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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꽃을 드리는 카자흐스탄의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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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봄에 도착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제 발전은 제대로 안됐지만,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도로, 주소만 알면 찾을 수 있는 거리, 곳곳에 조성된 공원과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들…. 처음 몇 개월은 말이 통하지 않아 무척 답답했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살던 사람들이라 그들의 생활도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 가족은 영어가 통하는 다른 외국인 가정과 교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카자흐인들이 실제 사는 모습을 볼 기회는 적었다. 인사말을 주고받고 시장보기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큰 아이가 카자흐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수속 과정에서 성실한 그들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느슨한 업무처리에 답답해하기도 했다. 8월말에 있었던 입학식 날, 학교안의 조그마한 정원에서 입학식과 함께 고학년들의 개강식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입학식은 신입생들이 선배들의 환영을 받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낯선 모습이 있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손에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입생들을 위한 것일까 웬 꽃’ 함께 갔던 한국인 부인이 ‘깜박 잊었다’며 설명해주었다. 카자흐스탄의 구러시아식 학교에서는 입학식이나 개강 일에 선생님들에게 꽃을 드리는 것이 전통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작은 꽃묶음을 하나 사서 건네주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실례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새로운 만남의 순간에 선생님께 꽃을 바치는 학생들, 새로운 교실에서 꽃에 파묻힌 선생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 학기, 그리고 지난 학기를 가르쳐준 선생님과 잠시 헤어지는 것도 꽃으로 장식하는 아름다운 마음들, 두고두고 생각해도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카자흐의 학교에서는 그 밖의 교내외 여러 행사에서도 꽃만 준비하면 그만이었다. 가정방문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학부모들이 학교에 드나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꽃만 있으면 선생님들과 대화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었다. 카자흐의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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