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한 예화 모음
본문
예배에 대한 예화 모음
교회 이전 및 확장 기념예배 권면사
성경 한 구절 봉독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오늘 교회 이전 및 확장 기념예배를 드리는 만민복음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몇 마디 격려와 권면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전은 이 땅위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성전을 마련하기 위해 충성 헌신한 성도님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역대상 17장에 보면 성전건축자가 받을 복으로 첫째, 이름을 존귀케 한다고 하셨고, 둘째는 흔들리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하였으며, 셋째는 승리의 복을 주신다고 하셨고, 넷째, 성전을 통하여 후손에게까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성전을 위해 헌신한 성도님들의 노고를 치하드리며 주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심지어는 환전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점점 영성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많은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요? 상업화되고, 외식과 형식, 권위주의와 거짓이 판치는 곳은 마귀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떠나는 것은 참지 못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고 바른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요4:23-24)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보면 예배당이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이 아니며 더욱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둘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가르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마21:13)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거나 "강도의 굴혈"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일 아침마다 온 성도가 모였을 때, 기도소리로 성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이 모여들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기도로 채웁시다.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영의 세력은 물러갑니다.
셋째, 교회는 영육간에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21:1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회는 병든 자의 치유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영육간의 질병으로 시달립니다. 머리 아픈 자, 실직의 아픔, 실연의 아픔, 인간관계의 고독의 아픔, 사랑 받지 못한 자의 아픔 등등, 교회는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런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능력"입니다. 성도에게는 이미 이런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습니다. 마가복음16장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성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을 이상한 일로 보았습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살리는 일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영육의 치유와 죄인을 살리는 사역은 '이상한 사역'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야합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21:16)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43장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은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찬송으로 모압을 물리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었습니다. 찬송은 성도의 무기입니다. 우리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짐바브웨 출신의 니프라이스라는 골프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슬럼프가 오면 항상 휘파람을 붑니다. 왜 그렇까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찬송을 불러라. 기쁠 때에든지, 슬플 때에든지 찬송을 불러라. 힘찬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며, 막힌 곳을 뚫으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라"
다섯째, 교회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는 교회의 열매입니다. 선교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고, 착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그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습니다.(고전10:31, 엡1:14)
끝으로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한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42- 47절에 보면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나눔과 교제가 풍성한 교회, 주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였습니다. 만민복음교회는 주일날만 되면 피곤하고 짜증스런 얼굴로 마지못해 찾아오는 교회가 아니라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일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신바람 나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즉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성도님들이 텃세 없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건물이 크다고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와 함께 하지 말라' 했습니다. 큰 교회에 가보면 목에 힘주는 장로, 터주대감 권사, 안수 집사 등이 버티고 앉아 새 신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사직을 마치 세상벼슬자리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민복음 교회 성도님들은 새신자들이 많이 와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날로 날로 부흥 발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작자 미상의 시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이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말씀이 있으면서 행동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교회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교회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교회 감사가 있으면서 찬송이 있는 교회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되게 하시고 실패한 자들에겐 희망이 되게 하사
살아있는 교회로 부흥하게 하소서(작자 미상)
하늘나라 예배당
본문 : 요한계시록 15:2-4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요한계시록 15:3)
‘두메 산골 / 산자락에 감긴 / 아담한 집 같은 / 쬐그만 예배당/ 교인은 아이들을 합쳐도 / 오직 몇 사람 뿐/
