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관한 예화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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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관한 예화 모음
고난을 축복으로 “바꿉시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지구촌이 온통 긴장하고 있어 계절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 보내는 것 같아 아쉽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여인은 서방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땅은 소망이 없습니다.절망의 땅입니다”고 절규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은 크고작은 숱한 고난을 만나고 이를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성경속의 요나를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요나가 당한 고난은 단 3일간의 고난이었지만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음부까지 내려간 고난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에게 예고된 풍랑,물고기 뱃속에서의 사투 등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혼신을 다해 기도하는 요나가 처한 절망의 깊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도움도 기다릴 수 없는 완전 절망의 상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절망의 극치를 보여준다. 요나는 이런 절망속에서 마침내 구원을 받고 다시 선교의 사명지로 떠나 그 사명을 완수하여 니느웨의 멸망을 막는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요나는 완전 절망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인생이 되었을까.
먼저 요나는 자기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그 하나님’께 기도했다. 요나는 자기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축복도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었다. 그러기에 그는 이 고난을 바꾸어주실 분도 오직 ‘그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었다.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깨닫는 만큼’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자포자기나 원망은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친히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만이 유일한 산 소망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또 요나는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자기의 기도가 주께 상달되었음을 확신하고 감사했다.요나의 기도는 점점 더 깊어진다. 처음에 그는 “여호와를 불러 아뢰었다”고 했다. 아버지 하나님께 지금 그의 고난을 다 말씀드렸다. 그런데 변화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오히려 점점 더 죽음의 고통이 그를 엄습한다.그래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르짖는 기도에 돌입한다. 지금 그가 처한 현실이 마치 지옥 같은 고통임을 시사하면서 그는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다”고 했다.스올은 죽은 사람들이 머무는 음부를 말한다.물고기의 뱃속에서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고통스럽게 부르짖었다. 극심한 고통속에서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할 즈음에도 그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고 고백한다.
고난 중에 있을 때 ‘생각’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보라.주가 주시는 놀라운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스올의 뱃속에 있는 요나였지만 그의 영혼에는 비로소 평안이 찾아든다.생각을 바꾸자.고난이 크면 축복도 큰 법이다. 고난 저 건너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완전 절망을 놀라운 축복으로 바꾼 요나처럼 진실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만 철저히 의지함으로써 이 고난의 시대를 이겨나가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예수 때문에 고난 당할 때
고전 15장10절에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고생 많이 한 것을 은혜라 하였다.
이는 일종 역설이다. 보통 인정으로 말하면 타인보다 편안한 것을 은혜라 하거늘, 바울은 타인보다 수고한 것을 은혜라 하였다.
금일 교인은 입교한 후에 가정살림이 풍성하여 지고, 몸이 평안하게 지내는 것을 감사하거니와 예수 때문에 가난하여지고, 예수 때문에 환난이 닥치면 불행으로 알거니와, 바울은 예수 때문에 환난이 고생하는 것을 감사하였나니, 과연 바울은 예수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다.
교회의 급료를 받지 아니 하니, 땀흘리며 노동하여도 배고프고 헐벗었다. 정복음을 굳게 지키니 율법주의자의 박해가 뒤따르고, 선배 사도의 천서가 없으니, 업수히 여김을 받고, 기설 교회의 통제가 곤란하였다.
이방에 전도하려니 오해와 공격이 끊이지 아니하였고, 세계에 전도하려니 곤란이 첩첩 고생이 충충 끈 없는 고난이다. 주리고 매맞고 욕먹고 갇히고 물에 빠지는 등 바울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였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하였나니, 예수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은혜다.
고난 격언 모음
0 냇물에 돌들을 치우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 버린다고 한다. 예로부터 선인은 고통 중에 낙이 있고 악인은 낙중에 고통이 있다.
0 고통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인격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마더 테레사)
0 우리가 위험 없이 정복하는 것은 영광없이 승리하는 것과 같다.
0 고난으로 교육받지 않는 인간은 언제까지나 어린애와 같다(N. 토마제오).
0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고난을 대신 진다면 주님이 당신의 고난을 져 주시리라(일본 기까)
0 시련없는 생활 그것이 최대의 시련이다(맛손)
0 고난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온 귀중한 선물인지 모른다.(삼포능자)자 박해는 영적 향상의 필요
조건이다(톨스토이)
0 시험의 3대요소
1)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함이요 2)사람의 시험은 자기의 욕심에 미혹됨이요 3)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이다.
