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제
본문
작곡가 쇼팽이 죽었을 때 꽃다발에 묻힌 채 열사흘 동안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자신이 죽거들랑 남녀 혼성합창곡인 모차르트의 `진혼곡'으로 장례를 치러달라고 간절하게 유언을 했는데, 당시 교회에서는 남녀차별이 심하여 혼성합창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내 교회측이 굽히고 말았지만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신곁에 영원한 안식을 기원 받는 진혼곡이 없는 넋은 안정 못할 것으로 알았다.이에 비해 우리 한국사람의 죽은 넋은 향상 가족곁에 길이남아 안식을 취하려 든다. 그래서 장례 때 진혼을 하질 않고 초혼(招魂)을 했다.임종을 지키다가 운명을 하면 맨 먼저 해야할 일이 떠나가는 혼을 잡아드는 혼 부르기-곧 초혼이었다. 죽은 이의 체취가 스민 저고리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흔들며 떠나는 혼을 돌아 오라고 세 번 불러댄다. 자신의 체취에 미련을 못 버린 혼은 이 저고리에 유인되어 집안으로 모셔지고 신주(神主)에 정착하게 된다.한국인의 망혼(亡魂)은 이처럼 죽어도 인간적이었다.혼만 불러들이면 된다는 이 초혼의 논리는 시신이 없는 죽음에도 적용이 된다. 배가 뒤집혔다든지 하여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죽음에는 반드시 초혼의 무당굿이 따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널빤지에 닭 한 마리를 태워 사고 해역(海域)에 띄운다. 저승길을 잘 알고 있는 닭에 길잡이를 시킨 것이다.그 뒤에 무당이 배를 타고 죽은 사람의 체취가 스민 저고리나 속곳을 흔들며 푸닥거리를 한다. 입었던 옷이 없으면 신발도 좋고 관도 좋고 망인이 쓰던 붓, 써놓은 시도 좋다. 망혼을 유인할 수 있는 망인의 체취가 스민 것이면 혼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혼을 불러들여 그 혼이 붙은 신물로 무덤을 만든다. 이를 허총(虛塚)이라 했다. 머리카락만 묻으면 발총(髮塚)이다. 옷가지를 묻으면 의총(衣塚)이요, 시를 묻으면 시총(詩塚)이다. 망인이 쓰던 물건에는 그 영혼이 스며있다는 물신숭배를 이같은 허총(虛塚)에서 보는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