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상자
본문
서양에서 가장 롱 셀러가 되고있는 소설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일 것이다. 그것은 여주인공 스칼렛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때문이지만 그 매력의 원인은 주로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꿋꿋한 삶의 자세에 있는 듯하다.원래 작가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쓸 때 그 제목을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뜬다}(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붙이려했었다고한다.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스칼렛이잘 쓰는 말이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이었다.남북전쟁이 일어나자 그 충격으로 스칼렛 오하라의 아버지는 단번에 노망하여 폐인이 된다. 그녀가 극진히 사랑하던 애슐리는 현실 적응능력이 전혀 없다. 북군이 언제 쳐들어 올지도 모르는데 돈도 먹을것도 떨어졌다.그런 속에서도 스칼렛은 {그래도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뜬다}면서 잠자리에 든다. 그것은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나 어떻게 되겠거니하는 안일한 자세에서 나온 말도 아니다. 스칼렛은 인간만이 희망을가질수 있으며,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값진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희망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고 여겨질 때가 너무나도 많다. 아득한 옛날부터 그랬다.희랍의 신화에 [판도라의 상자]라는 게 있다. 여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다.제우스가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든 다음에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온갖 화근들을 담은 상자를 선물로 주고 지상에 내려보냈다. 그리고 절대로 그 뚜껑을 열어보면 안된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러나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판도라는 몰래 비밀의 상자 뚜껑을 얼어보았다. 그러자 검은 연기와 함께 온갖 재난이며 슬픔의 씨들이 세계 구석구석에 퍼져나갔다. 겁에 질린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자, 상자속에는 미처빠져나가지 못한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다.사실은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제우스가 보낸 선물상자라는 설도 있다. 여기 따르면 판도라가 상자뚜껑을 연 다음부터희망만이 남고 모든 행복의 씨들이 날아가 버렸다. 이래서 인간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희망은 도망간 행복들이 언젠가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설이 내게는 더그럴싸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정설을 따른다면 인간에게는 희망조차 없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설이 있다. 판도라가 상자 뚜껑을 다시 닫고 놀란가슴을 달래고 있는데 상자속에서 뭣인가 [나도 풀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하는 수 없이 판도라는 다시 뚜껑을열어주었다. 그러자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절망적인 얘기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희망이다.문화혁명때 여러해 동안을 갇혀있다 풀려난 한 중국인의 얘기다.하루에 네갑씩이나 줄담배를 피우는 그에게 어느날 아들이 그만 피우라는 편지를 써보냈다. 이를 받아들고 그는 그자리에서 담배를 끊기로 했다.{내 아들은 나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런 아들의 청을어찌 내가 거역하겠느냐.} 이게 그의 이유였다.그가 자기 사무실에서 근무중에 돌연 체포됐을 때 그의 아들은7세였다. 그는 자기가 왜 체포됐으며, 언제 풀려날 수 있는지, 자기가족이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여러해동안을 감옥속에서 살아야 했다. 잠 못 이루는 기나긴 밤중에 자살을기도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그런 그에게 삶에의 의욕을 안게 만든 게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그는 붉은 연이 하늘을 나르는 것을 감옥 창틈 사이로 보았다. 때로는 그 작은 연은 낮게 나르고,때로는 하늘 높이 날았다. 그 연은 그에게는 희망의 상징 같기만 했다.그것은 바깥에서 그가 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있었다.그때부터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아들과 함께 연을 날릴 때 언제나 연 끈을 꽉 쥐고 놓치지 말라고 일렀었다. 이제는 그가삶의 줄을 꽉 쥐고 놓치지 않아야할 차례였던 것이다. 미국의 프리덤하우스회장 베티 로드가 이 얘기를 전하면서 {미국은 이런 붉은 연을항상 날려야 한다}고 말했다.붉은 연이 필요한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20년전에 영국 옵서버잡지는 인류의 일곱가지 적으로 인구폭발, 식량부족, 자원부족, 환경파괴, 핵테러리즘, 인간의 손을 벗어나가는 테크놀러지 그리고 도덕적 퇴폐를들고 있었다.지난해 봄에 로버트 카플란은 이들 7적에 덧붙여 종족주의로 세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종말론을 펴낸 적이 있다. 4년전에 일본의과학자들도 [지오카타스트로피(지구의 파멸)]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인류는 2090년에 멸망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정말로 희망이없는 것일까 {낙관주의자란 도처에 청신호를 보는 사람이며, 비관주의자는 적신호만눈에 보이는 사람이다. 진실로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 40년전에 슈바이처박사가 한 이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심각히음미해 볼만 하다.< 논설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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