0 안식은 모든 난관을 지나서 있다(괴테)
0 나를 높은 예지로 이끌어 주는 것은 고난과 눈물이다. 보옥과 즐거움은 이것을 만들지 못했
을 것이다.(페스타롯치)
0 고난은 풍족을 가져온것보다도 더 많은 가치를 가져온다. 만일행복했더라면 나는 결코 성숙되지 않았을 것을 고난이 가져다 주었다.(페스타롯치)
0 인생의 참다운 맛을 알려면 눈물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시126:1-6)
0 어려움에 시달린 사람은 쉽사리 낙담하지 않는다(죤슨)
0 고난과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펜)
0 불행은 천재를 장려하는 경우가 많다(오비디우스. 나소)0 고난은 기도의 선생이다(독일 격언)
0 아름다운 육체를 위해서는 쾌락이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혼을위해서는 고난이있다(미상)
0 고난을 겪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괘테)
0 고난 당하지 않는 다는 것은 연약함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내가 고난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나에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죠셉 홀)
0 양이 양떼로부터 떨어져 방황하게 되면, 목자는 개를 시켜 그 양을찾게 한다. 그것은 그 양을 다시 양떼 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함이지 그 양을 잡아 먹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목자도 마찬가지시다.(다니엘 카드레이)
고난 중에도
67세의 암환자.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말한다. 골프의 제왕 아놀드 파머이야기다.
올해초 후두암 제거수술을 받은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각종 대회의 우승을 노리는 「의지의 제왕」.그는 최근 캐딜락 NFL골프 클래식의 프로암대회 출전에 앞서 『나는 영웅이 아니라 하루에 1천5백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암이라는 병을 지닌 또 다른 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해 하면서 『암 예방 및 치료 등을 위해 얼마든지 헌신할 생각』이라고 선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고난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당신이 괴로워할 때도 하나님은 계시는 걸까요? 그 질문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할 때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질병과 비극과 재난과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그들의 고통을 함께 극복하기 위하여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며 다가가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8,19). 고통의 와중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위로를 받아들여본 사람이라면 이 말씀이 진리임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나찌 독일의 악명 높은 수용소인 라벤스부르크에서 죄수로 지낸 바 있는, 유명한 코리 텐 붐 여사는 라벤스부르크의 악몽이 있은 이후 33년 동안 개인의 안식처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85세의 고령이 되었을 무렵, 몇몇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캘리포니아에 사랑스런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말했습니다. “코리, 너에게 이런 아름다운 처소를 주신 것을 보니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봐?”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라벤스부르크에 있었을 때도 역시 하나님은 선한 분이셨어. ”
희망을 보며 전하는 타고난 목자
소강석 목사는 양에 대한 애정이 유난히 뜨거운 목회자다.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는 백절불굴의 목회열정은 신학생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목회현장에 그대로 반영돼 끊임없는 교회성장으로 이어진다.
“한국교회는 희망이 많습니다.아직도 불신자가 전국민의 75%나 되지 않습니까.그리고 새벽을 깨우는 눈물의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목사는 ‘3맨목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는 ‘맨땅’에서 ‘맨몸’으로 일어나 ‘맨발의 목회’를 실천한
종이다. 전남 화순의 벽지에서 농촌목회를 시작한 그는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서울 가락동에 목회의 둥지를 틀었다.경험 학력 연고도 없는 이곳은 망망한 고도(孤島)였다.그러나 뜨거운 기도,넘치는 소망으로 무장한 그는 유명 목회자들이 모두 집결해 ‘별들의 전쟁’으로 불린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한없이 나약하고 의지할 것이 없었기에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명 목사의 분당 입성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재적교인 3000여명의 교회로 성장했지요”
소목사는 촌음을 아끼는 목회자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 계속 공부해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결코 현실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그의 설교는 은혜와 감동이 넘친다. 설교에 등장하는 적절한 예화는 그가 얼마나 많은 독서를 하고 그것을 꼼꼼하게 정리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그는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고를 몇번이고 다시 작성하는 치열한 성격의 소유자다.
맨발의 소명자 소강석 목사. 그는 누구보다 많은 기도의 지원병을 갖고 있다.그리고 양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유별난 종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제자들에게는 예수가 부활한 것이 너무 기뻐서 믿지 못할 정도(누가복음 24장 14
절)였다.반면 무덤을 지키던 병사와 제사장,장로,총독은 부활이 두려워 거짓소문을 퍼뜨렸다.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
게 나타나 기쁜 소식을 확인해주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부활한다면 누구에게 먼저 나타날까.세상에서 실패하고 낙담해있는 사람일수록 예수를
만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올해 고난주간을 금식으로 버텼다.국내에 체류중인 재중동포(조선족)들을 향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단식 시위다.정부가 불법체류 외국인과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재중동포들
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재중동포 1000여명은 지난 26일 서경석 목사가 무기한 단식을 하고 있는 조선족교회에서
1000개의 촛불을 켜고 정부 정책에 항의했다.서목사에겐 부활절이 지나도 고난주간이 계속될 것이다.