그래도 예배드리는 시간은 / 너무 사랑스러워 / 너무 은혜스러워/ 성경 말씀 배우고 기도할 때면 / 바람결에 실려온 꽃향기가 / 하나님의 말씀처럼 달콤하고/ 풍금소리 맞추어 찬송할 때면 / 산새들도 날아와 / 시냇물도 따라와 / 노래 부르는/ 기도소리 가득찬 / 찬송소리 가득찬 / 산골 예배당/ 어느 새 / 하늘나라 예배당이 되었다’ (시 산골예배당’·양회성)
국민일보 2000년 6월 29일자 ‘아침에 읽는 시’에서 인용하였습니다.이 시는 산골 예배당의 예배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비록 교인 수는 작아도, 예배드리는 시간은 너무 은혜롭다는 것입니다.풍금소리 맞추어 찬송할 때면 산새들과 시냇물까지 노래하는 기도와 찬송소리 가득한 하늘나라 예배당이란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면서 궁금한 것 중 하나는 하늘나라에서는 어떻게 예배하는가 입니다.분명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되지만 그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는 않습니다.하지만 오늘 본문에 그 예배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나라 예배장소입니다.본문은 유리 바다 가라고 소개합니다(2절).유리바다란 맑고 깨끗한 곳을 의미합니다.아무도 죄악의 모습을 가지고 그 예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더 없이 맑고 깨끗해진 심령을 가진 성도들만이 하늘나라 예배자가 됩니다.그리스도를 통해 죄값을 사함받은 자들만이 이 아름다운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늘나라의 예배 악기입니다.요즘에야 여러 종류의 악기를 들고 연주하며 찬양하는데 하늘나라에서는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가 궁금합니다.하늘나라에서 사용하는 악기는 많지 않습니다.2절을 보면 거문고(harp)들을 가지고 찬양한다고 합니다.그 악기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거문고의 맑고 청아한 소리를 들으며 신령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나라 예배의 찬양 주제입니다.지금은 부흥, 전도, 감사, 헌신·여러 주제로 찬양을 만들어 부릅니다.젊은이들에게 맞도록 많은 주제의 찬양들이 있어서 젊은 사람들도 무척 기뻐하며 부릅니다.그러나 하늘나라 예배의 찬양 주제는 모세의 노래,즉 승리의 노래 입니다.또 하나는 어린양의 노래입니다(3절).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는 노래입니다.저들이 부르는 노래의 주제는 죄와 죽음을 이긴 승리의 노래요 그것을 가능케 하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도 이처럼 하늘나라 예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된 예배
평양 어떤 공장 지하교회 성도들이 기도회를 갖고 있을 때다. 이들에게는 성경이나 찬송가가 없으므로 종이 쪽지에 성경 귀절을 적어서 돌려가며 읽고 입만 벙긋벙긋 벌리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노동당 반장이 뒤에 와서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소리 없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반장이 다가와 `동무들, 무엇하고 있는 거요?`하고 물었다. 그때 한 대담한 여공 성도가 `우리는 지금 독보회를 하고 있소. 동무도 같이 앉아서 안하시려오?`라고 했다.
영문도 무르고 그반장은 한참 앉아 있다가 `동무들이나 많이 하소`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그 순간 이들은 그 반장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다.
그들은 때로는 눈을 뜨고 기도드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생명을 걸고 드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수 명이 모였으나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형식적인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느 것을 기뻐 받으시겠는가?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데도 이를 소홀히 한다면 분명히 그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다.
700주년 기념예배
전쟁의 장본인이었던 독일의 폐허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합니다. 여러 가족들이 한 집에서 살아야 했으며 퀀센트에서 집단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COLOGNE라고 하는 도시에는 커다란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는 새고 아치는 무너지고 창문은 다 깨어지고 기둥은 기우뚱 서 있었습니다.
전후독일 백성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방법을 잃은채 절망과 어려움에 깊이 빠져 있었섭니다. 이때 어느 한 사람이 쓰러져가는 그 교회의 창립 700주년을 기념하는 계획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퍼져 나갓습니다. 700주년을 기념하는 그날 폐허된 교회에는 30,000명의 실망한 독일인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700주년 기념예배가 시작되자 오랜 실망과 눈물속에 가슴과 믿음은 산산 조각이 났던 그들의 눈에서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드높아지기 시작했섭니다. 힘차게 울려 나오기시작한 찬양과 함께 오랫동안 막혔던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과 가슴은 감사와 찬양으로 열리기 사작했습니다.
그래도 700년동안 지켜주신 하나님! 그들이 용기만 내어도 그 교회를 다시 세우려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그들은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페허가 되었던 700년된 교회는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변모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얘기의 핵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복구하는 동안 절망했던 독일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은 이상스럽게도 뜨거움과 감사로 되살아났으며 그 새마음은 새독일 건설이라는 다음 단계로 불붙어 갔습니다. 그 다음 그들은 집을 지었으며, 학교를 짓고, 회사를 지어 갔습니다. 결국 그 도시는 위대한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배의자세
보스톤 지역에서 A.J.골든 목사라고 하면 유명한 설교가요. 능력있는 말씀의 사도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큰 교회 담임목사였기에 설교하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날 그는 교회 목사 사무실에서 힘을 들여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하여 그만 의자에 앉은 채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꿈 속에서도 주일이 되어 교회는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교인들 가운데 30세 정도의 낯선 사람에게 웬지 모르게 시선이 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낯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교인들이 목사와 인사를 나누고 다 교회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그 낯선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골든 목사는 안내위원들에게 그 낯선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내위원이 하는 말이 “아. 그 사람요. 알고 말구요 그 사람은 예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예수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 다음부터 골든 목사님은 회중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앉아계신다고 믿고 설교를 했다. 교인들도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것으로 알고 생활을 했다. 교회는 능력있게 부흥했고 많은 선교사업을 하는 교회가 되었다.
