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교육의 위험성
본문
살아 숨쉬는 것 가운데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빼다 박은’것처럼 보이는 일란성 쌍둥이도 찬찬히 뜯어보면 어딘지 다른 점이 드러난다.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풀잎 하나, 열매 하나도 공장제품이 똑같듯 그렇게 닮아 있지는 않다. 굳어서 겉에 드러나는 모습도 그렇거늘 하물며 그때그때 이런저런 일로 흐르다 굽이치다 물길이 바뀌기도 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우리 마음속의 느낌이야 더 일러 무엇하랴.왜 이처럼 다를까. 달라서 좋은 까닭이 무엇일까. 모습도 생각도 느낌도 같다면 구태여 이것과 저것을 가리고 따지고 헤아리고 토라지고 할 일이 없을 듯한데….자연이 한 종에 딸린 낱낱의 개체들을 이렇게 달리 빚는 데는 깊은 까닭이 있다. 이 우주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느리든 빠르든 크든 작든 옛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판타 레이’(모든 것은 흐른다)이다. 바뀌는 주변 상황에 따라 생명의 요람인 자연도 바뀌게 마련이다. 진화의 역사는 바로 살 길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온 생명체들이 뒤에 남긴 발자국들이라고 할 수 있다.삶의 환경은 바뀌는데 어떤 종이나 개체가 거기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어내지 못하면 그 생명체에는 앞날이 없다. 어쩌다 한 마을에 모두가 체질도, 생각도, 느낌도 같은 사람이 모여 산다고 치자. 그런데 어떤 병이 있어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하자. 결과는 빤하다. 그 병에 한 번 걸리면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생각과 느낌이 같다는 상황이 안고 있는 위험도 마찬가지다.독재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느낌을 획 일화시켜서 시키는대로 따라 하도록 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감시와 처벌로 집단에서 격리시키는 제도다. 제2차세계대전때 히틀러의 생각과 느낌에 동조했던 독일인들이 경험했던 것, 6백만명이 넘는 유대인의 학살과 폐허화한 삶터, 바로 죽음의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독재다.독재 체제는 어떤 죽음의 화신이나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어느날 문득 나타나서 제멋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책걸상에 걸터앉아 똑같은 교과서를 똑같은 시간에 펼쳐놓고 똑같이 되풀이되는 강의를 듣고 똑같은 반응을 유도하는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을 본다.그리고 똑같은 느낌을 조율하고 똑같이 생긴 길과 건물을 똑같이 생긴 차를 타고 오가면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덧 그 사회의 구성원은 독재체 제가 바라는 닮은 꼴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병들어 제 생각, 제 느낌, 제 의지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 위에 덮어 씌우는 비닐하우스가 바로 독재체제다.직선, 지름길을 찾느라고 한눈 팔 겨를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 보라, 저 푸르른 생명의 세계 어디에 직선이 있는가. 직선, 지름길을 경계하라. 삶의 길은 직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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