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김안중 교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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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동안 고생만 시켰어.앞으로 당신에게 더 잘할게"지난달 결혼 26주년을 맞은 서울대 학생처장 김안중(금안중.55.교육학과)교수는 아내 강일선(강일선.51.홍익대 교육학과)교수를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지금까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기에 얼굴은 금새 붉어졌다."내가 더 미안해요.밥상에 올린 상추에서 벌레가 나오지를 않나, 시든 잎파리를 제대로 골라내길 하나.빵점 아내지 뭐"아내의 풀죽은 목소리에 김교수는 살포시 아내의 손을 잡았다.강교수는 시력이 좋지 않다.왼쪽 눈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교정 시력 0.2인 오른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흐릿하다.희미한 사물의 윤곽도 밤이 되면 전혀 잡히지 않는다.병명은 RPE(망막색소변조증).좌우 1백80도 상을 맺는 망막세포가 조금씩 좁아져 결국 실명에 이르는 불치병이다.하지만 강교수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눈이 점점 흐려질수록 더 강한 빛으로 다가오는 남편을 느끼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68년 3월 서울대 교육학과 입학식.건강상의 이유로 부산 수산대를 중퇴하고 다시 입학한 만학도 김안중에게 신입생 20명 가운데 유일한 여학생 강일선은 눈에 띄는 후배였다.남의 발을 잘 밟고 ,물건도 잘 떨어뜨리고,라켓에 대주는 탁구공도 제대로 쳐올리지 못하는 두꺼운 안경을 낀 후배는 예뻐보이기만 했다.부전공으로 영어교육학을 선택하고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다.72년 3월 결혼식을 올리고 2년 뒤에는 큰 아들 정호가 태어나고 76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육학과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그러나 미국에 도착한 두 사람에게 시련이 닥쳤다.강교수의 눈이 점점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어릴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강교수였지만 눈이 따갑고 희미한데다 밤에는 아예 보이지않게 되자 겁이 났다.하지만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유학생에게 진료는 사치였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2차 오일쇼크가 나면서 장학금이 끊겼다.강교수는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남편의 뒷바라지에 매달렸다.하루 10시간 이상 중국인 식당에서 주방일과 손님시중을 맡았다.침침한 눈 때문에 손님들과 부딪쳐 음식을 쏟고 손가락을 베기 일쑤였다.김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81년 봄,두 사람은 서울로 돌아왔다.부부는 안과부터 찾았지만 "초록색을 많이 보면 눈이 좋아진다"는 말 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88년 강남성모병원에서 강교수는 RPE 판정을 받았다.치료방법은 전무했다.전국의 병원을 뒤졌지만 의료진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96년 텔레비전을 보다 쿠바에 RPE 전문 치료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몇달이 걸려 공안당국의 허가를 얻고 어렵사리 멕시코를 통해 공산 국가인 쿠바로 날아갔다.안구에 산소공급을 원활하게 해 눈을 맑게 해주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이제 강교수는 자신의 눈이 치유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다만 빛이 남은 기간 동안 망막환자를 위한 센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전문의료원을 소개하고,화면 옆에 책을 놓으면 활자가 대폭 커지는 특수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급하고,자원봉사자를 모으고..환자들의 답답함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을 뿐이다.남편의 후원은 힘이 돼주고 있다."젊어서 나로 인한 고생 때문에 당신 눈이 나빠졌을거야.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도울게"김교수는 다시 한번 강교수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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