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예 .화 (이별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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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예 .화 (이별곡 외)
▶어떤 남녀가 열렬히 사랑하다가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는데 일 년 후에 아무 이유 없이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세히 조사해 봤더니 남편이 직장에 갔다 오기만 하면 방에 앉아서 기타를 치는데 날마다 이별 곡만 쳤다고 합니다.
한국의 이별 곡이 13곡이 있는데 '이별의 부산정거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목포의 눈물'까지 13곡의 이별 곡을 일 년에 부르고 나니까 그들의 머릿속에 이별만 새겨지고 드디어 이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 주인이 회갑을 앞두고 어떤 짐승을 잡아서 잔치를 벌일까 고민하다가 모든 짐승들을 집합시켜놓고 민주적이고 신사적으로 잔치에 죽어 줄 짐승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가장 만만한 닭에게 말합니다. '이번 잔치를 위해서 네가 죽어줘야겠다.' 그랬더니 닭이 '주인님을 위해서 죽는 것은 영광입니다만 내가 죽으면 새벽마다 깨워주는 것과 계란을 낳아서 주인님 영양을 보충해 주어야하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주인이 생각해 보니 그럴만합니다.
그래서 개에게 말합니다. '네가 죽어 주어 내 회갑을 즐겁게 하라' 그러자 개가 말하기를 '주인님! 내가 죽으면 도둑놈은 누가 지키며 애가 똥을 싸면 누가 청소합니까?' 주인이 생각해보니 개도 안 되겠다 싶어서 소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 선생이 죽어줘야겠다.'고 말하자 '주인님 나도 힘들어 죽고 싶습니다. 허구한 날 밭 갈고 논 갈고 쓰레질하고 죽도록 부려먹고 밥도 아니고 죽만 주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잘 됐습니다. 주인님 회갑 잔치에 좋은 일 하고 죽겠습니다.'하고 항의 겸 순교를 자청하자 죽만 먹인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농사지을 일도 걱정이어서 주인의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돼지에게 죽어 줄 것을 주문하고 혹시 죽지 못할 이유가 있으면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돼지는 아무 생각이 없는지 꿀꿀거리면서 먹기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는 일이라고는 없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밖에 떠오르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주인님 물 끓이세요'하고는 장렬히 죽어갔다고 합니다.
우화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웃을 수만은 없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사명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명도 내 힘 가지고 하면 힘이 들지만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붙잡고 나가면 감사할 뿐입니다.
▶1866년 8월 9일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 땅을 밟은 28세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통역관이란 직함을 가지고 이 배를 탔습니다. 오로지 조선에 예수를 전하고 조선에 사는 영혼들이 구원받기만을 간절히 소원하는 열정으로 그의 가슴은 불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대로 전도해보지도 못하고 대동 강변에서 참수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외쳤지만 결실을 맺은 적도 없었습니다. 세례를 베풀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는 예수 믿으라고 외치며 그가 가져왔던 성경을 건네주며 죽어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죽음은 열매 맺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져 가는 의미 없는 한 사람의 죽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최초로 이 땅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에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그가 참수 당했던 대동 강변에 그의 기념교회가 세워졌고 결국 그 교회가 1907년 평양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났던 장대현 교회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죽어 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조선에 교회가 세워지며 조선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나리라'고는 그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찬송가 470장에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을 찬송가의 욥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찬송 시를 쓴 '스패포드' 교수는 시카고 대학에서 법리학을 가르쳤던 분이고 변호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시카고 무디 교회에서 회계 집사로 헌신을 했던 분입니다.
그런 그가 1871년 시카고 대 화재 때, 그의 집도 몽땅 타 버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가족들과의 여행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구라파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아내와 네 딸을 배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화재에 대한 뒤처리 문제로 그 다음 배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사랑하는 네 딸을 태우고 가던 배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다른 배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그 사고로 사랑하는 네 딸은 다 죽고, 그의 아내만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에게 영국의 웨일즈에 도착한 아내로부터 짤막하게 전문이 왔습니다.
'혼자만 구조되었음' 그는 그 전문을 받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즉시 배에 올라탔습니다. 사랑하는 네 딸을 잃고서 혼자 정신없이 헤매고 있을 그의 아내가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선실에 있는데 선장실에서 차나 한잔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선장은 함께 차를 마시면서 그에게 이제 잠시 뒤면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시금 선실로 내려왔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들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입니까? 새벽 세시쯤 되었을 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평안이 그의 마음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내 영혼 평안해' 그는 배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렇게 해서 찬송가 470장이 탄생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면서, 이런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그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고 기도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중세 유럽에 있던 어떤 수도원의 기도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마라' 그 글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고/너는 나를 진리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배우지 않았고/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너는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내게 기도하지 않았느니라./그러니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마라'
우리에게 기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유명한 부흥사이신 이성봉목사님이 6.25 동란 무렵 전남 목포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다가 공산당들에게 붙잡혔습니다. 많은 고문과 조롱과 심문을 받은 것을 두말 할 것이 없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을 밖으로 끌어내어 고문하고 조롱합니다. '어이 영감! 어디 천국을 보여 봐라!'하면서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천국은 보여줄 수 있다.'고 하자 그들이 '아니 죽어서 말고 지금 보여 보란 말이야!'