예배
미국 한인교회에서 시무하는 한국인 젊은 목사가 있었다. 20여명 정도의 교인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하였다. 젊은 목사에게는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살고 있는 부친이 계셨는데 아직 신앙심은 얕은 편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주일이면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설교시간이면 항상 조시는 것이고 심하면 코까지고시는 것이었다. 젊은 목사는 이런 부친때문에 교인들 보기가 민망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하신 부친께 그러지 마시라고 섣불리 말씀을 드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교회에 잘 나오는 꼬마를 만나 부탁을 하였다. "주일 낮예배때 맨 앞에 앉으시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설교시간에 조시면 흔들어 깨워드려라. 그러면 한주에 1달러씩 수고비를 주겠다." 이후로 몇 주일이 지나도록 부친은 조실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달정도 지난 어느 주일이었다. 설교시간에 부친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도 옆에 앉아있는 꼬마는 깨울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예배 후 젊은 목사는 꼬마를 불러 물었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였다. "할아버지께서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3달러를 주신다고 했거든요."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모든 신앙은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마틴 루터는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규정해 놓으신 곳이다"라고 하였고, 호레스 브쉬넬은 "신앙이 없는 가정은 지붕이 없는 집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귀중한 유산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신앙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자녀들에게 참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해 줄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매일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마주 앉아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 드리는 경험을 통하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 가정예배를이끌어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예배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중단하지 않는 꾸준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1. 예배 시간
가정예배 시간은 "온 식구가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칫하다보면 어른 중심으로 시간을 정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자녀들이 참석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 쉽습니다. 자녀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가정예배는 사실상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므로 예배 시간은 어른 중심보다는 자녀들에게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역시 온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아침이나 저녁시간을 예배시간으로 정하게 되는데 각각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아침에 모이는 가정예배는 그날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출발한다는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항상 분주하고 쫓기는 기분 속에서 진행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것은 온 가족이 평상시보다 30분만 일찍 일어날 수 있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
한편, 저녁에 드리는 가정예배는 아침과 같은 생동감이나 진취적인 분위기는 없지만 하루의 모든 일과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했는가를 반성하고 정리하며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예배 후 온 가족이 모여 하루의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반성하거나 다과를 들면서 집안 일에 관한 것도 토의할 수 있습
니다.
예배시간을 언제로 정하느냐하는 것은 서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특별히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시간을 찾기 위해서 매일매일 시간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규정된 시간을 엄수하는 습관을 길러야 가정예배가 지속적이며 꼭 필요한 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2. 예배 장소
먼저, 예배 장소는 가정예배를 어떤 분위기 속에서 진행할 것인가에 따라 결정하게 됩니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이끌어 가기 원하는 가정은 어느 한 곳(예를 들면 거실)을 지정하여 항상 청결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만들고 매일 그 곳에서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가정예배를 다정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녀들의 방을 돌아가면서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가정예배를 어떻게 운영할까 하는 문제와도 연관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즉 부모가 중심이 되어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지도하려면 하나의 방을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고 자녀들이 운영하게 한다면 각 방을 번갈아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이 역시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는 너무 어른 중심이 되기 쉽고 강압적인 인상을 주는 대신 각 방을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방 주인이 주관자가 됨으로써 다양하고 재미있는 순서를 꾸밀 수 있어 창의적이고 신앙적 성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자의 경우가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3. 예배 담당
예배 순서의 진행은 가장이 혼자 진행하는 것 보다 윤번제로 가족 모두가 담당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당자는 예배시간 10분 전에 가족 모두에게 시간을 알리고 장소를 정리합니다. 예배시간의 통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므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윤번제로 예배를 담당하기 어려우면 모든 가족이 예배의 한 부분씩 담당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예를 들면 예배드리는 방 주인이 예배실 준비를 담당하고 예배 시간을 통보합니다. 한 사람이 예배를 인도하면 다른 사람이 기도를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일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예배는 결코 지루하거나 무의미한 생활의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귀중한 삶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4. 예배 방법
첫째, 매일 성경을 읽어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읽기표에 의해 1년에 1독, 혹은 2년에 1독의 목표를 정하고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어나가는 방법입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쉽지만 부모들이 주석성경 등을 사용하여 간단히 설명을 곁들여준다면 좋을 것입니다. 1년1독을 목표로 하려면 예배시간이 30분 이상 걸린다는 점을 참고하
여야 합니다.
