는 내가 남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그들에게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오늘의 양식 / 200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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