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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건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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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과 손상으로 얼룩진 우리의 21세기 세상에서 뭔가 모범적인 건강성 혹은 온전함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세계에서 우리는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원과 인간 영혼의 유비적 관계를 생각해 보려는 우리에게 이 자연세계는 인간 영혼의 건강을 유추해 내는 중요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다녀본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 시베리아, 뉴질랜드 같은 지역만 해도 그렇다. 이런 곳들이야말로 인공의 손이 닿지 않는 삼림대, 초록과 생장만이 땅을 덮고 있는 시원적 영토인 것이다.
 말의 뜻 그대로의 야생이란 적절한 온도와 물이 있을 경우 자기 충족적인 건강한 생태계이다. 우리는 이 생태계에서 건강과 온전함의 의미를, 더 나아가서는 거룩함(‘따로 구별됨’)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절실히 체험했다. 가령, 브리티시 컬럼비아 남만 군도나 워싱턴 주의 산후안 지역에 가면 드문드문 섬들이 떠 있는데, 이런 곳을 둘러보고 다니면 나는 늘 어떤 편안함을 느낀다. 알래스카로 가는 저 광활한 내륙 횡단로는 또 어떤가.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는 조수는 섬과 섬 사이의 좁은 물길을 따라 끝없이 들락거리고, 수면 위로 돌출한 바위들은 대양의 물과 바람에 삭박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상 예술품이라도 된 듯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The Wind in th Willows)의 주인공 모울은 무엇을 느꼈던가. 그는 미지의 대자연으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자신이 사물을 그토록 내밀히 들여다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내 느낌도 그랬다. 나도 “온갖 장식과 인공의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 거친 자연이 좋았다. 그 자연이야말로 순수하고 강하고 단순했다.” 순수하고 강하고 단순하다는 이 형용사들은 우리 영혼이 추구해야 할 훌륭한 특질이다. 이와 아울러, 고귀한, 자연적인, 성장하는, 자의식을 버린, 손상당하지 않은 따위의 형용사들이 자연에서부터 우리의 내적 생활로 도약해 들어올 수 있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메말랐든, 무성하든, 강하고 단순하든, 다양하고 복잡하든, 야생의 자연이란 인간의 간섭 없이 그 자체로 남겨진 것이며, 토양과 물과 공기와 식생이라는 자연적 요소들끼리만 간섭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이다. 아마 하나님의 큰 기쁨은 이 ‘개발 안 된’ 야생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방해와 간섭 없이 저희들의 자연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세계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타락 이후 자기 탐닉과 교만과 고집의 길로 나간 인간 피조물보다는 이 야생의 자연이 한결 덜 오염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 물댄 동산 같은 내 영혼」, 루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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