둘째, 가정예배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즈음 기독교 서점에 들려보면 월간 가정예배를 비롯하여 다락방, 매일의 양식, 매일 성경, 생명의 삶 등 다양한 가정예배 지침서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읽어나가기만 해도 훌륭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매일 새벽기도회 시간에 목사님을 통해 주신 말씀을 다시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부모가 먼저 새벽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려야 하므로 자신의 신앙에도 큰 성장이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5. 예배 순서
가정예배의 순서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 좋습니다. 대체로 15~20분 사이에 모든 순서를 마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합니다. 예배 순서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찬송과 기도와 말씀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이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묵도(1분) -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린다. 이때 인도자는 시편 중에서 한 구절을 봉독한다.
②찬송(3분) - 그 날에 적절한 찬송을 택하여 부른다. 바쁘다고 해서 1절과 2절만 부르지 말고 끝까지 다 부르도록 습관을 드린다.
③기도(2분) - 가족 중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하되 기도할 사람을 미리 정해준다
④말씀(7분) - 예배서를 사용할 경우 성경은 가족이 돌아가면서 읽고 말씀은 담당자가 읽는다.
⑤폐회(1분) - 인도자의 기도가 있은 후 주기도문으로 끝을 맺는다.
⑥특별순서 -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친교의 시간을 준비하여 간식도 준비하고 새로운 찬송을 배우며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대단히 좋다.
6. 예배 운영의 유의점
가정예배가 가족들의 신앙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실제로 가정예배를 꾸준히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정예배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의 방해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듯대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합니다.
특히 가족 중에 불신자(부모나 배우자)가 있을 경우에 더욱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예배를 포기해서도 안되지만 가정예배로 인해 불신 가족과 매일 마찰을 빚는 것도 결코 현명한 처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설득으로 가정예배를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온 가족이 다 믿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기 바쁜 생활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매일매일 규정된 시간에 가족 모두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택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정예배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다음 몇 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①가정예배가 의무적이거나 습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의 진행 방법을 바꾸고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 가정예배가 항상신선한 느낌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②가정예배가 부모의 훈시나 명령을 전달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③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그 아이가 알아듣기 쉬운 말을 사용하여야 하며 자녀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프로그램이나 순서를 마련해야 합니다.
④가정예배를 매일 드리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매일 드리기 어려운 형편이면 일주일 두세 번씩 요일을 정하여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구의교회 예배당 현관에 붙었던 광고이다.
강아지를 찾습니다.
8월 15일 04시경 이 거리에서 요쿠샤 강아지를 잃었습니다.
혹시 보관하고 계신 분이나 목격하신 분이 계시면 아래 연락처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아지 주인이 병원에 입원을 하여야 할 상태입니다.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꼭 연락있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은혜로 조그마한 사례일지는 모르지만 성의의 표시로 현금 30만원과 강아지를 한마리 사드리겠습니다.
개 고양이도 예배당에
맨하탄 112가에 있는 성 요한 교회 (성공회) 는 12세기 수도사 성 프란시스를 기념하는 예배에 동물을 환영하였다.
신도들은 개, 고양이, 스컹크, 쥐, 각종 새등 동물을 데리고 왔으며, 8천 파운드의 대형 코키리도 한마리 와서 더욱 이채를 띄었다. 코끼리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필요는 없다.
성 요한교회의 크기는 풋볼 경기장의 2배, 즉 2백 야드가 넘으며 건축을 시작한지 150년이 경과되었는데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거대한 성전이고 뉴욕 관광지의 하나다.
이 예배가 기념하는 성 프란시스는 흔히 앗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라고 불리운다.
그의 사랑은 우주적이었다. 해와 달을 형제라 불렀다. 동물들에게도 섬세한 애정과 존경을 바쳤다. 마을을 괴롭히는 늑대들을 온순하게 말들고 야외설교 때 떠드는 참새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전설이겠지만, 사나운 짐승까지도 사랑했다는 그의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짐승에 대한 사랑이 그 정도니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극치에 이르렀다.
그는 본래 부자집 아들인데 있는 것을 몽땅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다 주고 가끔 거지와 옷을 바꾸어 입고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집에서 내쫓겼다. 나병환자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예수처럼 제자의 발을 씻어 주었다. 프란시스는 이런 말을 했다.
"자비와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과 무지는 있을 수 없다. 참음과 애정이 있는 곳에 분노와 번뇌는 추방된다. 마음이 가난하고 기쁨을 가질 때 탐욕은 사라진다. 평화와 명상이 있는 곳에 걱정과 의심은 자연히 사라진다."
예배. 인본주의
신자가 성직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가 신자를 찾아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천주교 삼성산 성당이 매주 일요일 서울 관악산에서 '자연과 은총의 만남'이란 주제로 등산객을 모아놓고 드리는 산상미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 이 미사는 일년에 한두번 어쩌다 야외로 나가 드리는 특별미사가 아니라 4월 부활절 다음 주일부터 11월 대림절 전주일까지
일요일 오전 11시마다 드리는 천주교 삼성산 성당의 본미사다.
