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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 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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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미국 초대공사로 부임한 박정양(朴定陽)이 외교관 내외의 무도회에 초대받아 갔던 것 같다. 양인들이 왈츠를 추는 것을 보았던지 이렇게 그의 일기에 적고 있다.`주효가 낭자하고 관현이 상주하여 남녀가 상호포무하니 음악이 있으면 무도가 따르는 법이라. 이상한 것은 가슴과 팔을 노출시킨 여인이 많음이다. 배자 비슷한 것을 입은 이도 있고, 혹은 수건을 목에 건 이도 있고, 혹은 주옥을 목에 늘인 이도 있으며 또 머리카락을 풀어 흐트린 이도 있고, 다래머리를 뒤로 드리운 이도 있는데 부인 처녀 할것없이 한데 모였으니 아국안목으로 보면 현아하더라.'남녀유별 사상에 젖은 도덕군자에게 이 이상스러운 춤사위가 원천적으 로 못마땅 했음직하다. 그 후 대리공사로 부임했던 이하영(李夏榮)은 박공사와는 달리 한량이었던 것 같다. 조선 바지 저고리에 상투머리를 하고 워싱턴 사교계를 누볐으며 그 차림으로 춤도 잘 추었기로 `상투 댄디(멋쟁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것이다.그 춤판에서 알게 된 당시 이탈리아 육군상의 처제와의 염문 때문에 조정에서 그 품위가 논란되었을 정도이니 대단한 한량이 아닐 수 없었다.양춤을 춘 최초의 한국 사람이 바로 이하영이었음을 알 수 있다.1900년대에는 서울 정동의 외교구락부에서 주재 외교관 내외가 모여 야외 무도회를 가끔 가졌었다. 이 양춤을 본 한 보수파 인사의 감상이 흥미롭다. `쥐약 먹은 암쥐를 수쥐가 가엽게 끌어안고 돌아나가는 것 같다' 했으니 ….. 그 양춤이 1백 년 사이에 왈츠, 블루스, 탱고, 삼바, 로큰롤, 로카빌리, 트위스트, 고고, 디스코를 거쳐 지금은 람바다가 제트기류를 타고 동진중에 있다.짧은 치마를 돌려 하체를 노출시키고 상접시키는-. 도덕군자라면 차마 볼 수 없어 얼굴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관능적인 하체춤이다. 더러는 모유를 못먹고 자란 데다 어머니의 직업 진출 등으로 형성된 애정 결핍증이 이 육체 접촉의 람바다 강풍을 몰아왔다고 풀이하기도 한다.하지만 춤이라는 형식으로 은폐시켜 온 양춤의 관능적인 본성이 노출된 춤이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옛 우리 나라에서 비를 비는 무당들의 비빌이굿에 람바다와 흡사한 춤사위가 없지는 않았다. 속고쟁이를 벗고 짧은 통치마를 걸친 무당들이 치마를 돌려가며 추는 이 비빌이춤은 코리언 람바다랄 수 있다.양의 기운이 거세어져 날이 가물기에 이를 중화시키는 음의 기운이 간절하다. 그 음의 기운을 음의 원천인 여인으로 하여금 치마를 들추며 발산시키는 것이 코리언 람바다인 것이다.곧 음양이기설의 철학적 춤이기에 람바다와는 비교할 것이 못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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