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의 헌신적인 기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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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녀의 헌신적인 기도
어느 소녀가 난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됨을 괴로와 했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고민했다. 이 사실을 목사님께 아뢰자 그것은 "기도"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 했다. 이번엔 어떤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 믿지 않는 자들의 인가기도를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기도했다. 손님이 문안 올 때마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했고 전도했다. 어머니께 늘 물었다. ○○○ 교회에 다니느냐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고..
그때마다 대답은 "Yes"였다. 그때마다 너무 기뻤고 확신에 찼다. 그녀의 기도는 예수님으 겟세마네 기도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아름다운 기도였다. 결국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그녀가 기거하던 병실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베개 밑에서 한 수첩을 발견했다. 그 수첩엔 동네 사람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 이름 옆에는 †표를 그려 놓았는데 모두 56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부분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텐데 자신의 생명보다 남의 생명을 위한 헌신적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죠지 뮐러'의 성공담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단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다시 강단에 섰습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내가 성공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어떤 목사가 차를 타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금방 고개를 듭니다. 옆에 있던 신자가 묻습니다. 그러자 "내 영혼을 ..."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를 묻자,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데 차타고 가다가 죽게되면 기도할 틈도 없쟎은가? 그래서 미리 기도합니다"라고 했답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거룩한 헌신
저드슨(1788-1850)이 대학을 거쳐 신학교를 졸업하자 보스톤 시에
있는 상류층의 교회에서 부목사로 와 달라는 초빙을 받았다. 그의 동
료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 하며 집의 어머니와 누이도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저든슨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님은 나를 해외선교에 쓰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이곳에 남아
서 일을 해도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지만 나는 부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나는 주님께 전체로 순종하렵니다.
안일한 자리를 물리친 저드슨은 결국 철통같은 불교의 나라 버마에
선교사로 갔다. 그곳은 너무나도 어려운 곳이었기에 목숨을 마칠 각오
로 일했으나 처음의 한 사람을 전도하여 세례를 베푸는데 무려 6년간
의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저드슨은 오랜기간을 버마의 감옥에서 지내기도 했고 죽음과 질병의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다. 그러나 저드슨의 거룩한 헌신은 5만명이라
는 크리스챤을 버마땅에 탄생시키고 전세계의 크리스챤들의 마음에 꺼
지지 않는 햇불을 밝히 켜 놓은 것이다.
자기 중심의 사람(헌신, 사랑,감사)
인생의 풍랑은 반드시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만은 아닌것 같다.
샌프란시코에서 이 철수 사건이 있었다. 샌프란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살인사건이발생되었다는데 한국 청년 하나가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 청년이 바로 이철수라고 하는 한인 청년이었다.
그런데 증인 하나가 이 철수가 범인이라고 증언을 했다.
경찰에서는 이철수의 가정 환경을 조사했고 그 결과는, 이 철수가 충분히 범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증인도 있어 재판을 받고 살인수가 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감옥에서 죄수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정당 방위를 하느라고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그래서 10년 동안을 감옥살이를 하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이철수는 차아니타운의 살인범이 아니었다.
외롭고 억울한 감옥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세상이 다 그를 잊어버렸을 무렵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그를 찾아왔다
. 목사님 한 분이 감옥으로 찾아온 것이다. 샌프란스코 한인감리교회 차원태 목사가 찾아왔다.
그 목사는 이철수가 죄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철수의 억울한 사정이 교포들 사회에 번져 나갔고 무죄석방운동이 전체동양사람들 사회로 번져 나갔다. 마침내 이철수 사건 규명운동이 일어났다.
증인으로 나왔던 사람은 이철수 말고 다른 범인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무죄로 판명되어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 나왔다.
이철수는 10년 만에 감옥문을 나섰다.
10년이란고 하는 긴 세월을 억울하게 감옥에 빼앗겼던 것이다. 보상받을 수 없는 10년의 세월이었다. 감옥문을 나선 이철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억울했었을까 물론 억울했다. 그러나그의 첫마디는 그것이 아니었다.
[명예를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보잘것 없는 자기를 위해10년간 투쟁해 주신 교포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교사 헌신의 결의
이번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 합숙 훈련을 받던 대학생 만여명이 일생에 1년이상
외국 선교 봉사할 것을 오병이어처럼 집단 헌신 결의를 했고 잇따라 만명의 고등학
생과 3,000의 청년들도 그런 헌신 결의를 했다.
8월15일 밤, 지금은 서울의 서울, 기독교 민족이 태어나는 산실 같은 여의도 광장
에서 자녀를 바치겠다고 대신 헌신하는 사람들까지 100만이 넘는 선교사 헌신의 결
의가 있었다. 이들이 갈 철의 장막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작심삼일, 인간의 결심은 변덕스럽고 간사 하지만 한번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절
대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이 자기 것을 절대 보전하실 것을 믿으라. 세계의 문들
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으로 열릴 것이다.