삼성산 성당의 徐春培신부(42)는 '일요일은 신자의 입장에서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날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귀중한 휴 일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를 조화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산상미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23일에도 등산을 겸해온 2백여명의 신자들이 관악산 중턱 송림사이에서 徐신부의 집전으로 경건하게 미사를 올렸다.
미사가 끝난 후에 일부 신자들은 徐신부에게 지난 한주일간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하고 나머지는 가족들끼리 모여 준비해 온 점심을 들거나 바로 산에 올랐다.
참석자 金英夫씨(55·부천제일병원 기획과장)는 '본래 집근처의 목동 성당에 다녔지만 등산도 할겸 해서 아내와 함께 거의 매주 이곳을 찾는다'며 '풍성한 녹음 아래서 미사를 드리면 역시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은총이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산상미사가 열리는 곳은 천주교의 유명한 성지중 한 곳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곳에는 1839년 기해박해때 한국에서 순교한 최초의 서양인 신부인 성 앵베르 주교 등 세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주변에서 있는 현대식 청동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도 자칫 흩어지기 쉬운 미사 분위기를 경건하게 만들고 있다.
교회성장과 역동적 예배
제 1단계 예배의 의미와 중요성
1. 예배의 의미
1) 예배는 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상의 행위이다
(어원적 의미)
2) 예배는 만유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응답이다(대상 29:11-13)
2. 예배의 중요성
1)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2) 예배는 교회의 최대 사명이다.
3) 예배는 성도의 교제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4) 예배는 성도에게 축복을 가져온다.
5) 예배는 교회성장을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제 2 단계 역동적 예배를 위한 7대 원리
1. 예배 철학을 정립하라
1) 성장하는 교회는 분명한 예배 철학을 가지고 있다.
2) 예배 철학에는 예배의 의미와 목적이 나타나 있어야 한다.
3) 예배 철학에 따라 좋은 예배의 평가 기준을 만들라
2. 예배 계획을 세우라
1) 예배 위원회를 구성하라
2)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팀을 구성하라
3) 예베 위원회는 예배를 평가한다
3. 거룩한 긴장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하라
1) 역동적인 예배는 창조적인 긴장이 있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나타난다.
2)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의 긴장,축제와 통회
嶽揚 있다.
3) 고요함과 열정의 긴장, 전통과 새로운 변화 사이의 긴장이 있다.
4. 예배의 초점을 분명히 하라
1) 예배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
2) 분명한 초점이 있는 예배는 깊은 인상을 준다.
3) 예배의 초점을 위해 예배의 제목을 정할 수도 있다.
(예:하나님의 정의,성도의 연합)
5. 새신자들을 위한 예배가 되게 하라
1) 목사의 메시지와 목소리와 태도에 유의하라
2) 음악이 예배의 주제와 맞고 최고의 질이 되게 하라
3) 전인격적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하라
4) 회중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라
5) 프로그램이 길고 지루하지 않게 하라
6) 평안한 예배 공간을 확보하라.
7. 예배를 생활하 시키라
1) 로버트 모레이:"에배는 삶 전체이다"
2) 성도들에게 삶에 예배를 가르쳐야 한다
* 성도들의 삶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요소
Praise :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Rejoice: 어려움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라
Experience : 시련 가운데서도 주님과 교제하라
Seek :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찾으라
Expect : 기적을 기대하라
Need : 하나님을 필요로 하라
Confess : 죄는 즉시 고백하라
Enjoy :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 교회성장이란
예배시간이 기다려지는 것
예배
1. 기존 예배형식의 부정적인 면
1) 설교위주의 예배
2) 목회자 중심의 예배
3) 보여주기식의 예배
4) 형식적인 예배
5) 교인들의 실제생활과 동떨어진 예배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
1)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예배
2) 균형있는 예배
3) 신실한 예배
4) 성령충만한 예배
3. 그리스도의 중심의 예배 - 4R
1) Retell :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재현하라
2) Remember :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3) Rejoice :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라
4) Respond : 그리스도께 응답하라
4. 신자들을 훈련시키는 예배 - 4l 1) lespire
1)예배를 통해 영감을 받도록 하라
2) lnstruct :설교를 통해 교인들을 가르치라
3) lnvolve :교인들을 예배에 참여시키라
4) lntegrate:예배와 교인들의 실제생활을 연관시키라
5. 새신자들에게 매력을 주는 예배 - 4C
1) Comfortable : 새신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라
2) Clear : 예배진행을 새신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명확히 하라
3) Convincing : 새신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라
4) Creative : 예배를 창조적으로 변화하라.
