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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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를 잃지 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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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박사가 30세 되던 1940년 학위 취득이 내정 되었을때 일이다.평소 '삼십이립'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경성의 전부속병원을 떠나 의사가 되려고 결심햇다. 그러자 그를 후계자로 내정하고 잇던 당대 최고의 권위자 백인제 박사는 몹시 서운해 하면서도 고등관인 대전 도립병원 외과 과장자리를 주선해 주었다.그러자 장기려는 송도고보 3학년 때 의사가 되려고 결심하면서부터 매일 '의전에 들어가게만 해주신다면 의사를 한 번도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로 서약했던대로 후계자의 영광도 좋은 자리도 다 버리고 평양의 기독교병원으로 갔다.백인제 박사는 처음에는'고약한 녀석'이라며 섭섭해 했으나 장기려가 평양으로 부임해 가자,동아일보에 '입지전중(입지전중)의 인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격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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