이들 조선족의 고향인 중국 지린(吉林)성,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3성에선 지금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북한을 탈출해온 ‘불법 체류자’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지난 14일 탈북민 25명이 주중 스페인대
사관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에 남은 5만여명의 탈북민들은 언제 중국 공안이 들이닥
쳐 자신들을 북한으로 송환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대테러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지난 27일 지진이 일어났다.지진이 발생한 나린 지역의 군사령관은 “헬기를
타고 피해지역을 둘러봐도 온전하게 버티고 서있는 가옥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서 “주민들은 폐허 속에서 가족을 구하거
나 시신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나린 지역의 아이들은 잿더미와 시체 위에서 부활절을 맞아야 한다.
골고다의 고난이 없었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고난이 클수록 더 큰 기쁨이 있을 것이라는 게 부활의 약속이
다.3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6만명이 모이는 것을 비롯해 전국에서 성도들이 ‘부활의 영광,월드컵 승리’라는 주
제 아래 모여 예배를 드린다.오늘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의 현장을 기억하는 성도라야
고난 중에 참기쁨
누구나 좋은 사람과는 함께 있고 싶어하고 성격이 사나운 사람과는 함께 지내기를 한사코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사람 곁에서보다도 성격이 사나운 사람 곁에서 겸손의 덕을 닦기가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까다로운 사람 없이 우리가 어떻게 참아야 할 일이 있고. 남에게 시달리는 일 없이 우리가 어떻게 인내의 덕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나의 일을 가로막는 사람 없이 어떻게 용서하는 사랑을 배울 수 있고, 나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 없이 어떻게 인종의 아름다운 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부당한 명령을 하는 사람 없이 어떻게 자기 부정의 연단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고, 나에게 빈번히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 없이 어떻게 남에게 자비를 베풀 기회가 주어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서 보다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서 더 훌륭한 덕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을 절대로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겸손은 여러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괴로움과 시달림을 받으면서 다듬어져 나오는 보석 같은 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고난에 대해서는 극복하려는 생각보다는 피하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고난을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에서 극복하였다.
당장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
(It is fimished)고 말씀하셨다.
도이취의 삼대작곡가(바하, 브람스)로 알려진 베토벤도 고난을 극복한 사람중 하나이다.
그는 13세때 벌써 본 궁정의 올갠이스트가 되었고 22세 때에는 비엔나로 옮겨 피아니스트로써 이제 막 유명해지려 할 무렵 27세 때인 1798년 부터 귀를 앓게 되어 전도가 막히게 되었다.
절망과 고독속에서 몸부림치던 그는 "죽음은 무한한 고통으로 부터 나를 해방 할것이다"라는 유언장을 써놓고 두번씩이나 자살을 하려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한 것이다. 죽을 힘을 모아서 살기로 결심하였다.
불행은 분투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아멘다 목사에게 상담을 하고는 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는 말하기를 "저는 새로운 운명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제가 제일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때로 기억합니다."
베토벤은 불굴의 의지와 믿음으로 불행을 극복하고 우뚝 선 그런 위대한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때때로 고난은 우리의 각성제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고난을 극복하자.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본문: 요한계시록 2;8∼11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 2:9)
‘서머나’라는 단어는 ‘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수없는 핍박을 받아 왔고 핍박을 피해 다니느라 생업이 유지되지 않으니 자연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서머나를 향해 말씀하시길 “내가 네 궁핍과 환난을 아노니”(계 2:9)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 하시면 큰일인데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왕하 20:5) 혹은 “내가 네 궁핍을 안다”고 하셨으니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또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전능자가 서머나 교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마 1:23)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서머나 교회는 환난도 극심하고 궁핍도 심했지만 처음이요 나중이시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고난을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진정한 부자이고 누가 강자인가요? 주님 안에 있는 자입니다.‘주님 계시면 나는 이미 승리자다’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승리자입니다.
중세에 성자이었던 토마스 아켐퍼스에게 꿈속에서 주님이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내게 주님께서 계신데 무엇을 원하리요. 저는 주님으로 만족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10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로마제국은 이 시대 아주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히고 잔인하게 순교했습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 중 ‘죽도록 충성한’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80세에 화형으로 순교한 폴리캅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지도자이었던 그는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회유에도 굽히지 않고 이렇게 담대히 말했습니다.“80년동안 주께서는 나를 한번도 부인한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와서 어떻게 주님을 부인하겠습니까”
* 기도: 주님, 고난 중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예수님의 그 날의 고난 본받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축복과 행복의 개념은 고난과 어려움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축복과 행복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하여 더욱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다운 고난이며 또 죄가 없이 당하는 고난과 선을 행하면서 당하는 고난도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사순 기간입니다. 이때 왜 주님의 고난이 아름다운 고난인가 살펴보는 것은 그 의미가 큽니다.