@ 여러분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 여러분 교회의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입니까?
@ 여러분 교회의 예배는 신자들을 올바르게 양육하고 있습니까?
@ 여러분 교회의 예배는 새신자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합니까?
귀머거리의 예배
슈바이처가 어떤 귀머거리 사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남자는 한번도 교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다.
그래서 하루는 한 성도가 글로 써서 이렇게 물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그렇게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는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도의 교제! 성도의 교제!"
잘못된 예배자의 3가지 경향
예배학자인 Marrianus H. Micks는
그의 저서 [예배의 기쁨(The joy of Worship)]에서
예배의 잘못된 전형으로 다음의 3가지를 지목했다.
첫째, 우상숭배자
둘째, 미온적인 예배자 (lukewarm-worshippers)
세째, 과열적인 예배자 (overheated-worshippers)
이는 이교도적 경향을 그대로 기독교 안으로 가져온 예배자와
지나친 지성주의자로서 감격과 열정을 갖지 못한 예배자,
그리고 엑스타시(ecstasy)만을 추구하는 감정적인 예배자를 말한다.
한국교회는 이중에서 특히 3번째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나 한사람쯤이야
옛날 어느 임금님이 온 국민을 불러 놓고 큰 잔치를 벌리기로 했다. 음식은 왕이 마련하고 참석자는 그저 포도주 한 병씩만 가져오도록 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BYOB라는 파티가 있다고 한다 "Bring YOUR Own Bottle"의 약자로서 번역하면 "당신이 먹을 음식을 가져오시오"라는 뜻이다. 주인은 간단한 음식과 그릇 따위만 제공하여 준다.)잔칫날이 왔다. 사람들이 가져온 술들은 모두다 큰그릇에 모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 그 포도주를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술맛은 맹물이었다. 그 이유는 누구 나가 다 남들은 포도주를 가져올 것이니 나 한사람쯤은 술 대신에 물을 가져와도 모르겠거니 했던 것이다. 누구 나가 다 맛있는 포도주를 마시려면 모두가 맛있는 포도주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멋진 잔치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 나와 매주 드리는 예배는 반드시 교인 모두가 진심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만일 "나는 믿음도 없는데, 나는 드릴 것도 없는데.."하면서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예수님이 초대하신 잔치의 기쁨을 깨뜨려 놓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예배는 BYOB가 아니라 주신 것을 그 주님 앞에 가져오는 것이다.
다윗의 제단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였고 선견자 갓의 예언대로 재앙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윗의 쌓은 제단으로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그가 쌓은 제단을 통해서 우리는 예배의 모형을 찾아보게 된다.
1.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나갔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환란의 현장. 하나님께 숨김이 없어야.ex)게하시의 숨김, 흠없는 제물을 원하시는 하나님, 아나니아와 삽비라 우리가 하나니께 나아갈 때도 적나라한 나의 모습이 고백되야 국 이것은 회개로 이어진다. (17)
2. 값을 치루는 예배였다
제 값을 주고 산 제단, 번제는 살아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올라가는 것이다. 예배는 희생이다. "Pay the price!" ex)오늘날 살아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문제,
내가 죽어져야,"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3.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였다.
말씀에 따라 세워지는 제단,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분별하도록"(롬12)
4. 불의 응답이 있는 예배였다.
불이 제물을 살라, 성령 충만, 사함 확신, 새 출발
5. 감사의 제단이었다.(28b)
예배에 대한 공부 1 (1996,1,3) 전주강림교회 안창엽 목사
요한 4 : 19 -24
[ 당신은 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세계적으로 한국교회가 예배드림에 제일 열심히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왜 예배를 드려야 하며, 예배가 또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될까요? 교회에 나오면 의례히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형식이되고 나의 삶과는 무관한 하나의 종교적 행위 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예배를 왜 드리는가를 알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며, 예배를 통해서 나의 인격과 삶이 성숙해 지는 그런 경험 속에서
예배를 드려봅시다.
1.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예배 드리는 사람을 오늘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요 4:23). 이 말씀은 예배당에 와서 찬송하고 설교 듣는 정도의 사람 보다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의 예배는 받아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아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만나고대화가 이루어지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는데 (창 1:26) 그것은 당신과 교제하며 대화의 상대 즉 예배드리며 살 수 있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예배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천국)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찬양과 경배로가득찬나라입니다(계4-5장) 그 나라는 천지 만물이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께돌리고,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하며, 24장로들이 면류관을 다시 드리며 업드려 경배합니다. 이 영광스런 하늘의 예배에 우리가 초대 받은 것입니다.