헌신
충북 제원군 백운면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목회를 해 온 임태종 전도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보통의 젊은이들처럼 3년의 목회가 끝나면 안수를 받고 유학을 가든가 아니면 도시의 교회로 승진해 온다는 계획으로 시골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의 큰 교회로부터 마산에서 교회를 개척하도록 위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생활비도, 몇 년 후 유학을 위한 장학금도 보조해 준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농촌 목회의 비참함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는 새 임지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곧 그곳을 떠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께서 발길을 허락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처절한 가난과 싸우고 있는 교인들, 젊은이들이 버리고 떠난 땅, 그곳에 뿌리박힌 좌절감, 저들의 얼굴을 외면한 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라고, 신앙의 양심은 소리쳐 왔습니다. 그해 여름. 그 좋은 조건들을 뿌리치고 그는 시골 교회 교인들의 아픔과 고통을'나의 연대적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전도사는 여름을 맞아 잠시 돌아온 청년 7명과 함께 영적인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함께기도하고 대화하며 버려진 농촌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몇 주일 후 이 작은 교회와 마을에는 '연대성으로 묶여진 사랑의 연합'이라는 그 어떤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벧엘 협동 청소년농장'을 만들어 내고야 만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2만 평의 초지를 조성했고 농사를 지었으며 독서실까지 갖추는 등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의 미래는 물론 미지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자신의 명예도, 농촌의 구제 자체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는 이 젊은 전도사의 피나는 연대감과 헌신, 하나님은 이미 그를 통해 마을 전체를 구원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의인 열 사람 때문에 역사의 심판을 뒤로 미루고 그 역사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헌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진함과 피로를 종종 느낀다. 때때로 나의 상담작업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는 더 큰 부담을 느낀다. 이를테면, 몇 달 동안 내가 상담을 맡았던 한 부부가 이제 상담을 중지하겠다고 알려오는 그런 경우이다. 그런날에는 집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나는 정말 더이상 일에 대해 의욕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딱 20분 동안만이라도 석간신문의 스포츠란을 보면서 가볍고 유쾌한 대화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으면 하고 바란다.
아내는 “이제 오세요. 여보,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라고 말하며 나를 맞는다. 나는 그녀의 귀에 들릴 만큼이나 큰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난 지쳤어. 저녁식사는 뭐지?” 그런 내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아마도 나는 아내가 나의 기진맥진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동점심을 갖고서 대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그녀의 귀에까지 들릴 만한 한숨소리는 고장난 냉장고 얘기를 다음 번으로 미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내쉰 것이다. 그런 때, 나는 아내의 필요가 아닌 나 자신의 필요에 우선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나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며 상황이 뒤바뀌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4:29 나에게는 나의 필요가 아닌 아내의 필요가 제일 첫번째의 관심사였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쓰임받는 존재로서 아내의 삶에 완전히 헌신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어서 할말이 없게 된 것이다. 내 필요들이 충족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맡길 때 그것은 가능하다.
헌신
프러시아의 후레드릭 윌리암(Frdrick William) 3세는 그의 재임 기간중 어려움에 빠질 때가 있었다. 여러 번에 걸친 전쟁으로 돈을 많이써서 나라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재정이 없었던 것이다.고심을 하다 그는 여성들에게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보석을 바칠 것을 요청했다. 보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그는 감사의 표로 동이나 철로 만든 훈장을 주기로 했다. 훈장에는 "나는 1813년에 금을 주고 철을 얻었다."고 새겨져 있었다.
호응은 대단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보석보다 왕이 주는 훈장을 더욱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이유는 분명하다. 그 훈장은 왕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바치며 충성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석으로 몸치장을 하는 것은 유행에 맞지않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철십자 훈장이라는 것이 태어나게 되었다. 훈장을 받은 사람들은 철십자장 외에는 달지를 않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왕 앞에서 자신들의 영화를 십자가를 위해 바친 사람들로서 그에 합당한 면류관을 훈장으로 받게 될 것이다.
헌신
미국의 명문 대학인 하버드 대학에 아이작과 존이라는 우등생이 있었다.