첫째,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벧전 2:21)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신 아름다운 고난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엡 2:3). 왜냐하면 우리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죄(원죄)를 이어받았고 지금까지 지은 죄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둘째, 각자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고 하시었습니다(벧전 2:21). 주님은 얼마든지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천사들을 동원하여 악한 영을 모두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했습니다(마 26:53).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셋째,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라고 말씀하셨듯 주님의 고난은 우리들을 복되게 살라고 모든 짊을 대신 짊어지신 아름다운 고난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저주(갈3:13)와 가난(고후8:9)과 질병과 죄짐을 대신 짊어지신 아름다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고난을 믿을 뿐 아니라 낙심한 자들과 불신자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본을 보이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으며,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기에 아름다운 고난인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 때문에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것을 감사하며 더욱 열심으로 주님의 아름다운 고난을 널리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고난과 시험의 목적
고난과 시험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데 있다. 신실하게 순종함으로써 하나님나라의 통치 원리를 배우는 것이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승리자가 되는 기회를 맞이하는 것이다. 당신이 당하는 환난을 저울의 한 편에,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영원한 영광을 올려놓아 보라. 그러면 한 쪽으로 "쿵"하고 기울어질 것이다. 깃털과 비교되는 금 덩어리의 무게처럼 말이다. 끈질기고 고통스러운 암으로 두 자녀를 잃은 가정이 있다. 지금 그 가정의 가장이 같은 암으로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 채 고통을 당하며 여위어가고 있다. 이런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성도의 영원한 기쁨을 더하시는 것이다. 극도로 참기 어려운 현재를 위한 기쁨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평탄하고 안정감 있고 방해받지 않는 생활을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뜻을 갖고 계시다. 그분은 우리를 정화하고 시험하며 훈련시켜서 그분의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 옆에 앉을 수 있는 흠 없는 교회로 우리가 헌신하기를 원하신다. 영국의 설교자 스펄전은 "안일함이라는 거목을 쓰러뜨림으로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만들어주는 고통이라는 이름의 도끼는 얼마나 복된가?"라고 말했다. 환난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은 결코 자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격 없는 자녀들에게 말할 수 없이 관대하신 하나님을 경배케 한다.
고난은 아름답습니다
고난은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혼란한 때에 지혜자가 나타 났고 문명의 꽃이 피었습니다. 앞서간 위인들은 그토록 기막힌 고난을 당하면서 문명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역사의 유모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찬란한 결과를 약속하기에 "고난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은 가장 아름다운 시보다도 더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시는 인생의 영혼을 정화하지만 고난은 그 시를 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시인들의 영혼으로부터 울려나온 시는 고난의 순간을 지나며 정제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들 중에는 고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많습니다. 시인 롱펠로우는 그의 아름다운 시 '겨울의 숲'에서 고난의 감미로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 그 풍성하던 여름의 자취는 모두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지저귀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으며, 부드럽던 여름 바람은 어디로 가 버렸나, 그 푸르던 숲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는가! 그러나 여기에도 음악은 있다! 거칠고 사나운 겨울의 음악! 이 거칠고 사나운 겨울 바람에도 갈대는 고운 소리로 울고 있구나! ...
여기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고난의 감미로움'은 그저 형이상학이 아닙니다.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보다 흙 속에서 진주를 캐는 것이 더 아름답고 값지게 보이는 것처럼 평안 속에서 행복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보다 고난 속에서 행복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는데 시인은 바로 그 점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고난은 아름답습니다. 고난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난이 가져다주는 역사로 인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을 자꾸만 피하려 하지 말고 또한 극심한 고난을 맞이하여 한탄의 나날 속으로 빠져드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명 바로 직전이 가장 깊은 밤인 것처럼 고난의 밤이 깊을수록 찬란한 아침은 속히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육체를 위해서는 쾌락이 환영을 받겠지만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는 고난이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고난의 강을 잘 건너십시오
고난의 강을 잘 건너십시오 본문: 고후 1:3-9 요사이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당하는 고난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조그마한 바람이 불어도 교회를 등지거나 떠나는 성도들도 있는데 안타깝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이기고 최후 승리를 얻는 것이 성도의 진정한 자세인 줄 믿습니다. 성도를 이길 세력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성도들이 유약해져서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이 다가옵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십자가입니다. 고난입니다. 어려움입니다. 밤하늘에 별빛이 빛나듯이 우리 성도들의 삶은 어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가치있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넓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좁은 길이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 다. 고난을 귀히 여기고, 고난이 있을 때 더 밝은 모습으로 신앙을 가지고 이겨내는 그 모습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아픔도 없이, 눈물도 없이, 시험도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엔 없는 삶입니다. 똑같은 시험을 당해도 어떤 분은 자살하려고 하지만 성도는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시험을 이깁니다. 