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 예화 모음
본문
어린이주일 예화 모음
♣ 다리만 새 것으로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가죽 줄이 끊어진 손목시계를 보이며 말했다.
“아빠, 시계 줄이 끊어졌어요. 시계를 새로 사 주세요.”
어린 딸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시계를 건네 받아 유심히 살펴 본 뒤 말했다.
“이 시계는 줄만 바꾸면 되겠구나. 시계는 그대로 볼 수 있잖니. 그러니까 줄만 새것으로 바꾸자.”
아버지의 말을 들은 딸이 말했다.
“저는 싫어도 새 시계를 사주세요. 저도 완전히 새 시계로 바꾸고 싶단 말이예요.”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딸에게 말했다.
“줄이 끊어졌다고 어떻게 시계까지 새로 살 수 있겠니. 그런 억지가 또 어디에 있어.”
순간 어린 딸의 표정이 굳어졌다.
순간 아버지는 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아버지의 설득을 외면하며 어린 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새 엄마와 결혼했어요? 나를 낳은 엄마는 불의의 사고로 한 쪽 다리만 잃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다리만 새것으로 바꾸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아빠는 전부를 바꾸셨어요? 아빠, 미워! 난 아버지가 싫어 졌어요”
☞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기도 하다.
자녀는 부모를 보면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설계해 간다.
부모는 자녀를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회고해 간다고 한다.
부모도 자녀도 실수 할 수 있다.
실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은 기도뿐이다.
♣ 우리 아빠
목사님에게 귀여운 딸이 있었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났기 때문에 ‘아빠’, ‘엄마’ 정도의 말밖에 할 줄 몰랐다. 어느 날 엄마는 아기를 처음으로 교회에 데려갔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동안 울어버리기라도 하면 큰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얌전했다. 아기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동그란 두 눈을 깜박거리며 놀다가 엄마의 팔에 안겨 스스로 잠이 들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 강단에 올라오셔서 설교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데 그 순간 아기는 엄마의 팔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강단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아빠, 아빠!” 하고 외쳤다.
아가는 낯선 곳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에는 몰랐지만 장내가 엄숙해지고 조용해지자 아기는 아빠의 음성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기에게는 이 커다란 교회의 목사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빠인 것이다.
엄마는 황급히 아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지만 아기는 계속 뒤만 돌아보면서 “아빠, 아빠!” 하고 불렀다.
☞ 아기의 관심은 오직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주위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이 아이에게서 아버지의 존재를 없앨 수 없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던 어떤 환경에 있던 우리에게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 엄마가 왔구나
심한 부상을 입은 한 어린이가 병원에 실려왔다.
가족들에게 그 소식이 급히 전해졌고, 아내는 단숨에 달려와서 응급실에 있는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에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거절했다.
게다가 환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만나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게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마음이 약해진 의사는 그럼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면서, 대신 환자의 심경을 자극할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 받았다.
어머니는 터질 듯한 가슴을 억누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어린 아들 곁에 앉았다.
아이의 눈은 감겨져 있었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한참이 지난 시간 어린이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속삭였다.
“엄마지, 엄마지...............”
의식이 없는 중에도 아이는 엄마의 따스한 손길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어머니의 사랑만큼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 어린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의 순수한 마음이다.
돈도, 옷도, 수많은 장난감도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
그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이다.
그 기도가 자녀의 미래를 바꾼다.
자녀의 지금을 바꾼다.
자녀의 병을 낫게 한다.
그런 부모가 있는 자녀가 가장 행복한 자녀이다.
내가 그런 부모인가를 반성해 보자.
♣ 아버지 우리 아버지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가는 삼등 열차에,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학생이 타고 있었다.
그는 동행하는 어른들도 없는지 낯선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으나 조금도 근심스러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가는 길이지만 즐겁기만 한지 연신 창 밖을 내다보며 기쁜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같이 앉았던 사람들이 그 어린 소년의 의젓하고 태연스런 태도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 어린애의 한 가지 버릇은, 기차가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밖으로 달려나갔다가 돌아와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긴 나머지 거기 둘러앉았던 어른들이, 매번 어딜 다녀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 어린이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한테 갔다오는 거예요.”
“너희 아빠가 어디 계신데?”
“우리 아빠가 이 기차의 기관사예요”
소년은 자못 의기양양하게 손님들을 둘러보았다.
기관사를 아버지로 가진 이 소년은 그처럼 자신만만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었고, 그의 아들 된 자기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므로 그 기나긴 여행 중에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 그렇다.
우리 인생 항로의 먼 여행을 함께 떠나는 인생 열차를 조종하는 기관사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라면 어째서 우리가 이 멀고 긴 여행을 괴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어야 하는가?