목사님은 네 눈앞에 당장 보여 달라는 그 공산 당원에게 '천국 본점이야 하늘나라지만 지점이야 보여줄 수 있다. 그곳은 바로 내 마음이 천국'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문화종교, 도덕종교 운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 분의 인도를 받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유대의 모든 높은 사람들 앞에서 죄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여러분이여 여러분 모두는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 말고는 다 나처럼 예수 믿고 천국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고문당하는 이성봉 목사님이나 재판을 받고 있는 바울 사도에게 왜 이런 외침이 나옵니까? 바로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농촌교회에 감사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 집사님의 남편이 불신자였는데 그 해 무 농사를 많이 했는데 그 해 따라 무값이 폭락해서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 남편은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이 장례식을 집도 하는데 그날따라 감사 집사가 대표로 기도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대표 첫마디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옆구리를 치면서 '남이 들으면 오해하지 않았겠습니까? 남편이 농약 먹고 죽었는데 감사하다니 그러면 잘 죽었다는 얘기밖에 더 됩니까?'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 기도할 때는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목사님이 사인을 주었건만 감사 집사는 더 큰 소리로 '그래도 감사합니다. 어쨌든 다 안 죽고 안쪽만 죽었으니 감사할 일 아닙니까? 가족들한테 약 먹이고 다 죽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하면서 좌우지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집사님의 믿음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인지도 모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 가운데 감사하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잘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집사는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조건이 될 것을 믿고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고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이 시작되면서 많은 병사가 죽을 때마다 아픈 마음으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당시 링컨이 이끄는 북국은 오히려 병력도 많고 여러 가지 최신무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유리한데도 남군의 용장 '로버트 리' 장군 때문에 늘 패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북군의 교회 목사님들이 모여서 대통령을 위로합니다. '각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온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우리 북군편이 되어주셔서 남군을 이기게 해 달라'고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거기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다음 말이 유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를 찬양했던 벤자민 목사님은 항가리의 목사님이십니다. 그때 구교가 신교를 핍박을 가할 때, 이 목사님은 썩어진 구교의 교리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목회하던 중 몸에 아홉 가지 합병증이 생겨 병든 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쓴 곡이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입니다.
이 찬송은 체념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은 반드시 이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는 나를 능히 정복해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라는 찬송입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아이가 대표기도를 하는데 좀 지나칠 정도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기도를 너무 오래 해서 지루해 죽겠어요. 다음부터는 좀 짧게 기도하라고 일러주세요.' 그러자 선생님은 지혜롭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예수님보다도 더 오래 기도했나요?'
선생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또 한 번은 다른 아이가 반대로 아주 짧게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불평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너무 짧게 기도해요. 기도가 시작하는 듯 하더니 금방 끝나버렸어요'
선생님은 또다시 예수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기도했지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친구의 기도가 예수님보다도 더 짧았나요?'
아이들은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때로는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큰 소리로 하느냐 작은 소리로 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유창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떠듬거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서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길지 않습니다. 헬라 원어로 72단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49단어입니다. 기도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따라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세 가지 귀중한 보배가 있습니다.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바른 신앙의 고백이며, 십계명은 믿음의 사람이 무엇을 행할 것인가? 윤리의 문제를 다룬 것이고,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어떤 어머니가 실수를 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어린아이도 같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잘 자라더랍니다. 그곳은 어머니가 생각할 때 감옥이지 아이에게는 그곳에 어머니의 품이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고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미군 병사가 월남전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소식을 듣고 아들을 부둥켜 않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어린 아들이 어머니를 위로합니다. '어머니! 그 포도수용소에도 우리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자기의 신앙이 어린 아들보다 못함을 깨닫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 남편은 온전하게 보호해 주셨다가 우리의 가족 품으로 돌려주시옵소서!' 그 남편은 그 후에 무사하게 돌아왔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하나님의 속성과 활동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여호와 이레: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랍바: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그곳에 계심이라! 우리의 사건 속에, 상황 속에 삶 속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여호와 살롬: 평안의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치두케누: 우리의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 라파: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
▶알렉산더 대왕이 하루는 부하들의 막사를 순시했습니다. 몇 군대 들려 마지막 막사로 지나가는데 큰소리로 '알렉산더 그놈은 사기꾼이고,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다.'라는 소리가 들여오는 것입니다.
대왕이 분노해서 막사 안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막사 안에 병사들이 기절초풍하고 놀랄 줄 알았는데 부하들은 늠름하게 대왕의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가증스럽게 여긴 대왕이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이놈들! 내가 없는 자리라고 나를 욕할 수 있는가?' 그러자 당황한 병사들이 '아니 우리가 감히 어떻게 대왕을 욕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대왕이 '아까 알렉산더를 사기꾼, 나쁜 놈, 죽일 놈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그때 부하 하나가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대왕의 이름과 똑같은 아주 질 나쁜 병사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대왕이 그를 불러놓고 '네 이놈! 너는 둘 중에 하나를 고쳐라! 네 이름은 고치든지 아니면 네 행실을 고치든지 하라!'고 엄하게 명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행실이 진정 신앙인다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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