세상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해도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성도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어려운 문제와 예수 그리스도를 접목시키기 때문에 바울이 말한 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 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함께 계시고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주님이 계심으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왜 나만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불평하며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남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시편 37편에 '악인을 인하여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파이낸스 사건에 관한 보도를 을 보았습니다. 하루에 몇 천만원씩 쓰던 그들이 한 순간에 망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귀하게 들어 쓰시기 위해서 때로는 연약하고 부족하게도 하시며, 하나님을 중심하여 경건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풍족하게 하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은 좁은 길로 안 가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고생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은 좁은 길입니다. 교회도 좁은 길로 가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늘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늘 영적인 훈련, 경건의 훈련, 기도의 훈련, 말씀의 훈련, 믿음의 훈련을 시키는 곳입니다. 우리가 왜 계속하여 교회에 나옵니까? 왜 새벽을 깨워서 기도합니까?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꾸준하게 훈련한 사람만이 좋은 경주자, 영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이나 어떤 분야에서도 고난을 겪은 사람들의 작품이 훌륭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고난은 결국 우리를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위로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며, 그 분의 위로를 받은 우리도 고난 중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한국 땅에 가장 귀한 사람은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위로를 전하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베풀고, 우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 받은 새사람, 긍휼 입은 사람으로 인하여 다시 그리스도의 긍휼이 전달될 때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고난과 성숙
어린 소년이 연못가에서 손으로 만든 작은 종이배를 띄우며 놀고 있었는데 배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밀려나자 소년이 울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소년의 형이 배가 나가는 방향에 돌을 던졌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더 소리 내어 울었고, 그 울음은 형이 던지는 돌맹이가 배를 맞추어 가라앉게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울었다. 던진 돌맹이가 수면 위에 떨어져 잔물결로 인해 배를 연못가로 움직이게 하여 자신의 앞으로 오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울음이 그쳤다.
우리들 대부분도 어린 소년과 같이 고난의 물결을 일으키는 돌맹이가 앞에 떨어지면 당황하고 울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려 하시는 분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승리로 바꾸어 주시며 우리를 더욱 성장시켜 주신다.
주 이름으로 받는 고난을 기뻐하다
'인도 성자' 라 불리는 썬다싱이 25살 나던 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일름(Ilom)이라는 지역에 들어가 시장에서 전도를 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그랬듯이 복음을 전하는 도중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 갖은 고문을 다 받게 되었다. 그러나 썬다싱은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때문에 받는 고난을 기뻐하며 밤에는 날이 새도록 찬송을 불렀고, 낮에는 작은 창문을 통해 설교를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재판장이 그를 끌어내도록 하고는 판자위에다 발과 손목을 묶고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시장바닥에 갖다 놓았다. 사람들이 몰려와 돌을 던지며 욕지거리를 했다. 그리고 승려들이 수십마리의 거머리를 썬다싱의 몸에 쏟아 부었다. 거머리는 썬다싱의 피를 빨아 살을 파기 시작했고 그의 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저리칠 정도로 비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썬다싱은 찬송과 복음을 전하니 군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정신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더미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썬다싱은 전도에 의해 믿게 된 지하 교인들에 의해 구조를 받게 되었다.
고난 속의 사치
불결한 환경과 이따금씩 찾아오는 구타와 나를 벽에 매단 쇠사슬들 속에서 나는 고통받는 욥과 더불어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욥과 함께 나는 하나님께 외쳤다.
"나는 선한 사람입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을 행하십니까? 공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꼭 공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니 너는 순종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순종을 배우기 시작했다. 쇠사슬에 매인 사람의 사정을 바울처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수도 없이 감방에서 그의 서신들을 썼다. 나는 고난 속에 깃 든 가치를 그를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킨 베토벤
어느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팔아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아내를 심하게 구타합니다.거기다가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자신의 몸하나 가누기가 힘들 정도입니다.그런데 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태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학생 하나가 재빠르게 손을 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아이는 낙태시켜야 합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다네!” 그 임신된 생명은 바로 베토벤이었다.그를 낳은 어머니는 결국 그가 어렸을 때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했다.어머니를 여읜 베토벤은 11세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예술을 시작했다.
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불행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는 그 불행의 조건을 오히려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조적 조건으로 승화시켰다.시편 기자도 고난의 긍정적인 면을 노래한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고난과 성공
한 신문기자가 구세군 집회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기자는 어른과 소년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소년은 급히 층계를 오른다. 그만 계단에서 넘어졌다. 그는 피가 흐르는 무릎을 만지며 엉엉 울었다. 그때 뒤따라오던 어른이 울고있는 소년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얘야, 어서 '할렐루야'라고 말하렴"
소년은 눈물을 닦으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기자는 그때 비로소 구세군의 정신은 패배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시련이 닥칠 때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고난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일시적 통증에 불과하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역경을 '매력적인 산'으로 여긴다. 고난과 성공은 항상 함께 다닌다. 고난 없는 성공은 없다.