그가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다면, 기차가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달려가 그의 얼굴만이라도 바라볼 성의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이 하나님과 나누는 영적인 교제인 것이다.
♣ 소년과 웨링톤 장군
소년이 농장에서 일을 하는 데 수많은 군대가 말을 타고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소년은 농장 문을 닫고 문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빨리 농장 문을 열고 비켜서라. 우리는 바쁘기 때문에 너희 집 농장을 가로질러 빨리 가야 한다.”
“농장으로 말들이 지나가면 농작물이 피해를 봅니다. 우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한 사람이 소년에게 다가서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얘야. 저 앞에 계시는 분은 웨링톤 장군이다. 사냥을 갔다오는 길인데,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임금님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니 비켜 드려라. 농작물의 피해는 나중에 넉넉하게 보상하겠다.”
그러나 소년은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사람도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명이 있었습니다.”고 말하며 버티고 있었다.
웨링톤 장군은 소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얘야, 너와 같이 책임감이 강한 소년을 보니 기쁘구나. 우리 영국의 미래는 든든하구나”
웨링톤 장군은 소년을 격려한 후 일행을 이끌고 농장으로 통과하지 않고 먼 길로 돌아서 갔다.
☞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평소 부모가 그런 심정으로 자녀를 대하고 가르칠 때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자녀에게 전수된다.
지금 반성해 보자.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소망이 자녀들에게 전수되고 있는가를....
♣ 유대인의 교육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 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 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꼬마는 평생 처음 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 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또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 한번 호되게 밀쳐 내버린다.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사랑의 대상이요, 다정한 친구요, 자신의 삶을 몽땅 송두리째 책임지고 있는 존재로서 이 아이에게만은 하나님과 방불한 실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까닭 없는 배신의 아픔은 어린이가 제대로 소화하기에 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럴 때 아빠는 자기 아들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교훈 한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가르친다.
☞ 한눈에 매정해 보이는 유대인의 아비들은 이 진리를 아이들에게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애간장이 따는 듯한 아픔을 참고 견디며 이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 없이 온 세상을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면서도 2천년이 넘는 동안 자기들의 민족성을 굳게 지키고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 힘의 상당 부분은 이와 같은 육아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떠한가?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만 굳게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는 아무 걱정말고 편하게 살아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는지.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 시집가는 딸에게 엄청난 혼수를 장만해 주는 것 등이 바로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엄마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까지 책임질 작정으로 맹렬한 치맛바람을 날리고 다니지 않는가?
이런 식의 육아법은 결국 자녀들로 하여금 남을 의지하는 졸장부로 만들고 또 지극히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은 하늘같이 믿었던 인간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그 엄청난 충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파탄의 인생을 살게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오직 하나님 외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자가 없음을 가르쳐야 한다.
♣ 망나니 길들이는 법
한 여객기에서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꾸중하고 혼을 내며 아이를 어떻게든 통제해보려 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괴성을 지르며 좌석들을 발로 차고 돌아다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가 아이를 때리려고 손을 드는 순간 뒤쪽에서 걸어온 어떤 점잖은 풍채의 노신사가 아이 엄마의 팔을 잡았다.
“제가 한번 달래보겠습니다.”
노신사가 아이의 귀에 대고 잠깐동안 속삭이자,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해지더니 자리에 가서 안전띠를 매고 조용히 앉았다.
비행기 안에 있던 승객들은 모두 노신사에게 박수를 쳤고 아이의 엄마도 고맙다는 말을 연달아 했다.
노신사가 자리에 돌아와 앉자 스튜어디스 한 명이 다가와서 물었다.
“손님, 도대체 뭐라고 하셨길래 아이가 저렇게 얌전해졌나요?”
그러자 노신사는 점잖게 대답했다.
“난 별 말 안했어요. ‘이런 빌어먹을 자식아. 입 닥치고 가만히 안 있으면 줄로 매달아 네 엉덩짝을 발로 걷어차서 비행기 밖으로 내던져 버릴테다’ 뭐 이렇게 조용히 속삭였죠.”
☞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부모의 기도가,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서 말이나 행동, 생각으로 나타난다.
자녀가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습관을 가졌다면 먼저 집을 나서기 전 자녀와 함께 기도하면서 타이름을 앞세워야 한다.
감정은 금물이다.
♣ 자녀 교육의 원칙
자녀를 키우는 데는 두 가지 간단한 원칙이 있다.
우선 사랑을 굉장히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따른 규칙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형제들 간에도 우애가 있고 부모를 잘 모시며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엄격함만 있으면 아이들이 기가 죽어 버린다.
