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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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철에 접어들면 세종대왕은 경회루 인근에 짚으로 지붕을 이고 황토로 벽체를 바른 초당에 가서 거처했다 한다. 오두막 집에서 어렵게 사는 백성의 고통을 공감하고자 대궐을 비워두고 가 거처한 것은 아니다. 대궐 아닌 여염에서도 고래등 같은 기왓집에는 으레 흙벽의 초당이 지어져 있게 마련이요 장마철에 그 초당에서 한 때를 지내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덥고 눅눅한 장마철에는 초당안이 쾌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각 지역의 주된 건축자재는 그 기후풍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태양열에 굶주려 대체로 추운 유럽의 건재는 열을 잡아두는 집열성이 강한 돌이나 벽돌과 시멘트다. 한데 여름에는 남태평양 열기단이 와서 지배하는 한반 도에서 집열성 건재는 부적하고 그 춥고 덥고하는 저온과 고온의 열을 차단하는 단열성 건재가 십상이다.이 세상의 건재 가운데 가장 단열 효과가 큰 것이 흙이다. 우리 조상들이 벽이며 천장 방바닥을 온통 흙으로 바르고 살아온 것은 미개해서가 아니다. 이미 신라시대 경주에서는 집이나 보도까지도 집열성의 벽돌과 기와를 썼다던데 그 전통이 유지되지 않았음은 그것이 부적당했기 때 문이다. 바깥공기의 뜨거움과 차가움의 차단으로 자연히 냉-온방이 될 뿐아니라 흙은 습도조절도 한다. 쾌적습도는 64%인데 장마철의 경우엔 30%에서 90%까지 오르내린다. 한데 토벽은 그 쾌적치에서 웃돌거나 밑도는 습기를 머금고 뿜어내고 하여 쾌적치를 유지해 주는 컨디셔너이기도 하다. 또한 토벽은 미립자를 통해 통풍도 되어 방안에 가장 쾌적한 공기밀도를 유지시켜 주기도 한다. 온도 습도 밀도를 자연 조절해 주는 흙집이 쾌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황토는 붉고 불행과 병을 몰아오는 귀신은 붉은 것을 싫어한다 하여 황토집은 방액의 주술적 효과도 있었다.한데 황토에서 발사하는 적외선이 살균까지도 한다고 하니 주술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셈이다. 오랜 전통의 그 흙집을 버리고 벽돌이나 시멘트로 바른 집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불쾌감을 한데 모아서 폭발시키면 원자탄만한 위력일 것이다.근간 경향각지에서 황토집이 유행하고 아파트에 황토방 들이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향수상품을 넘어서 한국적 쾌적공간의 재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고층 건물에 걸멎지 않은 황토의 유약성을 과학적으로 보강하는 작업은 학자들의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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