고난이 주는 선물
하늘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송명희 자매는 뇌성마비의 몸으로 태어나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인데 그가 예수님을 알고 나서 그분께 드리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편지의 서두는 "고난의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녀가 고통을 안고 얼마나 몸부림쳤으면 예수님을 향해 고난의 선생님이라고 불렀을까요? 그가 쓴 편지 중에 한 대목을 읽어드립니다. "선생님을 좇은 후에도 고난은 저를 떠나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이 많아져 고통스러움은 더해만 갔었는데, 선생님이 제 옆에 계셔서 육신은 고달픔이 있으나 마음은 편안했고 감사함으로 고난의 길을 잘 밟을 수 있었지요. 의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슬프고 괴로울 때는 '얘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제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했을 땐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선생님은 그렇게 수없이 말씀하시며 그 부드러운 손으로 안아주셨지요. 제가 선생님을 만난 후, 건강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많은 재물이 없어도. 선생님이 계시기에 감사할 수 있었지요 선생님. 감사의 성숙과 이해의 성숙은 고난이 아니면 얻어 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얼마나 진한 감동을 주는 편지입니까? 고난을 이기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의 축복
어떤 전도사가 개척지에서 매우 중한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슬픔이 더 하였던 것은 그녀에게 돈이 도착하지 않아서 자신이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날마다 오트밀과 깡통에 든 우유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 전도사는 점차 회복이 되었으며 꾸준히 30일 동안 오트밀 음식을 먹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송금한 돈을 받게 되었고, 다른 것들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휴가 때가 되자 그녀의 큰 시련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한 의사가 그녀의 병의 증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는 심한 소화불량이 있었다는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돈이 빨리 도착했었더라면 당신은 오늘 나에게 여기서 말할 수 없었을 거요. 우리가 그 병을 위하여 항상 처방하는 음식이 바로 30일간의 오트밀 식사랍니다."
그녀의 고난이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은 축복을 싸고 있는 보자기입니다.
자랑스러운 고난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로 남 모르게 고난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하며 정신적인 고문을 당하는 아내들, 직장에서 술자리에 함께 앉지 않는 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나중에는 진급마저 잘 안돼서 만년 계장 노릇하는 가장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입니다. 나이가 차서 시집을 가야 되겠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결혼 할 수 없다는 고집, 그것을 꺾지 못해서 혼기를 놓친 채 아직도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자매들, 그렇다고 해서 믿는 것 따지지 말고 아무하고라도 결혼하자니 신앙 양심이 허락지 않아, 부모들로부터 이 눈치 저 눈치 받아가면서 지금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 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모두 다 십자가로 낙인 찍혀있다. 털에만 찍힌 것이 아니라 살 속에까지 깊이 찍혀 있다." 그 낙인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현재의 고난입니다. 우리만이 받는 자랑스러운 고난이며 피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가정에서 핍박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형제 자매들이여, 한시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고 있다는 것을.(옥한흠 목사)
기도: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주님, 이 땅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그 뜻을 위해 나 또한 고난을 받을 때 감사하게 하소서. 복음을 위해서라면 나의 고집과 이익을 포기하며,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감당하려는 결단을 하기 원합니다.
고난이 주는 선물
한 청년이 고난을 당한 후 목회자를 찾아가 "왜 제게 이런 문제가 찾아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행복한 데 저만 고통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목회자는 "1천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 문제없이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고통을 당합니다."라고 말했다. "문제없는 곳은 없을까요? 저는 문제없는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청년이 말하자 목회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거기는 바로 공동묘지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고난 중에도 기뻐해야 하며, 고난이 주는 선물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고난은 성도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스미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폴린 해밀턴 박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중국 선교사로 자원했다. 그러나 중국에는 많은 어려움이 해밀턴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들은 해밀턴 박사에게 고통과 좌절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해밀턴 박사는 고난을 기회로 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녀는 다리 부상으로 병원에 누워 있었을 때가 자신의 중국 선교기간 중 가장 활기차게 사역을 감당했던 때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유익할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까? 감사하십시오. 그 고난을 통해 당신은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어느 곳에는 묵직한 돌을 짊어지고 가야만 건널 수 있는 얕은 강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강의 물결이 너무 세서 그냥 건너면 떠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생활도 너무 편하면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파멸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묵직한 돌을 짊어지는 것 같은 시련과 고통을 주신다. 또 양들이 많은 곳에는 염소가 한 마리 꼭 있어야 한다고 한다. 양들은 염소와 싸움으로써 질 좋은 털을 가질 뿐 아니라 운동도 겸하게되어 잘 자란 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양은 영양과다로 병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성도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원수라는 염소"를 두신다.