사랑만 있으면 아이들이 방종하기 쉽다.
사랑과 말씀 안에서의 엄격함은 항상 공존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도 이런 방법을 택하셨다.
처음에는 많은 계명을 주셨고, 다음에는 10가지로 요약해 주셨고, 다음에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단 한 가지 계명을 주셨다.
그렇게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생명을 남김 없이 주는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스승 되시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이 몰아적인 헌신의 길을 가고 있는 지를 반성해 보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 안데르센의 동화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동화 작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어머니인 안네 마리는 글을 몰랐다.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세탁부로 일해 왔다.
그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결혼하여 낳은 아들 한스 크리스티안만은 자신이 겪은 비참한 가난을 격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5월이 되면 마리는 아들을 대리고 숲 속을 걷는 일을 일과처럼 행했다.
당시 그 숲에는 5월만 되면 많은 새들이 몰려올 때였다.
어머니 마리는 아들의 손을 잡고 숲 속을 거닐면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신화나 그 동안 전해지는 많은 동화, 우화 등을 들려주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이삭을 줍고 있을 때 고약한 토지 관리인이 채찍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 왔다.
함께 이삭을 줍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쳤지만, 소년 한스는 그 자리에 있었다.
화가 난 토지 관리인에게 한스는 말했다.
“아저씨,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데 어떻게 저희 같은 어린 아이를 때리시려 하십니까? 저희는 바닥에 흩어진 이삭만을 주었을 뿐입니다”
나중에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동화 작가가 된 한스는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고, 어렸을 때 들려준 어머니의 이야기는 동화의 줄거리를 제공하는 상상의 원천이었다.”
☞ 우리 자녀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인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자.
믿음 좋은 부모, 기도하는 부모, 헌신하는 부모, 사랑이 넘치는 부모...
만일 거짓말만 했던 부모, 게을렀던 부모,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부모, 기도하기를 귀찮아했던 부모로 기억되었다고 판단되면 지금이라도 그 자녀에게 달려가 용서를 빌자.
그 때 그 자녀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이 된다.
♣ 기죽은 우리 아이들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 도덕을 지켜 가면서 사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고 사는 얘기가 있다. “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다.
확실히 미국 사람은 어디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남에게 기죽지 말아라.”
바로 이 말을 들으며 우리 아이들은 자란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승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덤벼들고, 부모에게 덤벼들고, 사장 앞에서도 큰 소리를 친다.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면 나와서 불문곡직하고 고함부터 지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다. 어디에서든 기죽지 않으려고 해외에 나가면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싹쓸이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기가 살았다고 좋아한다.
기가 죽어도 안 되겠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을,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키워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한마디 충고가 겁이 난다.
기죽지 않고 커 왔기 때문에 당장 눈을 부라리고 덤벼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죽지 말고 살아라” 하는 말은 우리의 자녀들을 정말 죽이는 말이다
☞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나의 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남의 기를 죽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의 기를 죽이는 기술이 자신의 기를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기죽지 말고 살라는 훈계는 어쩌면 자기 자식의 기를 죽이는 무서운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닫자.
차라리 이제 우리는 “남의 기를 죽이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는 명철 있는 부모가 되도록 하자
♣ 여우를 골려준 물고기의 지혜
어느 날 영리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다.
그 여우는 물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꾀를 하나 내었다.
“물고기 여러분!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어부들이 그물을 가지고 여러분을 잡으러 저기서 오고 있어요. 바다 속은 위험하니까 뭍으로 올라오세요. 그리고 물 속에서는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괴롭히니 차라리 이 뭍에서 저와 함께 사십시다.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이 말을 들은 물고기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다.
갑론을박(甲論乙駁).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여우는 영리하니까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주장과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나왔다.
결국 물고기들은 오랜 회의 끝에 여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물고기 대표는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 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정 우리가 걱정이 되신다면 여우님께서 이 물 속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우화는 유대인 가정의 식탁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다 들려준 아버지는 계속 이런 질문을 한다.
“물고기가 뭍으로 나오면 어떻게 되지?”
어린아이는 금방 알아듣고 “그야 말라죽게 되지요.”라고 대답한다.
“바로 그렇단다. 유대인은 유대인으로 살아야지 아무리 유혹이 와도 유대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거란다.”
☞ 어린이의 마음 속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가슴에 각성이 있게 된다.
무서운 교훈이다.
이렇게 해서 어린 마음 속에 유대인은 유대인으로서의 신분과 정신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깊이 새겨진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머물지 않는다면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영적으로 말라죽고 말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