2. 예배에 대한 우리의 관심
한국교회는 기도, 찬송, 헌금 그리고 예배드림에 열심 있는 교회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중에 가장 중대하고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런 행동이라고 한 빨트의 말에 의하면 바람직하고 자랑스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배를 드린 만큼 어떤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가 무엇이며 어떻게 드리는 것인지를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첫째는 복을 받으려는 생각에서예배를 드리는 것은 무교(shamanism)의 영향이고 또 주일을 거룩히 여기지 않거나 모이는데 등한히 여기는 것은 불교의 영향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분명히 복을 받는 길이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성도와의 교제를 이루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3. 예배는 은총을 깨달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예배는 억지로 드리는 것도, 습관적으로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쁨과 감격 속에서 드리20), 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계21-22장)이기도합니다. 항상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우리를 모세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며(출3:12),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베전 1:1)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은 우리를 어떠한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위에 굳게서서(히11:1) 값지고 보람있게 살게 합니다(요 8:31-32)
그런 점에서 예배는 폰 알멘이 주장한 것 같이 "구원의 축제"입니다.
사실 기독교 예배는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심을 축하하며, 그것은 곧 우리의 구원의 축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기쁨 속에서 축제적인 예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우리는 예배를 위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햐 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구원하여 주신 은총에 대한 감격의 표시라고 말했지만 보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예배를 드려야할 이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첫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과 예배하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창1;26).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찾지않아도 고사를 지내야 하고 또 무엇인가를 섬겨야 하는 것들은 인간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지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리어 "
카할(qahal)"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도, 봉사, 교육, 정의의 실현 등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예배를 드리는데 그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1. 당신은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예배자"라고 생각하십니까?
2.당신은 복을 받으려고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3.구원 받은 감격이 당신을 예배드리게 한다고 생각합니까?
4.교회가 해야할 첫 번째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에 대한 공부 2 (전주강림교회 안창엽 목사)
이사야 6:1-8
[ 예배가 무엇인가? ]
지난번 공부에서 우리는 교회에 나오면 의례히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해 버리지 말고, 하나의 종교적 행위처럼 생각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리는가를 알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서 나의 인격과 삶이 성숙해 지는 그런 경험 속에서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열심히 드리고 있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아 봅시다.
1.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한국교회가 예배에 열심히 있는 것은 대부분 복을 받으려는 마음에 있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받으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배웠습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시29:1-2)
예배(WORSHIP)라는 말은 "가치있는" (worth)이라는 말과 추상명사를 만들기 위해거 "말 끝에 붙이는 말"(ship)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께 최선의 가치를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그 가치를 제물로 표현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배 (제사)는 속죄 제와 번제와 화목제가 있었는데, 어떤 예배든지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했습니다. 그 제물은 소,양,비둘기 였습니다. 그 제물의 결정은 예배의 종류가 아니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재산 정도에 따라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최선을 다하면 소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양을 드리면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은다는 말입니다. 또 제물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예물을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전한 예배 즉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예배는 첫째 예배시간에 흠이 없어야 하고, 둘째 모든 예배순서 진행에 흠이 없어야하며, 셋째는 찬송과 기도가 항상 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2. 예배의 내영은 하나님과 만남이고 대화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나, 또 예배를 설교를 듣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정해진 시간(주일)에 정해진 장소(예배당)에서 하나째 변화입니다. 두 번째의 변화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가는 선교의 역군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속사람이 더욱 거룩해지고 또 하나님의 교회 에 충성스런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없는 예배드림은 참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4. 예배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드리는 공동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도, 또 하나님의 부름으로 예배당에 나오는 것도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되는 것도 또한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성령의 도우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는 구원받은 개인의 행위가 아니고 구원받은 공동체인 교회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끼리의 아름다운 코이노니아가 있어야합니다. 옆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드리는 예배는 좋은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1 지금도 당신은 복 받기 위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2 예배 시간에 하나님 앞에 있음을 늘 느끼고 있습니까?
3 예배를 드림으로 당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까?
예배에 대한 공부 3
고전14:26-33
[예배순서는 어떤 구조로 되었는가?]