둘째, 고난은 인생을 아름답고 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지 왕이 한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꽃병들은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고, 같은 스타일과 무늬로 만들어졌으나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또 하나는 흐릿한 빛을 낸 채 아주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이유에 대해 묻자 관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전시한 것입니다." "고난의 불"은 성도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빛나게 한다. 또 인공진주 양식을 할 때 조개 속에 모래알을 집어넣게 되는데, 부드러운 조갯살 속에 깔깔한 모래가 들어가면 생명체인 조개는 큰 고통을 느끼나 그것을 이겨내려고 귀한 생명의 즙을 내어 그 모래알을 싸고 또 싸면 그 모래알은 점점 크면서 굳어져서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진주로 변한다고 한다. 고난을 겪으므로 조개가 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셋째, 고난은 위대한 사상과 위인을 만들어 주며, 예수님과 믿음의 선배들도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다.(히5:8-9, 벧전5:9, 약5:10-11) 성경의 인물이나 신앙의 선진들은 대개 고난을 통해 더욱 커다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사람들이다. 아벨은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창4:18),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쳐야하는 고난을(창22:1-10), 요셉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했습니다.(창39:7-20) 의인 욥은 이유 없이 고난을 받았으며, 다니엘은 신앙을 지키려다 사자 굴에 갇혔으며(단6:10-18), 사도 바울도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고전4:11) 한국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회자들이 순교를 당했고 6.25전쟁 때도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박해와 고난이 있을 때 더 확장되었고 타협하지 않는 헌신된 소수를 통해 그 본질을 지킬 수 있었다.
넷째, 고난은 성공에 언제나 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찾게 하고 또 그릇된 삶에서 돌이키게 해 준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다섯째, 고난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미국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물고기를 큰 물통에 담아 운반하는 데, 수산기사가 옆에 따르고 물고기가 서식하는 모든 생활 환경을 다 갖추어서 2주일간 기차에 싣고 운반했지만 물고기가 다 죽어 버렸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그 생존경쟁이 없음을 알았다. 너무 과잉 보호를 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나서 그 안에 조류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그 다음엔 큰 낙지 한 마리를 집어넣었다. 이 낙지가 배가 고프자 긴 다리를 내밀면 물고기들은 나는 죽었구나 하며 피해 다니면서도 2주일동안 죽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때로는 실패와 고난을 겪게 되는데 이 실패와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 된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시119:71)
여섯째, 고난은 우리를 반성하게 하고 죄를 깨닫도록 해준다.(민21:7, 욥36:8-9)
일곱째, 고난과 시련은 도약의 기회가 된다. 한 신실한 목재소 직원이 있었다. 그는 40대 초반에 회사에서 청천벽력 같은 해고통보를 받았다. 극심한 불황으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게된 회사측에서 감량경영을 선언한 것이다. 갑자기 실직자가 된 이 중년 남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 "해고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는 건전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여관을 시작하라는 음성을 듣고 전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사업망을 거느린 호텔 '홀리데이 인'을 창업한 케몬스 윌슨이다. 그는 눈앞에 해고통고서를 놓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다. 시련을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만약 케몬스 윌슨에게 '해고통보'가 날아들지 않았다면 그는 목재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
여덟째, 고난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도록 해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생산업자들은 발칸산맥의 장미를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2시에 딴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 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는 이여, 영혼의 향기는 고난 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묵상하자. 서양속담에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시내는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돌들이 있기 때문에 시냇물은 흘러가며 노래를 창조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고난의 아픔을 통해서 인격이 자라난다.(히5:8) 또 아라비아속담에는 "햇빛이 나는 것을 누구나 좋아하나, 해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좋은 날씨만 계속되면 죽음의 땅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 식물이 잘 자라는 것 같이 인생의 괴로움과 고난은 우리를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채찍이며, 승리의 전주곡이다. 고난 그 자체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하시려고 고난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했을 때 성도가 취할 자세(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믿음의 담력을 가져야 한다.(시16:8, 요16:33, 롬8:18) (2) 기도해야 한다. (시119:153, 약5:13) (3)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시55:22, 시118:6) (4) 절망하지 말고 선용해야 한다.(
고난과 소망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땅에 계실 동안 사람으로 형언할 수 없는 많은 슬픔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이 얼마나 컸던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처참한 고난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걷는 우리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난과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고난과 슬픔을 다 아십니다. 아실 뿐 아니라 여러분을 은총의 길로 이끌어 주기 원하십니다. 요셉의 고난과 승리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엄청난 고난에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그때 해답은 보이지 않고 고통만이 엄습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그 뒤에 나타난 부활을 바라보고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선으로 바꿔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요, 주를 믿는 사람들이 받아 누릴 특권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고난을 당할 때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해를 갖다준 사람에 대해 원한을 갖거나 분노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양식으로 삼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소망과 믿음을 갖고 "온 세상이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난중에 있습니까? 병들었습니까? 타인으로 인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까? 매우 궁핍한 중에 있습니까? 멸시를 받고 있습니까? 소외를 당했습니까? 가정에 위기를 당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해를 선으로 바꿔 주실 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원토록 사랑해 주십니다.
