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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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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두명의 여성이 동시에 우리곁을 떠났다.'빈민 (貧民) 을 위한 성녀 (聖女)' 테레사수녀와 '세계의 연인' 다이애나 전 영국왕세자비.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각별했던 만큼 지금 세계인들의 아쉬움은 그 어느때보다 크다.살아온 방식은 달랐지만 각기 인류를 위해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 시대의 두 여인을 되돌아 본다."나는 빈민들의 가난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선택된 사람이다."5일 심장마비로 타계한 테레사 (87) 수녀는 자신의 신조대로 평생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온 '살아있는 빈민굴의 성녀 (聖女)' 로 추앙받아온 인물이다.신장 1m50㎝ 남짓한 왜소한 체격에 꾸부정한 어깨의 테레사수녀는 90년 이후 심장박동기를 달고 생활해야할 정도로 오랜 기간 병고에 시달렸지만 정작 그녀를 괴롭힌 것은 자신의 병마가 아닌 가난하고 병든 주변사람들의 고통이었다.지난해말 심장병 악화에 말라리아.폐렴등의 합병증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나의 병원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해 고통받는다" 며 "내가 돌보던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치료해 달라" 고 호소해 주위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그녀는 1910년 8월27일 옛 유고연방 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서 알바니아인 이민자 가정에서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건축업을 했던 아버지덕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아버지가 일찍 사망,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시절을 궁핍하게 보내야 했다.그러나 다행히도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성장했다.학생시절부터 가톨릭청소년단체에 가입,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을 보였던 테레사 수녀는 18세때인 28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성모마리아수녀원에 들어가 본격적 신앙생활을 하게된다.이듬해에는 인도로 건너가 히말라야 산자락 로레토수녀원에서 예비수녀생활을 시작, 인도와 인연을 맺게된다.테레사 수녀가 훗날 "15세때부터 인도 벵골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고싶었다" 고 술회한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도의 빈민들을 위한 그녀의봉사는 운명이었다.로레토수녀원을 거쳐 캘커타 성 (聖) 마리아여고에서 20년 가까이 봉사하던 테레사 수녀에게 46년 어느날 '빈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라' 는 신 (神) 의 계시가 전해졌다.그녀가 소녀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간호사일을 배우면서 48년 인도시민권을 획득한 그녀는 혈혈단신 캘커타의 빈민가로 뛰어들었다.테레사 수녀가 50년 캘커타의 허름한 건물을 빌려 시작한 '사랑의 선교회' 는 그녀와 뜻을 같이하는 제자들이 몰려들면서 순식간에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빈자들의 안식처가 됐다.항상 맨발의 샌들에 무명사리를 걸치며 살았던 테레사 수녀에게 명예는 '더욱 큰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는 채찍질' 이었다.병고에 지친 몸을 이끌고도 빈민과 고아를 돌보면서 낙태 반대활동을 벌였다.자신의 봉사와 인류에 대한 사랑은 "대양 (大洋)에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고 강조했던 테레사 수녀는 이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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