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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버리 돈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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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소설 `백치 아다다'를 읽으며 가장 아까웠던 장면은 돈이 강물에 흩뿌려지는 부분이었다.하지만 아다다는 지금 가진 행복을 붙잡기 위해 남편이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모은 돈을 버렸다. 고전은 과연 반복되는 삶의 그림자인가 보다.30대 후반인 한 여자의 인생상담을 들었다.그녀는 택시기사를 하는 남편과 지하 셋방에서 살았다.남편은 독한 사람이었다.남편은 매일 아침 반찬값으로 천원씩 내놓았다.쌀값이나 살림에 필요한 돈도 그때그때 최소한만 내놓았다.하지만 그 돈으로는 가족을 위한 식탁 위에 아무 것도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하루종일 매연 속을 다니는 남편에게 기름기 한점을 먹일 수 없는 것이 내내 슬펐다.그녀는 파장무렵의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버려진 배춧잎을 주워 된장국을 끓였다.남편은 그녀에게 가계부를 쓰라고 했다.며칠에 한번씩 남편은 가계부를 보면서 왜 좀 더 값을 깎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그럴 때면 그녀는 피가 말랐다.그해의 장마철은 유난히 무더위가 심했다.그들 부부가 사는 음습한 지하실 방은 항상 눅눅했고 벽엔 곰팡이가 피었다.어느날 그녀는 방바닥을 말리기 위해 비닐장판을 걷어냈다.그 순간이었다.물이 질척한 방바닥에 까맣게 썩어버린 만원권 지폐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남편이 자신도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은 돈이었다.그녀는 그 돈들을 싸들고 부랴부랴 은행으로 달려갔다.새 돈으로 바꿔 달라고 애원했다.그러나 은행직원은번호조차 확인할 수 없어 교환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 돈을 못쓰게 만들기라도 한듯 겁에 질렸다.다음 날 이 사실을 알게된 남편은 이성을 잃었다.얼마후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들었다.너와 떵떵거리며 잘살아 보려고 했는데 네가 워낙 재수없는 여자라서 뭘해도 되는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그 얘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잘사는 것의 실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아내도,자식도 재수가 없다고 버린다면 당신의 행복은 이제 어디에 있는 거냐고.구운 생선 한 토막을 가운데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웃음꽃 피울 수 있는 생활이,길거리의 걸인에게 던져줄 한잎의 동전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우리는 지금,여기에 살고 있지 않다.그저 먼 훗날의 무지개를 찾아 헤맨다.그 허황된 무지개를 위해 돈 대신 지금의 작고 귀중한 행복들을 자꾸 강물에 흩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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