롬8:28) 고난은 우리를 겸손케 하며(대하33:12),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신4:30). 그리고 고난 뒤에는 상급이 준비되어 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고난과 성공
에드워드 쟈드슨 박사는 뉴욕시의 쟈드슨 기념교회의 헌당식에서 그 의 부친 애도니람 쟈드슨의 생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 과 성공은 동행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고난을 받지 않고 성공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이전 사람들이 고난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 다. 만일 여러분이 성공을 하지도 않고 고난을 받는다면 여러분의 후 손들에게 성공의 월계관이 안겨질 것입니다.
" 애통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저들은 저들의 고통과 고난이 새로운 피조물을 위한 산고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산고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습 니다.
저들은 비록 고통을 받고 있을지라도 언젠가 주님과 함께 통치 할 것이라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저들의 허약을 기뻐할 수도 있고 눈물 중에서도 웃을 수 있으며 슬픔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도 있 습니다.
고난의 귀한 시간
스코틀랜드의 죠지 마티슨(George Martheson)의 통찰력 있는 분석과 호소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합시다.
"과거의 위인들에게 가장 잊지 못할 풍요의 자리가 어디였던가 물어보라.
그들의 대답은 `내가 엎드렸던 차가운 바닥'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물어보라.
모리아의 번제단을 가리키리라.
요셉에게 물어보라. 차가운 감옥을 가리키리라.
모세에게 물어보라.
생사의 고비를 넘긴 나일강을 가리키리라.
룻에게 물어보라. 허리가 아프도록 이삭을 줍던 밭에
자기의 기념비를 세울 것이다.
다윗에게 물어보라.
그의 노래는 밤에 지어졌다고 할 것이다.
욥에게 물어보라.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서
응답하셨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에게 물어보라
그는 바다에서 순종을 배웠다고 하리라.
요한에게 물어보라.
그는 밧모섬에 승리의 면류관을 던지리라.
바울에게 물어보라.
그는 자기의 눈을 멀게 한 빛에서
영감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한 사람 더 예수에게 물어보라. 그 분은 대답하리라.
겟세마네 동산 차가운 땅바닥에서 왕권을 받았노라고,
내 영혼아, 그대도 겟세마네에서 화환을 얻으라.
그 쓴 잔을 마심이 면류관이 되리라.
그대의 외로운 시간이 왕관으로 바뀌리라.
절망스런 날들이 기쁨이 될 것이요.
사막이 변하여 노래하며,
조용한 삼림의 나무들이 손뼉치리라."
뜻하지 않은 고난 때문에 낙심되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지금의 이 고난은 황금알이 잉태되는 귀중한 시간임을! 지금의 이 고난은 우리 안에 있는 각종 아름다운 씨앗들이 알알이 영글기 위해 필요한 보석같이 귀한 시간임을 깨닫고 인내하며 기다립시다.
고난의 설비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방법에 의지했을 때인생에는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의 가시는 우리에게 [너는하나님의 신세를 정말 지지않고 살겠느냐?너는 네 능력과 방 법을 의지해서 살겠느냐?그러면 네 앞길에는 끝없는 가시가 생겨날 것이다]라고 말할것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의 가시에 찔릴 때 [가시 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인생의 가시에 찔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고통의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섭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참으로 값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보낼 수 있습니다.
고난 주는 까닭
사람들이 타락한 성격,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자기 교만, 탐욕, 육신에 의지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파괴해 버리고 자기 스스로의 운명도 파괴해 버립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고난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저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해서 결혼하고 가정도 이루고 사업도 하고 일도 계획했는데 왜 중간에 와서 이렇게 혹독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며 모든 일에 시련의 눈보라가 치고 사 막을 지나는 것같은 고통이 다가옵니까. 전진도 후퇴도 못할 정도로 죽게 되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대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셔서 그 것을영원히 누리게 하기 위해 먼저 타락한 인격의 찌꺼기를 제하시 는 것입니다. 어9 건축 공사장치고 기초도 다지지 않고 건물 먼저 세우는 것을 보았습니까. 어느 도로 공사장치고 지반을 파내지도 않고 바로 길을 닦는 것을 보았습니까.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업을 맡기고 큰 축복을 해주시기 전에 먼저 인격적인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진주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는가? 조개속으로 모래알이 한개 들어간다. 그 부드
러운 조개의 살 속에 거칠은 모래알이 들어왔으니 조개는 얼마나 아프고 쓰리겠는
가?
고통스러운 조개는 몸의 진액을 짜내어 그 모래알을 싸고 견디며 고통을 참는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또 가고 하는 중에 그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가 생기는 것이
다.
당신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당신 인생의 참 진주를 형성하는 계기인 것이다.
참고 견디어 이기시라!
고난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당신이 괴로워할 때도 하나님은 계시는 걸까요? 그 질문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할 때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질병과 비극과 재난과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그들의 고통을 함께 극복하기 위하여 한 사람씩 이름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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