우리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또 예배가 무엇인가도 알았습니다. 여기서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배는 "계시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 예배를 드려야 하고,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의식을 [예배순서]라 합나다. 좋은 예배순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순서라도 하나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들의 삶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심이고, 또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살기를 원하심 입니다.(마22:37-40)둘째는 세상에서 빛되고 소금되어 살기를 원하시며(마5:13-16)증인되어 살기를 원하십니다.(마28:18-20)다시 말하면 자기의 모습을 찾고, 항상 사명을 가지고 살아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니는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하는 곳이요, 형제간에 불화하고 죽이게 하는 곳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십자가에 못을 박는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가 어렵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가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시고 대화함으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찾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삶의 용기와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예배는 <부르시고-만나고-파송한다>는 구조 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드리고 있는 "예배순서"는 어떻게 짜여져 있고 또 그 뜻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예배는 "계시에 대한 응답" 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계시의 부분(하나님의 초청, 성경봉독, 설교, 축도)이 있고 또 응답부분 (찬송,기도,헌금)이 있어 베의 씨줄과 날줄처럼 짜여져 예배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배순서는 두 흐름 속에서 크게 세 토막으로 짜여진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살면서 지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만남의 장소로 불러 주시고, 둘째로 부름 받아 나온 당신으 자녀들과 대화를 통하여 구원을 완성 시키면서 삶에 용기와 소망을 주시며, 셋째로 그렇게 새로워진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세상으로 파송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 순서는 [부르시고-만나시고-파송하시는] 세 토막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배의 순서에도 하나의 언어가 있는 것입니다.
3. 세 토막으로 된 예배순서의 의미
청째 초막은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이것은 예배의 시작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묵도로 시작하지 않고 "초청의 말씀"(call to worship)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내용은 출애굽 때에 홍해를 기적으로 건넌 감격으로 백성들이 춤을 추며 찬송을 불렀던 것 같은 그 감격으로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이 기쁨에 앞서서, 이사야가 자기의 죄를 깨닫고 "화로다 나여" 하고 참회했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던 것 같은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죄의 고백"이라고 합니다. 죄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이 기쁨으로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소위 "개회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청째 토막입니다.
둘째 토막은 [말씀 속에서 만남]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성경과 설교를 통하여 우리와 대화를 하시고, 우리는 기도와 찬송과 헌금으로 그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으로 책임있게 살아갈 것을 고백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의 정점은 "성찬"입니다. 성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됨을 확인하고, 또 함께 떡과 잔에 참여한 예배자들이 하나 됨을 확인한 것입니다(고전10:17) 다시 말하면 성찬에서 하나님과 우리 또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과의 깊은 코이노이아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셋째 토막은 [세상으로의 파송과 복주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살면서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새로워진 사람들에게 사명을 맏기며 세상으로 파송합니다. 여기서 새로워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을 부른 뒤에, "파송의 말씀"을 듣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과 동행하며 (마28:20) 능력을 주실 것을 약속하며 보내는데 그것을 "축도" 라고 합니다.
이런 예배순서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예배가 끝난 뒤에 일주일 동안에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느끼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4. 예배순서들의 다양성
예배순서는 2-3시간이 걸리는 "동방정교회" 예배로부터 예배순서가 전혀 없는 "퀘이커교회" 예배까지 다양합니다. 개신교의 예배순서의 틀은 대개 7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성찬을 예배의 중심에 두는 루터교와 성공회,설교를 예배의 중심에 두는 장로교,감리교,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오순절, 그리고 예배순서 자체를 부인하며 삶을 예배로 보는 퀘이커교가 있고, 한국교회에 예배순서를 전해준 자유교회의 예배순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순서는 말씀과 성찬이 균형을 이루는 예배순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와 그후 약 5백년 동안의 예배순서 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우엇입니까?
2. 예배순서는 어떻게 이루어 졌습니까?
3. 개신교 예배의 틀은 몇가지나 있습니까?
예배에 대한 공부 4
사도행전 2 :37-42
예배의 요소(계시부분) 이해
예배가 [계시에 대한 응답]이기에 예배는 두 흐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부분인데 "초청의 말씀- 성경봉독-설교- 축도"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부분인데 "찬송- 기도-헌금" 입니다. 성찬예식도 계시의 부분이지만 다음 자세히 하기로 하고 오늘은 계시부분의 [초청의 말씀][성경봉독][설교]에 대해서만 공부하겠습니다.
1. 예배를 시작하는 하나님의 초청 (call to worship)
한국교회는 대체적으로 예배를 시작할 때에 강대상의 종을 치며 "묵도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종을 치는 것이나, 묵도를 하는 것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 것입니다. 예배의 역사를 보나, 외국의 예배 순서를 보나 예배의 시작은 묵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초청"(Call to Worship) 또는 예배의 부름 인 것입니다.
예배를 하나님의 초청으로 시작하는 것은 예배가 하나님에 의하여 시작된 것을 말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온 사람들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더나가서 지금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대개 성경 구절을 읽기도 하지만, 교독문처럼 인도자와 회중이 주고 받는 형식도 있으며, 성가대가&nb
댓글목록 0