그들은 매 학기마다 일 이등을 다투었다. 더욱이 이들은 형제보다도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졸업하기 전 여름 방학을 존의 농장에서 함께 지내기로 약속했다. 존은 버지니아 주에서 대농장을 경영하는 부호의 아들로서 그에게는 메리라는 누이가 있었다. 아이작은 존의 농장에서 지내는 사이메리를 사랑하게 되었고. 마침내 부모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버지니아 주의 풍습 중에는 신랑 신부가 타고 있는 마차에 친구들이 종이로 싼 옥수수를 던지는 게 있었다. 그래서 아이작과 존의 친구들은 마차가 길 모퉁이를 돌게 되었을 때 대기하고 있다가 환성을 지르며 옥수수 봉지를 던졌다. 그러자 말이 놀라 내달리는 바람에 결국 마차가 뒤집히고 말았다. 다행히 신랑 아이작은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으나 신부인 메리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 온갖 치료를 다했지만 정신 이상자가 되고 말았다. 존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누이가 저런 꼴이 되었으니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세. 자네는 모교의 조교수로 앞으로도 학문 연구에 힘을 써야 하므로 내 동생은 짐이 될 걸세.” 그랬더니 아이작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나. 나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는데 그것을 깨뜨리란 말인가.” 아이작은 이로부터 40년 동안 10살 미만 소녀 정도의 지능밖에 되지 않는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며 결혼 생활을 계속했다. 이는 입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얄팍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실행하지 못할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진실로 본받지 않는다면 결코 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헌신
후로리다에 제임스 케네디 목사가 한 설교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군인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구두를 닦고 훈장을 달고, 길을 가다가 상관을 만나면 깍듯이 경례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군인이 될 수 없읍니다. 그렇게 예절이 바르고 신사같다 할지라도, 전쟁터에 나가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없는 한 그는 군인이 아니요, 장교가 아닙니다" 라고 했다.
오늘 크리스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는 완전 한 신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희생하고, 헌신을 요구할 때에 헌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헌신
당신이 진정한 기쁨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에 자신을 드리기 바랍니다. 그 사역이 힘들고 어렵고 희생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큰 보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 이유로 사자에게 희생물이 되거나 화형을 당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솟아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그의 은혜로 채우시고, 우리와 더불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헌신
존페이튼은 식인종들이 사는 지역 선교를 개척한 선교사였다. 그가 하나님께 어느 정도 헌신을 했는지는 그가 그 지역을 향해서 떠날 때 그의 친구한 사람에게 한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친구는 페이튼이 식인종들에게 잡혀 먹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페이튼은 중년의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딕슨씨, 당신은 이제 나이가 들었습니다. 곧 무덤에 묻히게 될 것이고 벌레들이 당신의 몸을 먹을 것입니다. 만약 주예수님을 섬기며 살다가 죽을 수만 있다면 내가 식인종에게 먹히든 벌레에게 먹히든 나에게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페이튼은 주님이 선택하신 방법으로, 주님이 선택하신 곳에서 주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가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헌신에대한부르심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위대한 선교 업적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때 한 선교단체가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당신을 도울 선교사를 파견할 예정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쉬운 길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리빙스턴은 회신에서 "당신들이 쉬운 길로 오려는 선교사들을 파송하려면 나는 그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전혀 길이 없어도 오려는 사람들을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헌신은 모든 것을 바치는 것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등불이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영국에 있던 동료들이 도울 것을 숙의하고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자네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몇명을 현지에 보내려고 한다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게."
리빙스턴은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의미 없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한다네."
헌신은 치유의 능력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하여 어떤 도시에서 간증을 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나오는데 여자 교우 한 분이 테레사 수녀를 붙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자살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듣고 테레사 수녀는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매여, 자살하기 전에 내가 자매에게 한 가지만 요청하고 싶어요. 내가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나와 같이 한 달만 일하고 난 후에 자살을 하세요.”
이 여자 교우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테레사 수녀를 따라서 인도의 캘커타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아와 질병으로 까맣게 말라 비틀어 죽어가는 그들을 붙들고 부지런히 간호하고 치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살고 싶어졌습니다.
'내게도 살 만한 보람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 여자 교우는 자살의 유혹을 극복하고 테레사 수녀와 함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거든 그 문제에 빠지지 말고 그 문제보다 훨씬 더 커다란 아픔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십시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섬기십시오. 그때 나는 비로소 알 것입니다. 내 걱정이 사치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가 고민한다고 하지만 그 고민이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 있습니다. 밥 한 끼를 때우지 못하고 곯은 배를 움켜잡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고민은 차라리 사치에 속할 수가 있습니다.
헌신의 뜻
한 대학생이 목사에게 와서 예수님께 헌신한다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목사님은 생각끝에 백지 한 장을 가져오게 해서 그 대학생에게 내밀면서 '예수님전 백지 위임장'이라고 쓴 후 주소와 성명과 날짜를 쓰고 지장을 누르게 했다.
