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비군 훈련이 폐지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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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예비군제도가 생긴 것은 1967년의 일이다.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피습사건이 계기가 되어 후방치안의 안전을 기하다는 목적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 이 제도는 많은 부작용을 빚었다. 지방에서는 일요일에도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훈련하는가 하면 더 큰 문제는 농촌교회 목사들이 주일에도 강단을 버리고 소집되어 나가야 하는 고충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정일형 박사가 무슨 일로 전라도를 갔다가 어느 지방에서 열린 교역자회의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 박사는 교역자들에게 무슨 애로가 있으면 기탄없이 말하라고 하니 한 젊은 교역자가 일어나서 주일에 실시되는 예비군 훈련을 최소한 목사에 대해서만은 안 하도록 정부에 건의해 달라고 제의했다. 중대장이란 사람은 목사가 주일에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때리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이렇게 취급하고서야 어떻게 국민총회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하였다. 사연을 듣고 난 정 박사는 이 일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해제시키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서울에 올라온 정 박사는 즉시 국무총리를 찾아가 주일에 예비군 훈련을 중지할 것과 목사들에 대해서는 향목으로 대우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결국 이 일은 국무회의의 결의로 주일 아닌 다른 날에 실시토록 제도를 변경했고 목사에 대해서도 향목으로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기독교 정치인이 가한 압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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