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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밧줄을 건네준 희생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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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월 13일, 미국의 수도 와싱턴 DC는 종일 낮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에 눈이쏟아붓고 있었다.수은주가 영하로 깊숙히 미끄러져 내려갔고 길거리의 행인들은 외투깃을 움켜 쥔 채 추위에 떨어야 했다.이런 악천후 속에도 에어 플로리다 소속의 보잉 90번기는 이륙 준비에 부산했다. 기체가 내셔널 공항 활주로의 대기 구역에 굴러나와 이륙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기장은 몹시 불안했다. 칵핏 창 밖으로 집요하게 쏟아붓는 눈으로 가시(可視)거리가 불투명했다. 뿐만 아니라 양쪽 날개에 두껍게 엉겨붙은 눈에도 신경이 쓰였다. 잠시 후, 조종사의 염려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이 처참한 형태로 입증되었다. 활주로를 이륙한 기체는 조종사의 사력을 다한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승력을 잃은 채 지상으로 곤두박질했다. 그러고는, 14번가를 잇는 다리 근처의 얼어붙은 포토맥 강으로 기수를 쳐박았다.급보에 접한 해안 경찰 구조 헬리콥터가 현장으로 급파되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헬기는, 깨어진 얼음장 사이로 빠져나온 기체의 잔해에 매달린 채 손을 들어 구조를 요청하는 일단의 생존자를 발견했다.헬기에서 즉시 밧줄이 내려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밧줄을 받아쥔 사람은 그것을 옆에서 허우적거리는 타인에게 건네주는 게 아닌가.심장을 멎게 할 듯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게다가 흐르는 강물 속에서 인간이 버틸수 있는 한계는 그야말로 경각을 다투는 긴박한 현실이다. 그런 상황 하에서 그 사람은 한 번뿐이 아니라 다섯 번씩이나 자기에게 내려진 밧줄을 타인에게 양보했다.되돌아온 헬기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밧줄을 내려주려 했을 때, 그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인간은 급박한 위기 의식이나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면 예절과 체면을 잃고 동물적 의식만 남게 된다고 한다. 본능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윌리암스 씨는 급박한 생사의 기로에서도 본능을 초월한 희생적 인간애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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