주님은 그 위임장에 무슨말이나 쓸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어느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부호 미망인의 외동딸이 있었다. 귀국 때는 한 아름 진귀한 선물을 사다 주었다. 이번에는 국제전화가 왔다. "네 생일에 무슨 선물을 사다줄까" "엄마, 선물은 싫어, 다 그만둬" "그럼 무얼 원하니" "엄마가 필요해, 엄마자신이." 헬라의 어느 왕이 보석, 토지, 건물, 의복 모두를 나누어 주었다. 한 궁녀만은 원하는 것이 없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왕이 물었더니 "나는 임금님 자신을 원합니다"했다. 왕은 그녀를 왕비로 택했다.
우리는 헌금드리고, 예배드리고, 금식기도 드리고 자녀를 드린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나 자신을 원하고 나는 주님자신을 원한다.
헌신의삶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우리 집 작은 거실에 촛불을 밝히고 모처럼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즐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애들을 잠자리에 눕히고 이 평화롭고 분위기 있는 시간을 막 갖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현관 벨이 울리더니 우리가 돕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식사 중에 방해를 드린 것 같군요. 저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잠깐이면 됩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드리려고 몇 가지 가져온 게 있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벽난로 위를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그는 휘파람도 불어대고. 아내와 내가 서로 주고 받는 말이 뭐가 우스운지 킥킥대기도 했습니다. 속상한 일이 아니냐고요. 그런 점이 없잖아 있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온 “방해”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전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 문제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 수많은 손님 등등. 한번은 한 젊은 장교가 두 명의 낯선 사람을 데려와 잠을 재워준 적도 있습니다. 내 동생이 가출 소년을 집에 데려와서 한동안 보호해준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에 특별히 손님들이 머무를 방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그들을 맞이하고 대접할 때 우리의 몸은 피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헌신했으며. 그것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애들도 그것을 즐깁니다. 우리는 늘 그들을 우리 사역에 함께 포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그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을 허용합니다.
헌신의 이유
영국의 목사이며 사회사업가인 조지 뮐러(1805∼1898)는 일생을 고아를 위해 헌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말년에 어떻게 평생을 그런 일을 하게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겸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조지 뮐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즉 평판, 선택, 좋은 것과 싫은 것, 원망 등에 대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칭찬이나 비난에도 죽었습니다. 제가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의 책망이었고 제가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칭찬이었습니다. 그러자 인생이 저도 모르게 달라졌습니다」
헌신적인기도
뉴욕 갈보리 교회 목사였던 존 알 스트레이턴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스트레이턴 목사가 어렸을 때 동생들과 함께 흑인 유모인 밀리 아주머니를 놀려주고 웃음거리를 삼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커다란 호박덩이를 따다가 그 속을 전부 파내고 네 개의 구멍을 뚫어 눈을 만들고 들쑥날쑥한 이빨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야밤에 밀리 아주머니의 오두막집으로 가서 호박덩이를 장대에 매달고 그 속에 촛불을 켜고 홑 이불로 장대를 덮어 씌웠습니다. 아이들은 오두막 창가로 살며시 들어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에 세워진 유령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유모를 구경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안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창문 안으로 살짝 들여다보았을 때 아주머니 혼자 침대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그들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고 다음에 자기들의 이름을 차례로 열거하며 기도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파서 집에 누워있을 때 밤낮 옆에서 시중들며 간호하던 아주머니를 기억했습니다. 아이들은 호박과 장대를 거두어 집으로 돌아와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존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위대한 목사가 된 후에도 아주머니의 헌신적인 기도를 잊을 수 없으며 아주머니의 기도로 이처럼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노라고 나중에 술회했습니다.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은 또 하나의 성화의 일부입니다.
헌신은 치유의 능력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하여 어떤 도시에서 간증을 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나오는데 여자 교우 한 분이 테레사 수녀를 붙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자살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듣고 테레사 수녀는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매여, 자살하기 전에 내가 자매에게 한 가지만 요청하고 싶어요. 내가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나와 같이 한 달만 일하고 난 후에 자살을 하세요.”
이 여자 교우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테레사 수녀를 따라서 인도의 캘커타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아와 질병으로 까맣게 말라 비틀어 죽어가는 그들을 붙들고 부지런히 간호하고 치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살고 싶어졌습니다.
'내게도 살 만한 보람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 여자 교우는 자살의 유혹을 극복하고 테레사 수녀와 함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거든 그 문제에 빠지지 말고 그 문제보다 훨씬 더 커다란 아픔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십시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섬기십시오. 그때 나는 비로소 알 것입니다. 내 걱정이 사치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가 고민한다고 하지만 그 고민이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 있습니다. 밥 한 끼를 때우지 못하고 곯은 배를 움켜잡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고민은 차라리 사치에 속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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